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뻐”
 
개그맨 최효종이 국회의원 강용석에게 집단 모독죄로 고소당해 더욱 유명해진 KBS <개그콘서트>의 코너 사마귀유치원의 ‘쌍칼’은 문장 끝마다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이뻐”라고 얘기한다. 이 코너의 포인트는 유치원생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면서 “신데렐라는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살았지만”같은 이야기 뒤에 “이뻐”라는 말을 덧붙여 반전을 주는데 있다.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반전이 나올지 알지만 항상 폭소를 터트리곤 한다.
 
이 코너의 반전이자 웃음포인트는 단지 “이뻐”라는 말 한마디다. 여기엔 뼈가 있다. 그 전에 했던 다른 얘기가 어떤 말이든지 “이뻐” 한 마디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방청객들도 시청자들도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모르는 얘기는 지나쳐 버린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거나 ‘계모에게 쫒겨났다’는 내용들은 반전을 위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여기에 나오는 동화들은 하나 같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주인공이 ‘예뻐서’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사람들은 단지 “이뻐”라는 말에 웃는 건 아니다. 그 말을 하는 개그맨과 뒤에 있는 개그우먼의 노골적인 음흉한 표정, 느끼한 말투가 없었다면 이 코너는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잊어선 안 될 게 있다. 사마귀유치원은 시사개그로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저 웃어서만은 안 되는 이유다.

ⓒ 웹툰 <삼봉이발소>

 

성형공약이 현실성이 있다면?
 
지난해 말 우석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한 선본이 ‘학생들에게 성형 지원금을 주겠다’는 공약을 세워 논란이 된 바 있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공약을 만든 선본과 후보자에게 비난의 포화를 퍼부었다. 동아일보는 “건강검진-성형수술비 지원 정치권 욕하면서 닮는 총학선거”라고 제목까지 지으며 비난 어조를 분명히 했다. <고함20>도 “단순히 당선되기 위해서 남발하는 선심성 공약, 이제는 없어져야한다”며 “학생들도 선심성 공약에 혹하지 말라”고 적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처음엔 언론과 네티즌들의 비난이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한국엔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역경이나 불행과는 상관없이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웃어주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우석대 선본의 공약에 도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성형지원 공약을 선심성이라 비난하지만 우리 모두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형공약을 내놓은 선본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 민혜원 양(23)은 “못 지킬 공약이다”라고 하며 “우습다”고 했다. 대학생 공다예 양(24)은 “단지 주목받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냐”며 “대학교 총학생회와 본질이 먼 공약이다”라고 지적했다. 이효진 양도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서 감투 하나 써보자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성형 공약이 현실성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반응은 사뭇 달랐다. 민 양은 “공약을 내건 선본에 투표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평소 하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돈을 대신 내고 해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최유리 양(23)은 “사실 그렇지 않은 척 하지만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투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했다.
 
우석대 총학생회 선거는 조직선거와 학교개입 의혹 등으로 얼룩졌지만 해당 선본은 그만큼 집중조명을 받았고 결국 당선됐다. 성형이 아닌 다른 선심성 공약을 내놓은 곳도 있었지만 우석대만큼 유명세를 치르진 못했다. 성형이 사회에서 얼마나 관심을 받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공 양은 “공약이 현실성이 있더라도 뽑지 않겠다”고 했지만 “단지 대학의 본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나중에 돈을 벌면 (성형을)하겠다”고 말했다.

ⓒ 데일리메디


“면접에는 외모도 중요하다”
 
인터뷰를 했던 대다수의 학생이 성형을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예뻐지고 잘생겨지고 싶은 욕망은 간절하다. 이런 우리나라 사회에서 외모는 얼마나 중요할까. 한 성형외과에서 일산과 서울 일부 지역의 여성 8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88%의 여성이 ‘외모 때문에 신경이 쓰이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44.5%의 여성은 패션, 헤어, 성형, 피부관리 등 뷰티 관련에 지출하는 비용은 아깝지 않다고 답했다.
 
외모에 대한 차별은 없을까. 외모에 따라 차별이 있는지에 대한 실험은 여럿 있었다. SBS <세븐데이즈>에서는 외모가 뛰어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결과는 제작진의 예상대로였다. 외모가 뛰어난 여성이 길을 걷는 남성들에게 “차비가 없어서 그런데 만 원만 빌려 달라”고 하자 냉큼 빌려주었다. 농담을 던지거나 전화번호를 묻는 남성도 보였다. 반면 그렇지 않은 여성의 경우 번번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는 것조차 그랬다. 사장은 예쁜 여성에게 “지금부터 일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이 찾아가자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말 K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에는 소위 스펙을 모두 갖춘 여성이 나왔다. 하지만 그 여성은 면접에서 “면접에는 외모도 중요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성형을 결심했다. 한 취업사이트에서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호감형 인상이 합격 당락에 영향을 끼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에까지 범람하는 성형광고
 
여러 실험, 인터뷰, 통계로 보아 외모도 하나의 스펙이 된 듯하다. 토익, 학점, 인턴 등 지금까지 스펙이라고 여겨온 것들에 부족함을 느낀 취업준비생들은 외모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비싼 값의 화장품을 구입해 피부를 관리하며, 조바심을 느낀 이들은 ‘지름길’인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렸다. 
 
대학도 이를 방조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서강대 건물 곳곳에 설치된 티비에는 성형외과 광고가 버젓이 나왔다. 가슴 성형 광고였다. 우리가 흔히 보는 성형외과 광고처럼 성형전과 성형후로 나뉜 사진을 차례로 보여줬다. 성형 후의 모델은 노골적으로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거기엔 “그녀는 조금 더 자신 있어 보입니다”라는 자막을 달았다. 남학생들도 여학생들도 광고를 흘끗흘끗 쳐다보면서 밥을 먹었다.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는 학생도 있었지만 “좋다”고 얘기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 조선닷컴

많은 학생들이 이 광고에 거부감을 느꼈다. 서강대에 다니는 김진석 군(26)은 “대학 상업화의 표본”이라며 “돈 되면 뭐든 하는 게 대학이 맞냐”고 되물었다. 같은 학교 권영재 군(25)도 “곧 있으면 사채광고도 나오겠다”고 비아냥거리며 “노골적인 가슴 성형 광고는 여성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성형광고가 워낙 많아서 학교 안에 성형광고가 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학생도 있었다.


우리는 왜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스펙을 “항우울제”라고 설명했다. 스펙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취업을 보장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계속해서 스펙을 쌓아 올린다는 얘기였다. 거기다 과거에도 외모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하게 있어왔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이전에는 숨겨져 있던 것들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우석대의 어떤 선본이 ‘성형 지원’ 공약을 낸 건 강도도 예쁘다고 팬클럽이 생기는 사회에서,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는 사회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일이다. 취업포기자를 합쳐 청년실업이 16.7%(한국고용정보원, 2010)에 달하는 냉혹함 앞에서 20대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도 4호선 지하철에는, 신촌역에는 성형외과 광고가 있다. 아무렴 성형전이 중요할까. 무의식적으로 작은 외마디 말을 내뱉었다.
 
“예쁘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