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천원 인생,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시대의 노동일기」리뷰


중학교 시절이던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가. 한번쯤 ‘포드’라는 이름을 들어봤고 그가 유명한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는 것은 알아도, 컨베이어 벨트를 발명해서 생산량 증대의 혁신을 일구어냈다는 것은 잘 모를 수 있는 나이다. 화려한 업적 덕분에 당시 내가 기억하던 포드는 어떤 수식어를 대던 간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포드와 컨베이어벨트에 대해 묻는다면, 내 예의 없는 혓바닥은 육두문자를 먼저 내뱉을지도 모른다.

ⓒ디지털타임스



포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저번 겨울방학에 했던 공장 생산직 아르바이트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던 ‘그’의 컨베이어 벨트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했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우리에게 물건을 전달했다. 단순노동임에도 근무시간 동안 옆 사람과 대화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이야 뭐 신선한 경험에 대한 보답으로 신나게 일한다지만, 시간이 갈수록 웃음기는 사라지고 들리는 소리는 오직 공장 돌아가는 소리다. 시간은 참 느리게 지나갔다. 굉장히 오래 일했다고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 기껏 10분밖에 지나있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얼마나 일했을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더 잘할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등 수 많은 생각이 떠오르다가도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물건들을 보면 그 생각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 몸뚱이만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새벽별 보면서 나가 저녁별 보면서 돌아오는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면 피곤해서 곧 잠에 든다. 그러나 몇 시간 후면 나는 다시 노동현장에 돌아가야 했다. 며칠 일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교육이란 게 참 부질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계화, 수단화, 노동자들의 고됨, 비인간화, 합리성, 생산량,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왔던 개념들이 난생 처음으로 내 마음에 와 닿았다. 공장 안에서 나는 이미 기계가 되어있었고, 그제야 기계가 되어왔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이러한 필자의 경험처럼 살아있는 지식, 즉 경험이란 놈의 ‘위대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다. 특히 사회현상과 관련해서 말함에 있어 무경험자는 아무리 떠들어도 경험자보다 한 수 아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가 공장에서 알바를 해볼 수 없고, 모두가 타인의 힘든 삶을 함께 살아볼 여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4천원 인생」이라는 ‘노동일기’가 간접경험에 조금은, 혹 누군가에겐 정말 많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독서신문



「4천원 인생」은 기자 4명이 각자 노동현장에 투입되어 실제로 한 달 이상 그 직종에서 종사하면서 느꼈던 고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감자탕집 아주머니서부터, 대형마트 직원, 공장 노동자까지 우리가 생각보다 주변에서 ‘(매스컴으로라도)듣거나 보기 쉬운’ 이들의 현실이 경험을 통해 실재가 된다. 그리고 현실은 우리의 생각보다 너무 처절하고 안타깝다.

아내를 위해, 자식 등록금을 위해, 먹고 살기위해, 수천수만의 노동자가 일한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피곤한 아침을,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다가, 누구보다도 늦게 돌아와 잠에 든다. 어느 유명한 광고에서처럼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한 당신은 실제로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소름이 끼친다. 한 번 떠나면 영원히 떠나야 할지도 모르니까.

현장에서 만연하는 비인간적인 실태는 손으로 하나하나 꼽기 힘들다. 어떤 아주머니는 자궁에 혹이 자라 너무나 아플지라도, 일해야 한다. 어떤 아저씨는 손에 25mm 못이 박혀도 공장주는 소독약 발라주고 없었던 일처럼 넘어간다. 어떤 처녀는 다리가 퉁퉁 붓도록 앉지도 못하고 시식코너에서 자신은 먹지도 못 할 고기를 굽는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환경보다 더 슬프고 소름끼치는 것은 이들을 일상처럼 바라보는 우리의 반응이다. 우리의 감성은 너무 무뎌졌다. 우리가 항상 지나가는 마트, 식당 등에서 수많은 노동자를 보지만, 그들이 마치 투명인간인 양 무시하고 지나간다.

이 비참한 현실을 무딘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예컨대 이 책과 같은 ‘노동일기’들이다. 전체를 대강 쳐다보면 그들은 나와 관련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속내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힘든 노동을 이겨내는 사람들 전부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 혹은 자기 자신이다. 이것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을 이 노동일기는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들이 담담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들의 삶이 지나가는 풍경처럼 일상적이듯, 그들에겐 그 힘듦이 이미 일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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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앞서 언급된 노동자의 현실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실제로 공장일은 조금이라도 해본 후에야 공장 노동자의 현실을 깨달았듯, 당신이 알고 있는 그들에 관한 사실 혹은 지식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나오지 않았다면 그 또한 죽어있는 지식일 확률이 높다. 우리가 아무리 북한이나 아프리카 기아의 인권을 외쳐도, 최소한 실제로 보고 듣고 겪지 않는 한 그들이 겪고 있는 참담함의 천만분의 일도 우린 알 수 없다. 오늘 9시 뉴스에 ‘화학공장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투병중입니다.’라는 멘트를 듣고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당신이 그 노동자의 생각이나 고통을 알 수 없다.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소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가 인권을 외치고 복지를 외치고 정치개혁을 외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그들에게는 허황된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도 공장에서 일해보지 않은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근로기준법을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현장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고 귀한 자료이며, 잘 짜여진 ‘논리’과 함께 병행되어야 할 필수적인 것이다. 모두가 모든 일을 경험해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한 번만 더 주변에 관심을 주자. 한 마디라도 더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시작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아주 작은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고함20 대전팀 8기 박관필(필명 주정) 기자는 지난 2월 18일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고 박관필씨가 생전 작성한 마지막 기사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