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서울 수렴의 법칙'이라고, 들어 봤니?

 

[서울 수렴의 법칙] :


정의 : 모든 것이 서울로 수렴하는 현상을 뜻하는 (우리가 만든) 신조어. 교과서는 서울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소비의 중심지’라고 설명한다. 이미 인구의 49%가 수도권 지역에 살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향하는 중이다.

예시 : 정약용 선생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티라. 멀리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는 말을 남겼다.

 

대한민국 청년 인구 : 서울 청년 인구 = 1029만 명 : 244만 명
∴ “대한민국 청년의 네 명 중 한 명은 서울에 산다.”

 

전 국토의 0.6% 밖에 되지 않는 면적에 대한민국 청년의 24%가 살고 있다니. 게다가 서울에 살고 있는 청년 인구의 절반은 타 지방 출신이다. 대체 서울이 뭐 길래. 그들은 왜 서울로 갔을까.

 


※ 본 기사의 [#조각]은 지역에 거주하는 취재원의 사례#조각 하나와 #조각 둘에서 청년들의 삶은 전형적인 ‘서울 수렴의 법칙’을 보여준다.

 

# 조각 하나

지방에 있는 미대를 졸업했다.
예술가의 삶은 원래 고달픈 법이라지만, 지방에 사는 예술가는 그 중에서도 더 힘들다. 대구에 사는 20대 무명 화가인 내 삶이 각박한 이유다.
서울에는 이백 개가 넘는 갤러리가 있다. 내가 사는 대구에는 35개가 있다. 35곳 중 내 그림이 걸릴 전시장이 있을까? 갤러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에는 더 많다. 청년 예술가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내 그림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을까? 화가로 살고 싶은 나는, 서울에 가야하는 게 아닐까?

 

# 조각 둘

“똑똑한 우리 딸내미, 대학은 꼭 서울로 가야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부모님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라고 노래를 불렀다. 바람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홀로 자취를 시작했다.
요즘은 방학을 해도 집에 내려가지 못한다. 무안에서 ‘스펙’을 쌓는 건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고학년이 되면서 취업준비가 현실로 다가왔다. 어학 성적에 대외활동에, 인턴, 각종 자격증까지. 할 게 너무 많다. 이번 여름엔 박물관에서 인턴 일을 하게 됐고, 인턴이 끝나면 토익 학원을 다닐 생각이다. 당분간은 계속 서울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지방에 있는 미대를 졸업한 화가 A씨는 더 많은 기회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서울에 가야하나 고민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무안 출신 B씨는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방학 때도 서울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에 따라 서울로 수렴하는 중이다.


그들이 서울로 떠나는 이유


대한민국은 서울중심 사회다. 서울에는 모든 게 많다. 사람도, 차도, 일자리도, 학원도, 커뮤니티도, 맛집도, 영화관도, 전시회도…. 서울의 자랑은 그 ‘많음’이다.


많음과 다양성으로 인해 서울은 기회의 땅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로 모였다. 사람이 많아지면 더 많은 산업과 서비스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규모가 커진 서울에 또다시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 반복됐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서울의 '많음'은 마침내 지금의 서울공화국을 완성한다. 모든 사회 자본이 서울에 초집중된 서울공화국에서 서울에 산다는 것은 특권이다. 바꿔 말하면, 지방에 사는 것은 청년을 ‘불편’하게 만든다.

 


 

“대구는 일자리가 없어요. 주변에 보면 서울로 갈 생각을 많이 하죠.” (이기학, 대구)
“토익 점수 따고 서울에 있는 항공 전문학원에 다닐 거예요. 여기에는 없거든요.” (전민아, 경주)
“여기서 독립 영화 같은 거는 그냥 못 보죠. 인터넷이나 VOD로 봐야 해요.” (신지훈, 순천)


길거리와 캠퍼스에서 마주한 수많은 지역 청년들 중 어떤 청년은 서울을 동경했고 어떤 청년은 서울살이를 고민했다. 실제로 서울에 살았거나 필요에 의해 서울에 방문한 경우도 많았다. ‘지방에는 없고 서울에는 있는 것’ 때문이었다. 서울 수렴의 법칙은 정말 유효한 것일까.

