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씩 엄마를 웃게 만들기', '탱고 배우기', 나를 괴롭혔던 놈들에게 복수하기',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참지 않기'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의 주인공 연재의 ‘버킷 리스트’ 중 몇 가지이다.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야할 일이나 달성하고 싶은 목표 리스트로, Kick the Bucket 에서 나온 말이다.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 버리는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최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주인공 연재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적어내린 소박하고 따뜻한 꿈을 담은 ‘버킷 리스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관심을 받게 됐다. 

김선아 버킷리스트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



  열심히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주인공 이연재는 죽지 않는다. 그렇지만 병이 고쳐지고 극중 사랑하는 연인 강지욱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더라, 하는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녀는 6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지만, 6개월 만에 죽지 않을 뿐이다. 그녀는 7개월 이틀 째 사는 모습으로 끝난다. 억지로 주인공을 살려두거나 이 모든 것이 그냥 꿈이었다는 허무한 결말이 아닌,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다. 주인공 연재가 “내일 뭐하지?”라고 지욱에게 묻는 마지막 장면은, 내일 1교시 수업에 가기 싫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제발 부디,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달까. 



20대의 버킷리스트

   만약 당신이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는다면,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2011년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써내려가 보기로 했다.

1. 취직하기. 드라마 주인공 연재는 10년 동안 묵묵히 다니던 회사를 때려쳤지만, 우선 나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 죽기 전에 내 꿈인 PD가 되어서 방송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6개월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6개월 동안 방송국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해볼까 하지만 어쨌든 허드렛일로만 끝내기엔 몸도 마음도 안 따라줄 거 같다. 1.취업하기는 패스.
2.하와이로 여행가기. 세계적인 휴양지인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렇지만 그 비용은? 고액알바라는 과외를 30만원 기준 한 달에 4개를 한다하더라도 120만원. 과외가 안 잡힌다면 최저임금 2011년기준 4320원 씩(2012년에는 4580원으로 인상된다고는 하지만)하루에 8시간, 30일 일해도 1,036,800원 밖에 되지 않는다. 3개월은 쉬는 시간 없이 일해야 겨우 300만원이니, 왕복 비행기 값에 숙소는 마련할 수 있으려나. 2.하와이 여행가기도 패스.
3. 사고 싶었던 것 사기. 쇼핑하기. 그 전부터 갖고 싶었던 원피스가 있다. 그런데 예쁜 것들은 왜 항상 비싸기만 할까. 그래도 여행가는 돈보다는 훨씬 싸니까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6개월밖에 못 살텐데 한 10번은 입을 수 있을까? 내 동생은 남동생이라 물려줄 수도 없는데. 모르겠다.
4. 가족한테 잘하기.
드라마의 주인공 연재처럼 나도 하루에 한 번씩 우리 엄마를 웃게하고, 아빠도 웃게하고, 동생도 웃게 하고 싶다. 어떻게 웃게 할 수 있을까. 은근히 어렵다. 나도 연재처럼 엄마아빠 여행도 보내드리고 싶고, 동생한테는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은데. 그만한 예산이 없다. 뭐, 그래도 마음은 전해질테니 이것은 보류.
5.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 더 좋은 시간 보내기. 그런데 잠깐, 남자친구도 아직 어리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픈 나와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달라고 부탁할 수 있나. 경제적인 능력이 아직 부족한 남자친구는 드라마 본부장 강지욱처럼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테니 이것은 그나마 보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답답해지기만 할까. 드라마 ‘여인의 향기’ 주인공 연재는 10년 동안 일하던 직장에서 번 돈이라도 있었지, 모아둔 돈도 없고, 휴학으로 인한 한 학기 등록금 절감이 유일한 목돈일텐데, 이것도 병원비에 보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생각이 삭막해져서 말랑말랑 감성이 없어진 건지 모르겠고, 뭐 평생을 두고 적은 버킷리스트이거나 내가 노년이라면 달라지겠지만, 20대의, 6개월 시한부라는 조건은 여러모로 암울한 것 같다. 
  그런데 왜 세계명작 100권 읽기나 인디 영화보기, 명반 듣기는 생각나지도 않았을까. 좋은 책을 잔뜩 읽고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떠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텐데. 너무 취업과 돈에 대한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는지, 팍팍하고 삭막한 생각만 가득하다.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주인공이 7개월 이틀을 살고 있다는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감동을 줬지만, 내가 6개월이라는 기간보다 더 많이 살게 된다면 오히려 더 답답할 것 같다. 아, 병원비,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