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에 걸린 그녀는 그녀를 사랑하는 그의 보살핌 아래 버티다가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답니다.” 처음 백혈병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눈물 겨워하며 드라마를 보았다. 이후 모든 드라마에 백혈병이 등장하자 우리는 진부하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렇게 백혈병이 드라마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 했고, 이번에는 치매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서른 살 여자가 치매에 걸린 걸 알게 된 남자는 파혼선언을 하고 여자에게 돌아온다. 여자는 점점 기억을 잃어갈 테지만 남자는 여자를 감싸고 그녀 곁에서 그녀를 보살필 것이다. 남자의 가슴 아픈 순애보가 예상되는 드라마 ‘천일의 약속.’ 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치매 걸린 환자가 등장하는
스릴러 드라마

화제 거리가 되는 것은 치매다. 치매에 걸린 수애(극중 인물, 서연)의 신들린 연기는 일품을 월등히 뛰어넘어 스릴러에 버금간다. 둥둥 울리는 배경음악까지 가세하면 심리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치매에 걸린 서연(수애)이 치매증상 때문에 주전자를 태워버린 후, 까맣게 타버린 주전자를 빡빡 문댈 때는 온몸에 소름이 전율한다. 과도한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저하한다. 김래원(극중 인물, 지형)의 우유부단한 연기는 공감을 자아내는 데에 반해 수애의 연기는 공포감을 자아낸다. 치매가 소재가 되었던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는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묵묵히 그녀를 지켜주는 남자의 슬픈 사랑은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데 반해 드라마 ‘천일의 약속’ 은 무서움을 배가시킨다. 아무리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치매 걸렸을 때 신들린 사람마냥 굴면 시청자는 의아할 수밖에 없다.



출처 : 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cateid=100030&newsid=20111025091008516&p=starnews


지나친 고상함은 촌스러울 뿐이다.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무서움은 ‘호랑이 선생님’이라 불리는 김수현 작가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치매라는 소재 못지않게 ‘천일의 약속’ 에는 김수현표 드라마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극적인 말투를 쓰는 작가주의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말투보다 지나친 고상함이 신경에 거슬린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서연(수애)이 외국 작가 이름을 되새김질하며 치매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은 귀엽게 봐 줄 수 있다. 허나 가정부로 일하는 지형의 이모가 버나드 쇼를 논하는 대목은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갑자기 버나드 쇼가 웬 말인가. 물 흐르듯 전개되는 드라마에 빠져들 무렵 버나드 쇼의 등장은 시청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서연(수애)이 파혼하려는 지형(김래원)에게 “적선, 동정, 연민, 위선, 자기미화, 자기도취 웃기는 교만, 유치한 객기” 라고 비하하는 대목 역시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가 아닌 작가 ‘김수현’ 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김수현 작가 특유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고상함은 고상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단어 때문에 촌스러움으로 전락하고 만다.



서투른 가족애, 진짜 가족 맞나

역대 김수현표 드라마는 가족문제가 부각되곤 했다. 재혼가정을 다루었던 ‘인생은 아름다워’ 마마보이 아들로 논란이 되었던 ‘겨울새’ 자폐아 아들을 힘겹게 돌보는 엄마가 부각된 ‘부모님 전상서’ 암에 걸린 아내를 사랑하는 연하남편이 부각되었던 ‘완전한 사랑’ 이 모든 전작의 공통분모는 가족, 가정이다. 이번 드라마 ‘천일의 약속’ 에도 가족애가 드러난다. 그런데 다소 서투른 가족애가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서연(수애)은 동생 문권(박유환)을 애틋하게 챙기지만 둘 사이에 오가는 존댓말은 어려움을 함께 한 가족 같다는 느낌보다는 하숙생과 주인아주머니 사이 같은 느낌을 준다. 서연(수애)의 고모네 손자 꼬마가 엄마(문정희) 빵집에 대뜸 나타나 할머니 성대모사를 하는 모습은 귀엽다기보다는 뜬금없다. 지형(김래원)의 엄마(김해숙)가 기로에 놓인 지형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독이는 모습이나 고모가 서연(수애)네를 끔찍이 여기는 모습과 고모네 딸(문정희) 부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통해 가족애는 충분히 부각된다. 서투른 가족애는 부각된 가족애를 갉아 먹을 뿐이다. 서투름과 지나침 투성이인 드라마 ‘천일의 약속’ 이 화제드라마로 꾸준히 각광받을 수 있을는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