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또 다른 일 년의 시작이다. 여기저기 떠난 한해와 다가온 새해를 위한 모임들이 한창이다. 색색의 조명들 아래 사람들은 그동안 보지 못 했던 사람들, 보고 싶던 사람들과 함께한다. 즐거운 유머들과 기분 좋게 취하고 싶은 분위기. 모처럼 사람들과의 만남은 즐겁다.

그런데 그대, 혹시 느껴본 적 있는가.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로 그대에게 어느새 슬며시 다가와 있던 외로움이라는 것을 말이다. 따뜻했던 공간을 벗어나 찬바람을 마주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대의 어깨에 앉은 고독을 인식할 때, 끝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던 적 있는가.

현대인의 필수품, ‘고독’

전화번호부를 열어본다/가나다순으로 줄세우니 삼백 명쯤 되는구나...가나다 순으로 보다 보니 일곱 번쯤 돌았구나

장기하와 얼굴들 2집에 수록된 <깊은 밤 전화번호부>라는 곡의 가사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 전화번호부에 삼백 명 저장되어 있는 사람이야’라고 젠체하는 것 같아 밉살스러운가. 아니면 ‘이건 내 이야기잖아!’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당신의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놀랐는가.

후자의 생각이 든 당신이라면 아마 살면서 한번 쯤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독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핸드폰 속 저장된 번호 수(數)와 아무 때나 전화를 걸 수 있는 번호 수(數)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무한한 공간 안에 ‘우주외톨이’가 되어버린 기분. 

하지만 그대만이 외로움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대, 나 혹은 그 누군가도 다가오는 아니, 다가온 고독에 힘겨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특별시에 살고 있는 A양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고독의 쓰나미에 허우적거리고 있고 강원도에 거주하는 B양은 한없이 들러붙는 고독의 그림자 사이를 헤매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고독을 느끼다

온갖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달 표면에 앉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우울하지 -[삶의 한가운데서], 루이제 린저

외로운 그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람을 만난다. 웃고 떠들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그대는 우울함의 정서가 환기 된 듯 행복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언가 이상하다. 이 멜랑꼴리한 기분, 익숙하다. 고독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당신 마음에 한자리 잡고 나올 생각을 않는다. 외로움과의 숨바꼭질에서 뒷덜미를 잡힌 듯한 무기력함.

‘군중 속의 고독’,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에서 정의한 용어이다. 책에서 데이비드는 타인지향형 사회에서 소외받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지칭했다. 하지만 그대와 나에게 ‘군중 속의 고독’은 다르게 다가온다. 갑자기 온 세상의 빛이 나에게로 집중되는 아연함. 오롯이 고독의 스포트라이트를 감내해야하는 아득함.

같이 걷자

나라는 존재는 하나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그러했고 그러할 것이며 그러하다. 하지만 혼자는 아니다. 불쑥 불쑥 고개를 내미는 고독이 있기에.

Elle ne me quitte pas d'un pas (나의 고독은 나를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아) Fidèle comme une ombre (그림자처럼 충실하게) Elle m'a suivi ça et là (나의 고독은 여기 저기 날 따라다녔지) Aux quartre coins du monde (세상 구석구석까지)...Elle sera à mon dernier jour (나의 고독은 나의 마지막 순간에 있을 것이며) Ma dernière compagne (나의 최후의 동반자가 될 거야) Non, je ne suis jamais seul (아니, 난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Avec ma solitude (나의 고독과 더불어)- 조르주 무스타키, <나의 고독 Ma solitude> 中

차가운 바람에 몸이 움츠러든다.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다. 고독을 한평생 같이 갈 동무로 인정하고 이제 그만 그에게 마음 한 켠에 자리를 내주는 것은 어떨까. 고독이라는 새로운 친구를 맞이할 그대에게 조르주 무스타키의 <나의 고독 Ma solitude>이라는 곡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