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20대와 존댓말 기획'은 20대가 일상적으로 당면하는 '존댓말'과 '호칭'의 문제를 살펴보고,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우리말의 존비어와 호칭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함의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1편 20대, 매일매일 존댓말/반말로 고생한다. 2편 존댓말 내부에 숨겨져 있는 나이의 신분관계, 3편 존댓말/반말이 가로막는 사회 소통과 해결책 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글 아래의 링크를 통해 다음 편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 쏟아지는 반말, "학생, 아메리카노 한 잔만 줘."

"알바 면접 보러온 거야?" 편의점 사장은 아르바이트 면접을 위해 대면한 처음부터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때까지 시종일관 반말이었다. "X팔, 너 그런 식으로 사회생활 하지 마라." 그 뿐 아니다. "아니, 디스 말고 디플 달라고. 학생, 공부 못하지?" 반말로 말을 걸어오는 손님들의 무례함은 선을 넘기도 한다. '막말'부터 '추근'까지 각양각색이다. 23세 여대생, 정혜원 양의 일상이다.

"'반말'로 시작하는 손님들은 대체로 행동도 무례해요. 사장님도 '폭언'을 일삼는 편이고 알바비도 자주 늦었어요." 그러나 혜원 씨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위협적으로 말하니 자연스레 움츠러들어요. 할 말을 하면 어디서 말대꾸냐고 할 것 같아서 쉽게 말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20대는 보통 '갑'도 '을'도 아니고 '병'이나 '정' 정도에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동등하지 않은 호칭과 말투는 20대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게 만들고,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언사를 듣기는 쉽게 만든다.

 

보통 처음 보는 학생에게 반말을 하는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친근감을 표시하려고 하는 거지.’, ‘딸, 조카, 손녀, 같아서 그래.’ 그리고 20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르는 손님이 ‘딸’같다고 이야기 하면 불쾌해요.”,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느낌이에요.” 많은 아르바이트생 성폭행 사건도 ‘딸 같다’고 접근하는 상사에 의해 일어난다. 지난 23일 한국일보는 "딸 같아서 그렇다“며 아르바이트생을 껴안는 상사때문에 고통을 겪은 여대생 지 모씨(21)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말투’란 이처럼 사소하면서도 중요하다.
 

교수님의 반말, 친근과 인격침해 사이

“넌 왜 그렇게 얼굴이 무개념이냐?” 서울 시내소재 A대학의 한 경영학과 교수의 수업시간이다. 외모 뿐 아니라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넌 멍청이다.”, “너네 과 애들은 다 그렇게 무식하냐?”는 말은 일상이다. 학생들은 불쾌함을 표시하기가 어렵다. 조금이라도 찍힌 학생에게는 F를 주는 교수님의 성향 때문이다. 이 교수님이 불편하다는 학생 이 모 양은, “교수님은 친근함의 표시를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선을 한참 넘으셨죠.”라고 말했다.

‘존댓말’을 쓰면서 막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반말’을 쓰다보면 해서는 안 될 말, 친구들과의 술자리 저질 대화가 툭 튀어나온다. 교수님, 선생님들에게 ‘존댓말’을 장려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말’에는 친근함 같이 긍정적인 요소 뿐 아니라, 불쾌한 말도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게 하는 마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학생처럼 권력이 비대칭한 관계일수록 존댓말을 써야 한다. 갑이 을에게 ‘반말’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세상 험해지는 법이니까.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높임말을 쓰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사람의 행동은 많이 달라지는 법이다.… 더 흥분하여 이성적인 훈계가 아니라 감정적인 훈계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현직교사인 최지연씨는 높임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존댓말을 강조하는 교사들의 의견은 대체로 같다. 반말을 하면 “소리지르고 욕하기 쉽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은 오늘도 어리다는 이유로 교수, 선생님들의 막말을 감내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 6학년에게 '선배님'하며 존댓말
스물 하나, 스물 둘 먹어도 같은 짓 하는 것 우습다.

“아무리 삼수를 했어도 10학번이니까, 존댓말 써야지. 선배가 우습냐?”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가장 먼저 대학생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공부가 아니다. ‘나이제’와 ‘학번제’다. 초등학생들이 5,6학년끼리 선배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극존칭을 쓰는 걸 볼 때면 누구나 우스운 감정을 느끼곤 하지만 결국 우리 20대의 삶도 마찬가지다. ‘또래’라는 단어는 남아있지만 ‘같은 연배의 친구’라는 ‘또래’의 개념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라진다.

한 살만 어려도 반말을 해도 되는 권리가 주어지고, 한 살만 많으면 반말을 허락받아야 하는 게 우리 사회의 기본이다. 우리나라 최고령자가 117세이니 우리 사회에는 기본적으로 117개의 계층이 촘촘히 있는 셈이다. 서양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중에서도 유일하게 한국만 해가 바뀔 때 모두 같이 나이를 먹는 셈법이 남아있는 것도, ‘나이’가 생활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면에 생일까지 물어보고 말투와 호칭을 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번거로운 법이니까 1월 1일로 퉁치는 거다.

우리는 스물한 살이 스물두 살에게 깍듯이 대하는 이 우스움을 좀체 깨닫지 못한다. 언어 안에 이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쓰는 ‘호칭’, ‘존댓말’은 우리가 느끼지도 못하는 새에 사회의 불평등을 고착화 한다. 하지만 20대는 존댓말의 마술에서 대체로 약자에 위치한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과, 그로 인한 이 사회의 한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20대와 존댓말 기획 ②편에서는, 20대가 어려움을 겪는 '존댓말', '호칭'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봅니다. (링크) - 9월 13일 발행

20대와 존댓말 기획 ③편에서는, 존댓말이 가로막는 20대의 친구관계, 취업문제, 의견교환의 한계를 살펴보고 해결책을 골몰해 봅니다. (링크) - 9월 14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