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미안해... 넌 그냥 친구야.'

3년 간 친한 친구로 지냈던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과도한 친절을 베푼다. '이거 뭐지?'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봐도 의식하게끔 행동하는 그를 보면서 함께 다니던 친구들한테 살며시 떠보는 질문들을 던졌다. "A가 자꾸 나한테 잘해주는 것 같지 않니??" 친구들 마구 비웃으며 소리친다. "도끼병 또 도지는 거 아니야? 걔 좋아하는 애 따로 있어~"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역시나. 누군가를 좋아하긴 하나보다. 배경음악부터 포스팅된 글까지 짝사랑을 암시하는 분위기로 도배되어 있다. 누구를 좋아하는 것일까? 어쨌든 오해를 접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걔가 만약에 나한테 좋아한다고 했으면 어떡하지?' 질문의 답은 아쉽지만 하나다. 그 애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가슴이 쿵 떨어졌었는데,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가슴이 놓이다니. 역시 난 그 애를 친구로서 아끼나보다. 그 애는 친구로서 너무 좋은 녀석이라 애인이 되면 좋은 친구를 잃는 게 될까봐 두렵다. 우리 6명이 항상 함께 다니는데 그 녀석과 내가 이상한 관계가 되면 분명 우리 여섯 모두 어색해질 게 뻔하다. 생기지도 않은 이런 일들을 상상하다니. 말이 씨가 되면 어쩌지. 우린 정말 좋은 친구인데...

며칠 후, 크리스마스. 여섯이 모여서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애인도 없는데 잘됐지 싶어서 나갔는데, 다들 1시간 쯤 늦는다고 하고, 나와 그 애만 남았다. 그 애. 표정이 이상하다. 손에 든 장미꽃은 또 뭐지? 설마.....




너와 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좀 더 시기가 빨라졌지만, 유치원 친구는 모두 동성친구였다. 모두 동성만 모여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동성처럼 느꼈다는 것이다. 옷을 다 벗고 고무대야에서 물장구를 치며 같이 놀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이였다. 하지만, 우리가 이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될 때쯤 우리는 너와 나의 이질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신체적인 부분부터 정신적인 부분까지 우리는 너무나 다르다. 초등학생이 되고 고학년이 되면 이 관계 정립은 더욱 치밀해진다. 책상 위에 선을 긋고,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괴롭히고,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몰려 다니며 상대편과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된다. (간혹, 예외는 존재한다. 남녀 뭉쳐서 그룹을 만들고 다니는 아이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드문 케이스였다.) 이렇게 외형적 다름을 인식하게 되는 시기를 보내고 난 뒤 우리는 다름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시기부터 서로가 편하고 이성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너와 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여자는 남자를 3초 만에 규정한다.

‘첫인상’이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면 다들 알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을 3초 만에 규정한다고 한다. 첫인상으로 그 사람을 규정짓는 것이다. 여성도 그렇다. 뻔한 말들 중에 여자는 남자를 3초 안에 ‘사귈 가능성이 있는 사람(내부인)’과 ‘사귈 수 없는 사람(외부인)’으로 규정짓는다고 한다.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첫인상을 바꾸기가 매우 어렵듯이 외부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 내부인의 범주로 들어가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는 안 넘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성친구라는 것은 어떤 범주에 들어있는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유지될 수도 있고,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성친구. 공식이 뻔히 보이잖아.

내부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성과 친구를 하게 된다면 결국은 친구라는 관계가 깨지기 쉽다. 친구라는 관계 자체가 친밀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애정을 가진 관계를 의미하는데 거기에 이성적인 매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흑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 같은 스타일을 만나야 되는데, 어디 너 같은 남자 없니?’라는 말을 하게 되고, 그가 친구인지 연인인지 헷갈리는 상황까지 다다르게 되면, 혼란 속에서 그를 멀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연인관계로 발전시키든지 아예 어색한 친구사이로 떨어지든지 양자택일해야만 하는 상황이 다가오게 된다.

반대로 외부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성과 친구를 하게 된다면 친구라는 관계는 의외로 공고해질 수도 있다. 이성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메리트가 커서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연애 문제나 쇼핑을 갈 때 이성의 눈으로 객관적인 조언을 해주는가 하면, 자취방의 컴퓨터가 고장 나면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편하게 술친구로 지낼 수도 있고, 취향이 맞는 영화를 함께 보러 갈 수도 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게이 친구’를 만드는 것을 로망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성친구는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존재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외부인으로 설정하더라도 당신은 나를 외부인으로 설정할 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당신을 내부인으로 설정하더라도 당신은 나를 전혀 여자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둘 중 어떤 관계이든지 간에 결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짝사랑이든지, 친구가 부담스러워지든지.


그래도 이성친구는 로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친구는 매력적인 존재다. 미래에 어떻게 될 지를 고민하는 것 대신에 자연스러운 이성친구를 만들어보자. 친구를 짝사랑하게 되더라도 고백하지 못하고 끙끙 앓지도 말자. 이미 마음이 기울었다면 고백하지 않더라도 멀어지는 건 매한가지. 친구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건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뒤에는 이미 늦은 결심이다. 고백을 통해 좀 더 끈끈한 연인관계로 발전하거나 아니면 마음 정리하고 다시 친구하던가. (가능하다면) 그러니까 결론은 이성친구를 만들 수 있다면 많이 만들자는 것이다. 남과 여. 교류를 통해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인간적으로) 사실 친구로 지내다가 나중에 정 들어서 연애하고 결혼까지 한다는 것. 최고의 시나리오 아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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