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석원, <보통의 존재>

보통의 정의

‘보통’이라는 단어는 열등하지도 그렇다고 뛰어나지도 않는 상태를 뜻한다. 이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수식어는 최상도 최하도 아닌 상태를 표현 할 때 흔히 쓰인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머릿속 순서에서 ‘최상’ 다음으로 밀려나있다.
이런 ‘보통’을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보통의 존재>라는 책에서 자신의 38년 인생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그는 본문에서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느낌을 ‘섬뜩한’으로 수식했다. 아마 작가와 마찬가지로 인생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지는 이 섬뜩함은 시도와 좌절을 가장 많이 겪게 되는 20대 때 많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점차 이 좌절이 심화되어 보통으로 살기도 힘든 세상이라는 말도 나온다.

꿈의 상, 중, 하?



현재 한국 사회는 뭔가 거대한 꿈이 아니면 하찮게 취급 받기 쉽우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 덕목인 사회다. 20대엔 무엇을 30엔 또 다른 무엇을 끊임없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주는 분위기 속에서 시도와 실패를 겪으며 보통의 우리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어린 시절의 자신감을 잃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처음엔 분명 <보통의 존재> 작가도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특별한 존재였다. 좁은 뱃속에서 좀 쑤셔서 한번 뻗어본 발차기도 “아이고 씩씩하네.” 하며 칭찬을 받았을 것이고 많은 관심과 축복 속에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며 양말을 자기 혼자 신는 다던가, 물건 이름을 맞췄다던가, 변을 잘 본다던가 하는 사소한 성공에도 천재소리 들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관심과 칭찬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될 거라는 큰 꿈을 키워 왔다. 그 시절의 우리에겐 세상은 너무나 쉬워 보였고 세상이 나의 중심 인 것이 당연해보였다.

그런데 처음엔 엄마 자궁 만하던 나의 세상이 계속해서 커져만 갔고, 사회가 만든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줄을 서게 되었다. 이렇게 서는 줄은 뒤로 갈수록 우리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내 앞의 사람과 비교 당하기도 하였으며 내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한 건데 돌아 온건 칭찬 보단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였다. 지금보다 더 앞에 서라며, 더 거창한 꿈을 가지라며.

그리고 운이 좋아서, 독해서, 아님 그 둘 모두의 요인으로 인해 사회가 성공했다 인정해준 내 앞에 선 사람들은, 많은 이들의 롤 모델이 되고 그들의 이야기는 서점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꾸준히 팔려나갔다. 그리고 점차 우린 그들을 따라하거나 나와 비교하면서 ‘내가 있는 세상’ 점점 ‘세상 속의 나’로 바뀌어 갔다. 


섬뜩함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기


세상 속의 ‘나’ 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려한다. 하지만 그런 행복감은 지극히 상대적이라 더 나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싹 사라지고마는 일시적인 감정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특별하지 않고 보통의 존재라고 자각하는 것은 섬뜩할 수밖에 없다. 이는 보통이라는 자각이 내가 불특정다수보다 뒤쳐졌다는 느낌을 주고 곧 내가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히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엔 비교를 통해 오는 섬뜩한 자각은 없다. 그저 우린 유년 시절의 자신감을 갖고서, 등급 매기고자 비교하는 평가들 즉 보통이라거나 상·중·하 라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