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오천 원은 매우 그럴듯한 돈이었다. 고등학교 급식이 먹기 싫은 날이면 친구를 꾀어낼 수 있는, 그러니까 두 사람의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이었다. 학교 근처 밥집에선 2천 5백 원 하는 돌솥비빔밥 두 그릇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토스트집에선 천 원짜리 토스트 두 개와 또 천 원짜리 생과일주스 두 잔을 먹고 천 원을 남길 수 있었다.

오천 원의 가치는 몇 년 사이에 폭락했다. 대학가 밥집에 가도 오천 원으로 한 사람 끼니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싼 메뉴를 고르지 않는 한, 오백 원 하나라도 더 붙여야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 돈 가치의 폭락, 다른 말로 물가의 폭등을 체감하게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집어 계산대에 올렸을 때, 몇 년 전 드라마를 다시 보다가 당시 버스비가 600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작년에 쓰던 만큼의 한 달 예산으로 한 달 버티기가 어려울 때 ‘미친 물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물가의 폭등을 느끼는 순간보다 더 어이없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물가에 관련된 기사를 접할 때다. 언론에 등장하는 숫자인 물가지수는 언제나 3~4%를 맴돈다. 어떨 때는 그보다 훨씬 낮은 수치가 기록될 때도 있다. ‘물가 고공행진’ 같은 표현을 쓴 기사에서도 우리가 체감하는 만큼의 물가지수를 발견할 수 없다.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저 물가지수, 국민을 우롱하는 가짜 지수 아닐까 하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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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지수는 사실,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적합한 방법으로 조사가 잘 진행되었다면 그를 통해 나온 숫자는 ‘신뢰’할 수 있다. 물가지수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 경제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총체적인 하나의 숫자로 나타내는, 물가의 변동을 파악하기 위하여 작성되는 물가지수. 과연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일반 국민들의 경제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는 소비자 물가지수(CPI, Consumer Price Index)의 경우를 살펴보자.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품에 대한 가격 조사를 다 할 수는 없으니, ‘가격 조사 대상 품목’을 정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현재는 470개 정도의 품목이 조사대상으로 되어 있다. 품목을 정한 후에는 각 품목이 소비자의 경제적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가중치’를 정한다. 그러고 나서야 대상 품목의 조사된 가격들에 가중치를 곱해 평균을 내게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소비자물가지수, 단 하나의 숫자로 결정되는 것이다.

통계는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결정되는 과정에 그 거짓말의 뿌리가 있다. ‘대상 품목’과 ‘가중치’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물가지수는 완전히 판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중요한 물건과 그 가중치는 모두 다르다. 한 달 소비의 30%를 커피에 사용하는 커피 애호가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물건일 테지만, 이는 물가지수 산정에 그대로 반영될 수가 없다. 모든 경제활동의 평균을 내려는 물가지수는 애당초 개인이 느끼는 실제 체감 물가와 체계적으로 괴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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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지수의 한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물가지수는 많은 한계를 가진 개념이다. 화폐 가치를 측정하고 환율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국민경제 단위에서의 거시적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체감 물가를 나타내는 데는 부적합한 통계 수치다. 상품의 질적 변화를 반영하지도 못한다. 몇 년 전에 비해 과자 한 봉에 들어 있는 과자 개수는 줄어들고 질소 포장만 빵빵해졌더라도, 두 과자는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최신 LTE 스마트폰과 2G 핸드폰도 ‘핸드폰’ 항목에서 같은 것으로 치부된다. 물가지수 자체가 소득의 변화를 내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한계점이다. 물가가 4% 올랐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1% 떨어졌다면 실질적인 구매력은 5% 감소한 것이고 반대로 소득 수준이 5% 증가했다면 실질적인 구매력은 1% 증가한 셈이다.

그렇다면 소비자 물가지수를 대신할 수 있는, 실제의 삶과 그나마 더 일치하는 물가지수는 없는 것일까. 결론은 노력은 가능하지만 어렵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숫자 하나로 생활의 모든 미세한 면을 다 반영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물가지수에 반영되는 다른 물건들의 가격은 죄다 5% 이상 상승했는데, 자동차의 가격만 50% 하락한 비현실적이지만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 산출된 물가지수는 해당 시기에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수의 사람에게는 수긍이 가겠지만, 자동차를 구매하는 다수의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게 낮은 지수가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해 12월 2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홍종학 교수(경원대 경제학과)는 소득계층별 물가지수의 필요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발표되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실제 체감에 비해 낮게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로 LED TV의 급속한 가격 하락세를 지적했다. 그는 “LED TV는 신제품이기 때문에 대개 소득계층이 높은 쪽에서 많이 산다.”며 소득계층별 물가지수를 만들어 소비자 물가지수의 한계를 보완하는 게 물가지수와 체감 물가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결국 보완지수들을 통해 물가지수가 포괄하지 못하는 측면에 대한 설명을 풍부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다.


MB정부, 물가 관리 잘 하고 있나?

물가지수가 현실을 잘 반영할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의 체감 물가다. 이는 ‘MB물가지수’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2008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생활필수품목 50여개를 집중 관리하라’는 지시를 통해 탄생한 ‘MB물가지수’는 서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필수품목 52개만을 조사 대상으로 삼아 산정한 물가지수다. MB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에 비해 높은 폭의 상승률을 보여 왔다. 2008년 3월 이후 2011년 8월까지 15.7%가 상승해 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폭에 비해 1.6배 높았다. 살인적인 체감 물가를 그나마 더 잘 반영하는 듯하다.

MB정부는 물가가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지표를 만들었고, 또 이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MB물가지수와 소비자물가지수는 그 수치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를 단순히 ‘어쩔 수 없는 물가 상승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할까 ‘정책의 실패’로 봐야 할까.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생필품 물가를 집중 관리하라고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 대상 품목의 물가가 더 많이 올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점이 MB정부의 물가 잡기에 대한 실책을 지적하는 커다란 근거가 되곤 한다. 2012년 새해, MB정부는 물가 대책으로 '품목별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를 새롭게 들고 나왔다. 과연 이 카드가 먹힐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