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배구 국가대표팀의 박철우 선수가 폭행을 당해 벌겋게 변한 얼굴로 기자회견을 한 일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스포츠계의 폭력이 사회의 전면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다 큰 어른’인 박철우가 온 몸 가득한 상처를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그냥 ‘배구계만의 일’ 심지어는 ‘별 일 아닌 일’로 넘겨버리는 사회의 냉담함이다. 어떤 고참 배구선수들은 “우리 땐 더 맞고 운동했어.” 따위의 말 같지도 않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고, 몇몇 매체에서는 박철우를 폭행한 이상렬 대표팀 코치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다분한 기사들을 써대기도 했다.

박철우 폭행 사건의 중요성은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바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어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터진 ‘2PM 재범 사건’에 비해 매우 조용하게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폭력에 대한 타성에 젖어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이상렬 코치로부터 구타당해 심하게 상처가 난 박철우 배구선수.
(출처 :
http://news.nate.com/view/20090923n06269)


김호철 감독이나 이상렬 코치의 폭력이 정당할 수도 있다는 논리의 근거는 바로 다름 아닌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이 사건 속에서 폭행의 주체가 감독, 코치라는 이름의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 힘을 얻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이 명제도 우리의 경험 속에서 잘못 ‘참’이 된 것은 아닐까?

폭력적 체벌 행위는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닌 우리들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폭력적 체벌이 많이 사라졌다는 시대에 학교를 다닌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작은 잘못(예를 들어 전체조회 시간에 줄을 제대로 맞추지 않는 것과 같은) 때문에 맞을 만큼 맞고 벌도 많이 받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게 말했었다.

우리사회에서는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서 자행되는 수많은 체벌, 다시 말해 폭력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 오히려 이러한 체벌들은 정당하며 필수적인 것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던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한다’라는 명제는 과연 참이라고 볼 수 있는가? 체벌 행위에 폭력을 가하는 자의 개인적 감정이 들어갈 수 있다는 부작용적 측면은 차치하고라도, 다른 나라와 살짝만 비교해 봐도 이러한 폭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근거가 만들어진다.

미국의 경우 교사가 학생에게 체벌을 가했을 경우, 심한 경우 교사 자격이 박탈된다. 이렇게 미국 사회가 체벌을 금기시하는 것은, 체벌 자체가 학생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데다가 체벌이 다른 교육적 문제 해결 제제 방법에 비해 오히려 더 적은 효과를 갖는 것으로 연구되었기 때문이다.

왜 미국 학생들은 안 맞아야 하고, 대한민국 학생들을 맞아야 하는가? 뭐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우월하여 체벌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존재’라도 되는 것인가?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 할까? 이러한 문제를 사회의 특징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모두 인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치부하거나, ‘말 안 듣는 학생을 말 듣게 하기 위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인정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체벌이 암묵적으로 동의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생겨나는 우리의 어두운 측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노란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유소년 축구팀을 본 일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거나 혹은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유소년 ‘축구팀’인 그들은 축구를 하고 있지 않았다.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짝다리’를 짚고 팔짱을 낀 코치가 서 있었고, 벌을 버티지 못한 아이들의 엉덩이가 스르르 내려갈 때마다 그는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유소년 축구팀 아이들에게 체벌을 한 코치를 생각해보자. (여기서 김호철 감독과 이상렬 코치가 오버랩된다.) 코치가 그러한 행동 방식을 어떻게 습득하게 되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다. 그는 교육적 상황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또한 그가 거쳐 온 많은 운동 팀들에서, 그리고 가장 극단적으로는 군대에서 겪어 온 문화에 의해 행동 방식을 습득하고 그에 따라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교육적 상황에서 자행된 폭력일지라도 그것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그러한 폭력성이 전염되고, 교육적 상황 이외의 곳까지 번져 나가게 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게재되어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초등학생 체벌 사진
(출처: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1981)

게다가 이러한 체벌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체벌이라는 수단을 통해 교사는 학생으로부터의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체벌이 다른 제제 방법에 비해 효과가 눈에 띄게 크지 않음에도 불구 체벌을 하는 것은 사실 체벌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권력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체벌을 통해 권력과 권위가 형성되는 권위주의적 교육이 진행되는 이 나라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까지도 비정상적으로 권위주의적이다. 상식적이지 못하게 폭력적이다. 박철우 선수는 ‘태도가 불성실해 보이고, 표정이 껄렁하다’는 이유로 인격 모독적인 폭행을 당했고, 문성민 선수는 ‘서브가 약하다’는 이유로 구타당했다. 학생들은 ‘성실하지 못하다’거나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지금 이 시간에도 맞고 있다.

어떤 인간도 ‘맞을 짓 하면 맞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맞으면서 자랐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나 때는 너희들보다 더 맞았어!”라고 말하는 것은 어른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박철우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에 만연한 폭력에 대한, 또한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토론과 재조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