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시리아의 비문에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이 나오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말세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버릇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 말을 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버릇이 없는 애들보다 버릇이 없는 애들보다 버릇이 없는 애들보다 버릇이 없는 애들보다 버릇이 없는 애들보다 ...... 더 버릇이 없는’ 우리들은 얼마나 버릇없는 사람들인 것이냐는 생각을 떠올리고 실소를 하기도 한다.

그런 ‘버릇없는 요즘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꾸짖는 윗사람들이 불편하기만 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라는 말을 속으로, 또 자기들끼리 있을 때마다 내뱉으면서 대체 왜 내가 윗사람들한테 꾸중을 들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너희는 얼마나 잘 나서 이러는 거냐고, 나이 한 살 더 먹은 게 자랑이냐고 되뇐다.

대학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의 선후배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옛날보다는 안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얕아진 선후배 관계가 문제는 문제인지 이 주제로 일간지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대학가, 선배님 누구 없소!’라는 제목의 10월 17일자 한국일보의 이 기사는 선배를 만날 수 없는 후배들의 고충을 주제로 하고 있다. 기사가 후배들의 이야기를 다루자, 대한민국의 수많은 선배 대학생들은 ‘심지어 후배가 인사도 제대로 안 해주는데 후배를 도와주어야 하나’라는 요지의 댓글들을 달았다.
(기사 원문 : http://news.nate.com/view/20091017n00529?mid=n0403)


어려워진 취업 문턱 앞에 요원해진 선후배 관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돈독한 관계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었던 선후배 사이는 어쩌다 이렇게 삭막하게 된 것일까?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갈등 상황들을 살펴보면, 좁아진 취업문과 뭔가 어려워진 세상살이 속에서 심화되고 있는 경쟁이 관계를 절단하는 데에도 한 몫 하고 있는 듯하다.

요즈음 소위 대학의 기본 자치 단위인 ‘과/반 공동체’에는 고학년, 고학번이 아예 존재하지를 않는다. 대학 생활을 막 시작하는 새내기가 지나고, 후배들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2학년(헌내기) 시절을 보내고 나면 고학년이 되는 대학생들은 자신의 거취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과에서 후배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혹시나 내가 지금 이러는 게 주책은 아닐까, 후배들한테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취업 준비로 바빠야 할 시점에 후배와의 교류 따위는 사치가 아닐까 등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공동체에서 멀어지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선배는 ‘사실 내가 새내기 때 3학년들을 보면서 대체 왜 고학번이 미래 준비는 안하고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면서 지금 새내기들도 나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걸 안다고 말해 나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대학 공동체 내에서 고학년생의 애칭(?)은 애초부터 쓰레기(3학년), 찌끄레기(4학년), 우주쓰레기(5학년 이상) 등이다.
(최근 ‘정든내기’ 등의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는 곳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물론 우스갯소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단어부터가 공동체 안에서 고학년, 고학번 선배들의 존재를 어색하게 만든다.


반면 사실 후배들은 처음에는 선배 없음에 대해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학교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거나 함께 놀만한 선배들은 사실 1년 위의 선배들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도 굳이 2년 이상 차이나는 선배 혹은 후배와 친해져 본 경험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들이 처음 선배들의 부재를 아쉬워하게 되는 순간은 바로 나도 이제 미래를 설계해야겠다고 느끼는 때이다. 자신과 같은 학과 공부를 하면서 자신보다 앞서 자신이 가려는 길을 걸어 간 선배들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더욱 더 막막해져가는 미래 앞에서 가장 필요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선배들인 것이다.

하지만, 새내기 때 얼굴을 트지 못한 선배를 새롭게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자신이 찾고 싶은 선배를 찾는 글을 참지 못하고 학과 커뮤니티에 올리는 후배, 차마 해서는 안 되었을 ‘요즘 선배들 보면 취업이 잘 안 된다던데... 우리 과 비전은 있는 건가요?’라는 식의 한 마디를 첨가하여 글을 쓴다. 그걸 본 선배는 ‘아니 이건 무슨 버릇없는!’, 다시 후배는 ‘그런 말 좀 하면 어떤가요?’ 으악, 분쟁은 이렇게 시작되곤 한다. 좋은 선후배는 커녕, 익명의 서로를 적대하게 되는 선후배 관계라니...!


소통의 욕구는 있는데 ... 서로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무형의 장벽에 가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선후배지만, 사실 선배는 선배대로 후배는 후배대로 할 말이 없지는 않다. 선배는 ‘2학년 때 처음 후배를 받으며 설레어서 후배들과 친해지기 위해, 밥 사 주고 술 사 주고 돈은 날릴 대로 날리고 나니 정말 돈만 날아가더라. 결국 친해지지도 못할 거 무엇 하러 돈 낭비, 시간 낭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후배들은 정말 자기 필요할 때만 선배 찾는다.’고, 후배는 ‘지나가다 못 봐서 인사를 못한 걸 수도 있는데 인사도 안하고 평소에 연락도 잘 안한다고 버릇없다 하시니 좀 섭섭하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후배 입장에서 먼저 연락하기가 조심스럽고 어렵다. 처음 한 번은 밥 사주세요 할 수 있지만,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왜 새롭게 만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겠는가. 선배들, 후배들 모두 서로와 친해진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하여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도 아니고 학기 초에 먹은 밥 한 번으로는 평소에도 자주 연락할 만큼의 친분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밥 한 번으로 아는 사이 이상의 관계를 기대하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인 일이 아닐까. 완전 틀에 박힌 말이긴 하지만, 선배들도 누군가에겐 후배고 후배들도 누군가에겐 선배가 될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씩만 더 배려해서, ‘아 후배가 먼저 선배한테 연락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군, 내가 먼저 연락해 보는 건 어떨까?’, ‘아 선배가 내가 누군지 모르면 어쩌지, 아 하지만 그래도 선배가 이런 문자 받으면 기분 좋아하시겠지. 생일 문자 하나쯤이야 뭐.’ 자존심 한 번 쯤 굽힌다고 무슨 손해라도 있겠는가.





왜 고학년이 되면 과 공동체를 떠나야 하나? 구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그렇다고 이 문제를 개인이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는 차원으로 한정지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에 언급했다시피, 3학년 이상이 된 선배들이 과 공동체에서 1학년처럼 활동하기가 힘든 것 사실이다. 과방이라는 공간에는 한계가 있고, 과 행사 대부분이 ‘유흥’을 목적으로 한 1학년 위주의 활동에 맞춰져 있다 보니 선배들이 ‘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싶은 순간들이 생기는 것이다. 과 공동체가 모든 학번과 모든 학생들의 삶을 포용할 수 있도록 고민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고학년이 과 공동체에서 절대소수가 되는 현상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선후배 간의 소통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일. 그게 젊음이 고민해야 할 문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