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 배구 국가대표 에이스 박철우 선수의 기자 회견이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얼굴이 성치 않아보였던 그가 기자 회견에서 밝힌 일은 지금까지 사실상 묵인되어왔던 스포츠계의 폭력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단지 코치 자신이 보기에 건방진 눈빛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얼굴과 복부에 멍이 들 정도로 때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에 불과했던 것일까?

사실 초중고 시절부터 운동선수들은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감독의 폭력, 선배들의 폭력은 정신력 함양, 위계질서 확립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 되어왔다. 게다가 선수들은 설사 그 폭력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저항할 수가 없다. 감독에게 찍히는 경우에는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은 곧 불확실한 미래라는 위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학원 스포츠계의 기형적인 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학원 스포츠의 경우, 학생들이 운동에 올인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실제로 초등학교 중학교시절, 운동부 아이들은 거의 수업을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 교실에 얼굴을 내비칠 때에도 한 두 시간쯤 책상에서 엎드려 자다가 다시 훈련을 하러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자연스레 선수들은 1년에 몇 번 없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절박할 수밖에 없다. 좋은 성적으로 스카우트들에 눈에 띄는 것만이 명문 학교로, 프로 팀으로 진출하여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몇 번 안되는 대회에라도 출전하기 위해서는 감독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부당한 폭력에도 저항할 수 없는 운동선수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니도 촬영이 없을 땐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지도..??(http://blog.naver.com/song9844746)

감독의 경우에도 대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 위치가 불안해진다. 학교 측이나 학부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실제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은 감독들 또한 선수들 못지않게 상당하다. 자연히 승리를 위한 욕심이 커지고 자신의 생각만큼 뛰어주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손찌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결과물에 올인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진 우리 학원 스포츠의 기형적 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반면 외국의 경우 학원 스포츠는 방과 후 활동의 성격이 짙다. 꼭 운동부가 아니더라도 취미삼아 한 두 개씩의 운동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는 선수라 할지라도 학교 성적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등의 제약이 있다. 자연히 선수들은 학업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제든지 운동선수로서의 길을 가다가도 학업의 길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학원 스포츠도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그동안 학기 중에 실시되었던 남자 초중고등학교 전국 축구대회가 폐지되었다. 대신 올해부터는 홈&어웨이 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지역 주말 리그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대회는 방학 중인 연말에만 열리게 된다. 이는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로 선수 측이나 학교 측으로부터 모두 환영받고 있다. 그리고 리그제다 보니 한경기에 목숨 걸고 뛰어야 했던 과거 학원스포츠의 승리 지상주의의 병폐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이와 같은 학원 스포츠의 정상화 노력은 분명 학원 스포츠 전반에 만연해 있던 폭력 문제의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승리만을 쫓다보니, 성적만을 쫓다보니 용인되고 묵인되었던 폭력. 교육계와 체육계가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학원 스포츠가 좀 더 건전한 방향으로 거듭 날 수 있는 힌트를 얻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