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 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고함어워드 수상자를 선정하는 일은 많은 고민이 따랐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 집단들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다음은 어떤 상을 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함20 기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풍자적이다.
 
 
올해의 인물 - 김진숙
 
김진숙은 한 겨울 새벽에 35m 상공 크레인에 올랐다. 그는 추운 겨울이 다시 얼굴을 내밀 무렵이 돼서야 크레인에서 내려와 땅을 밟았다. 2011년 중 309일, 계절이 4번이나 바뀔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재벌총수는 국회에 불려갔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구를 방문했다. 오직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불합리한 해고를 당했던 이들은 복직을 약속받았다. 높디높은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은 그보다 높은 사람이 되었다.
 


김진숙 금속노조 지도위원과 김여진.



올해의 신상 - 김여진

개인적 소회를 밝힌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함어워드 선정 인물들 중 유일하게 얼굴을 마주한 이가 김여진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홍익대학교가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거부하고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가 수포로 돌아갔을 때, 김여진이 홍대 총학생회장에게 전한 편지를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가. 그를 계기로 사회에 대한 관심의 차원에서 벗어나 참여라는 곳에 발을 내딛었다. 이후에도 그는 많은 시위 현장을 누볐고, 김진숙을 눈물로 맞이하는 등 연예인 사회참여의 본보기가 됐다. ‘폴리테이너’, ‘소셜테이너’라는 말이 신상이 된 건 김여진의 성과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올해의 신상에 올린다.

김제동과 이효리, 박혜경 등 쟁쟁한 후보들이 거론됐지만 가장 많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김여진이 아니었을까.
 
 
올해의 빵상 -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얘기다. 최 위원장은 지난 달 초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단 한 번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적 없다"고 말했다. 미네르바 사건 등 수 많은 의혹에 대해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으신단다. SNS까지 규제하려 드는 마당에 지금까지 해온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란 얘긴가 보다. 한두 개를 선정할 거라던 종편도 네 개 방송국을 개국시켰다. 소통의 근간이 되는 매체를 총괄하는 방통위의 위원장이 이렇게 소통이 안 되면 어떻게 할까? 빵상빵상?(최 위원장 이러면 무슨 말인지 알겠죠?)

올해의 빵상의 후보로 “서민들 걱정에 잠을 못 이루신다”던 이명박 대통령과 소방관에게 "도지삽니다"를 연발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거론 됐지만 정치인이라 제외됐다. 0%대의 ‘대박’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종편도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지만 창조자인 최 위원장을 뛰어 넘을 순 없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올해의 인생무상 - 한국대학생연합
 
한 때 잘 나갔다. 2011년 꽤 많은 수의 대학교 총학생회 선본이 한국대학생총연합 소속으로 ‘반값등록금’ 공약을 걸고 당선됐다. 힘을 얻은 한대련은 시위를 주도하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며 대학 등록금을 이슈화 하는데도 성공했다. 문제는 학생들의 입방아에도 오르내렸다는 점이다. 한대련 소속 총학생회는 ‘외부 활동에만 치중한다’는 이유로 해당 학교 학생들에게는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 결과 한대련 소속 선본들이 최근에 치러진 선거에서 줄줄이 낙마하며 화려했던 시절은 끝이 났다.
 
 
올해의 직무유기 - 한국은행
 
뭐 했나 모르겠다. 공개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한국은행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발 맞추는 것에 급급했다. 물가에 빨간 불이 켜졌음에도 대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기 않기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가지수를 결정하는 품목들을 바꾸는 꼼수를 부렸지만 물가지수는 정부 목표인 4%를 넘어 고공행진중이다. 물론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그보다 높다. 한국은행을 올해의 직무유기에 선정한 이유다.

월가에 확산 된 시위 현장. 시위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독주에 경고를 날렸다.

 
올해의 허상 - 신자유주의

미국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Protester)를 선정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월가 점령 시위가 가장 큰 선정 이유가 됐다. 시위자들의 월가 점령은 신자유주의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위기의 불씨는 그리스, 스페인 등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옮겨 붙으며 확산되고 있다. 2011년 내내 이용자들에게 고통을 준 저축은행 사태는 시장실패의 총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개인의 도덕적해이(Moral Hazard)로 책임의 범위를 국한시키려 하고 있지만 어쩌겠나. 도덕적해이가 시장실패인걸.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알리는 경종이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는 날치기통과 됐다는 사실이다.


올해의 진보마초 - 고재열

진보마초란 정치적인 태도는 진보적인 편인데,  여성관만큼은 보수적이어서 성차별적 언행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부류의 남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 중 대표주자는 시사인 고재열 기자이며, 이미 고함20의 기사 ( http://www.goham20.com/739 )를 통해서도 그의 진보마초 기질은 언급된바 있다. 올해 그의 주옥같은 발언을 보도록 하자.

1) "대학 졸업하고 첫 부임해서 애들하고 친해지려고 인디안밥 하신 독어샘~ 브레지어끈 풀려서 당황하셨죠? 제가 슬쩍 일부러 그랬어요." 2) "그리하여 박근혜는 애를 몇명이나 낳았다죠? -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향해 시장후보를 못 낸 불임정당이라고 하자. 3) "언론에 자꾸 벤츠여검사라고 나오는데... 내연남한테 벤츠 받고 사치스런 고가백 선물받는 여자는 나가요 언니들밖에 없다. 그냥 '나가요검사'라고 부르는 게 합당하다." 

나꼼수의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20~30대 여성이 나꼼수를 통해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말로 고재열 기자의 아성에 도전해보았으나 어림도 없었다. 진보마초계를 야구에 비유하자면 고재열 기자는 투수로 30승, 야수로는 4할을 동시에 이룩한 경지. 그야 말로 독보적인 인물임에 틀림 없다. 

 
올해의 종교 - 나는 꼼수다

태초에 이명박 정부가 있었다. 정부의 수장 이명박 가카께서는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가카께 반항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시간이 지나자 4대강 보에서 물이 줄줄 세는 등 누수현상이 일어났다. 이 틈을 타 나꼼수교가 등장했다. 나꼼수교의 사신(四神)은 자신들이 ‘국민들을 각성시켰다’고 했다. 각성된 신도들은 불손하게도 나꼼수교에 충성을 맹세하며 가카께 대응하는 것은 물론, 반나꼼수 세력을 무력화시켰다.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기독교도 신흥종교인 나꼼수교에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신앙은 어찌 할 도리가 없나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