 

# 조각 셋

서울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OO병원 간호사로 근무한 지 일 년 쯤 된 때였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삼교대 근무와 타지살이를 이제는 더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타지살이가 길어질수록 집과 가족,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웠다. 취업 후에는 일이 바빠 집에도 잘 내려가지 못했다. 외로움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서울에서의 쫓기는 삶이었다.

다시 돌아온 장성. 이곳에서의 삶은 서울보다 편리하진 않지만 더 행복하다. 공기도 좋고, 교통 체증도 없고, 늘 여유가 넘친다. 이 행복을 얻은 대가로 서울과 다른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 조각 넷

벌써 10년 가까이 대구에서 밴드를 하고 있다.
음반도 몇 장 냈고, 요즘은 조금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에 공연도 다닌다. 서울에는 공연을 할 장소도, 들어주는 사람도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대구에서 음악을 할 거다.

외국에선 뮤지션의 출신 지역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지역의 특색이 음악에 묻어나오는 거다.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다. 무조건 서울 음악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로컬 밴드들이 흥했으면 좋겠다. 영국인들이 비틀즈를 들으러 리버풀에 갔던 것처럼,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로컬 밴드가 되는 게 내 꿈이다.

 

 

#조각 셋과 #조각 넷은 ‘서울 수렴의 법칙’에 반(反)하는 청년들의 삶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C씨는 일을 그만두고 원래 살던 장성으로 내려간 뒤, 삶의 여유와 행복을 얻었다. 밴드를 하고 있는 D씨는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계속 음악을 하고 싶고, 로컬 밴드 문화가 활성화되길 바라고 있다.


서울공화국에서 지역 청년으로 살아가기


지방 청년이 모두 서울 살이를 원하는 건 아니다. 서울에 수렴되지 않고 제 터전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울이 제공하는 많은 정보와 기회를 인정하면서도 서울에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서울이 상징하는 이미지의 허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기회가 많은 대신, 그 기회를 얻으려는 경쟁자도 어마어마하죠.” (박우영, 대구)
“서울에서는 엄청 치이면서 살았어요. 이곳에 내려온 후로 삶의 질이 더 높아졌죠.” (남현희, 전주)
“서울에는 내 집이 없잖아요. 방값은 물론이고 물가도 여기보다 훨씬 비싸고.” (서상도, 대구)


서울의 ‘많음’은 때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아파트는 많지만 내 방 한 칸 구하기 힘들고, 회사는 많지만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내 직장은 찾기 어렵다. 기회가 많은 대신, 그 기회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다. 그래서 서울에 수렴되는 것을 거부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서울을 선택지에 두지 않고,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 나간다. 그곳에서 그들이 나고, 자라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방에는 그들의 집과 가족, 친구들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살아온 나날이 그 지역에 쌓여있다. 그 시간들을 뒤로한 채 굳이 떠나고 싶지 않다. 지역에서의 삶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진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 785만 명.

그 수만큼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삶이 존재할 것이다. 그 중 지금껏 세상이 주목한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고함20]은 서울공화국에서 소외된 전국 팔도의 청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785만 명에 비해 99명은 아주 적은 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첫 걸음이다. 우리가 마주한 아흔 아홉 개의 이야기는 [고함20]이 앞으로 20대의 시선에서 지역의 청년을 풀어가는 시발점이다. [지방 빼는 세상에서 살아남기]는 지방에서의 결핍으로 인해 서울로 수렴하는 청년들을 전하는 동시에, 지방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을 전하려 한다. 지역 청년의 취업, 알바, 교육, 문화생활, 커뮤니티, 거주 등 다양한 삶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연재 이후 터져 나올 더 많은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기대하며, 앞으로 대한민국 '어디에나' 존재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 본 기사는 [Daum 뉴스펀딩]에서 함께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m.newsfund.media.daum.net/project/261

 

글 / 달래(sunmin5320@naver.com)

기획 / 아호, 달래, 라켈, 아나오란, 콘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