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부추긴다

2012년 현재 학과 구조조정 논란은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대와 지방대를 가리지 않고 대학사회 전체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전국적인 구조조정의 흐름은 일부 대학 또는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그 중심엔 교육부의 정책이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 학자금대출 제한대학, 경영부실대학 등을 선정하며 대학들에게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있다. 사립대의 경우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 15%를 선정한 뒤 그 중에서도 부실이 심한 순서에 따라 학자금대출 제한대학, 경영부실대학, 대학 퇴출의 순서를 밟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선정된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의 신정자격이 제한되고 보건의료분야 정원 증원 신청대상에서도 배제된다.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은 재정지원 제한과 더불어 학자금대출의 지원이 제한되며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된 대학은 2년의 고강도 컨설팅을 거친 후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강제폐교의 수순을 밟게 된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사립대 비율은 80% 정도로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재단의 재정자립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이 정부지원금에 의존해 재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형편으로,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 제한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부실대학’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수험생들의 대학지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재원이 넉넉하고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일부 대학을 제외하면 정부의 부실대학평가에서 자유로운 대학은 없다.

이처럼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은 평가기준부터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2013년 발표된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계획에 따르면 취업률과 재학생충원율을 합한 비율이 총 평가지표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반면 수업의 질과 연결되는 전임교원확보율은 7.5%, 장학금 지급률은 10%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학은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장학금을 늘리고 전임교원을 확충하는 등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기 보단 취업률이 낮고 도중에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은 전공을 없애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대학구조조정이 곧 학과구조조정으로 연결되는 이유다.
 

2013년도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지표




부실대학 선정, 부작용도 많다

평가지표가 대학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지난 2011년 정부의 부실대학 선정에 추계예술대학교와 상명대학교가 올라가면서 큰 논란이 되었다. 두 학교 모두 견실한 재단재정, 안정적인 학사운영에도 불구하고 정원의 50% 이상을 예술계열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부실대학에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학교 안팎에서 나왔다. 예술계열은 졸업 후 정규직 취업률이 낮은 편으로 대학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명확한 전략도 없이 하위 15% 대학을 걸러내 부실대학으로 선정하겠다는 도마뱀 꼬리자르기식의 대응도 논란의 대상이다. 대학의 수를 15% 줄이려는 것인지, 대학 진학률을 15%줄이려는 것인지 교육과학기술부의 납득할만한 설명은 찾을 수 없다. 수도권과 지방대학을 합하여 하위 10%를 선정하고 나머지 5%를 지역별로 추가 선정하는 방식에 대해선 일부 수도권대학들로부터 역차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어느 대학과 어느 전공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 없이 진행되는 구조조정은 곧 순수학문의 폐과행렬로 이어졌다. 지난 기사에서 살펴보았듯이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순수학문을 없애는 중이고 그 빈자리를 응용학문이 차지하고 있다. 개별 대학의 차원에서 보면 부실대학선정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순수학문의 실종현상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정책에 따라 폐교된 성화대학 Ⓒ YONHAP NEWS



구조조정으로 인한 피해,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나

부실대학선정 과정이 사회와 대학 구성원간의 상호 소통 없이 일반통행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구조조정의 당위성과는 별개로 정부가 구조조정을 일선 대학에 요구한다면 국가는 그에 걸맞게 구성원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한 채 모든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고 있다. 대학들은 학생들과 최소한의 논의도 없이 언론발표 한 줄로 수 십, 수 백 명의 재학생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서경대와 대진대의 사례처럼 학생들은 구조조정의 협의안이 아닌 그 결과를 통보 받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들에 대해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경쟁을 촉진하고, 자발적 경영개선을 위한 동인을 제공함으로써 대학 경쟁력이 한층 강화 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예정”이라 했다. 과도한 대학진학으로 인한 효율적인 자원분배의 실패와 인구감소로 인한 대학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원론적인 차원에서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재 대학구조조정 정책의 어느 결과에서도 “교육의 질 재고” 또는 “대학 경쟁력 강화”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속을 살펴보면 명확한 기준도, 장기적인 전략도, 구성원과의 소통도 부재한 총체적 부실만이 남아있다. 정부는 대책 없이 대학을 흔들고 대학은 그 책임을 구성원과 순수학문에게 떠넘기는 형상이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최종 피해는 오로지 해당 학과의 재학생들과 그 학문이 감당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