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울에서 자취를 한다는 것은 그 시작부터 우울해지는 일이다. 말도 안 되게 높은 부동산 거품은 주거의 최하위에 놓인 20대들의 주거 환경을 너무도 불안하게 만들어 놓았다.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반지하이거나 옥탑이거나 뭔가 하자가 있는 것이 당연지사고, 조금 괜찮은 집이다 싶으면 집세 내기가 만만치 않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게 어쩔 수 없다고들 하지만 외국의 사정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돌아오는 8월에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된 민경호(23) 씨는 스페인에서 살 방을 인터넷으로 알아보다가 생각 외로 저렴한 가격에 깜짝 놀랐다. 월300~450유로 정도면 플랫(flat, 아파트와 유사한 개념으로 방은 각자 쓰고 부엌, 욕실 등은 공유)에 방 한 칸 정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돈으로 45~65만 원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스페인이 한국보다 물가 수준이 높다는 걸 고려하면 놀라운 가격이다. 실제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대학생 이유미(24) 씨는 월 400유로(60만 원)에 일반 가정집에 방을 얻고 살았다. “60만 원이면 저렴하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일단 보증금이 없고 방이나 집도 넓은 편이고 외롭지도 않고요. 원룸에 사는 것에 비해 비용 절감이 되니까요.”
출처 : http://yunaspin.blog.me/130085600824
플랫셰어는 외국에서만 가능한 문화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3명이서 쓰리룸을 구하는 것이, 2명이서 투룸을 구하는 것이 원룸 3개, 2개를 얻어 쓰는 것에 비해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골목바람부동산의 조희재 대표는 “주거비 측면에서만 본다면 당연히 3명이 집을 쉐어하는 게 저렴하다. 임대료뿐만 아니라 각종 공과금 역시 저렴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대학가에서 원룸을 구하려면 보통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정도, 적게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은 주어야 그럴 듯한 방을 구할 수 있다. 어쨌든 방 크기는 한 자리 숫자를 벗어나기가 힘들며, 이마저도 실평수를 따지면 더 작아진다.
네이버부동산 영등포구 월세 정보
송혜란(24) 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아파트에 거주했다. 비슷한 지역의 대학에 함께 진학한 고향 친구 세 명과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인 방 3개짜리 아파트를 나누어 썼다. 세 사람이 각자 집세 20만 원과 공동생활비 10만 원씩 부담하면 생활이 해결된다. 그는 “혼자서는 어림없는 좋은 환경에서 싼 가격에 살 수 있고, 가족은 아니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느낌을 받아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숱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플랫 문화가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외국에서 플랫셰어를 체험해 본 20대들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꼽는다. 먼저 집값의 문제다.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50평 아파트를 2명이 나눠 쓰고 있는 김가영(24) 씨는 한 달에 1200달러(130만 원)를 주거비로 사용한다. 직업이 있어서 임대료가 커다란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아파트나 하우스로 나오는 월세가 일단 많지 않고, 나오더라도 월세가 대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 돈을 낼 수 있는 직장인들은 월세로 돈을 날리기보다는 저축하거나 주택담보대출을 하는 듯하다.”라고 진단했다.
대학생들이 감당할만한 60~10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받는 아파트들의 경우에도 한국의 특수한 제도인 ‘보증금’이 한 번 더 장애가 된다. 5000만 원 정도의 보증금을 세 명이서 마련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부담이다. 기본적인 돈 마련의 문제도 있고, 플랫메이트 세 명이 아파트를 사용하는 기간이 맞지 않으면, 거주에 변화가 생길 때 보증금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문화적인 차이다. 뉴욕 버팔로에서 한 달 730달러(80만 원) 플랫에 살고 있는 오명철(24) 씨는 “여기서는 한 집에서 남자 여자가 같이 사는 게 대수롭지 않고 물론 그들은 그냥 친구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특성상, 플랫 문화가 사실상 동거로 비춰져 플랫에 사는 여자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가영 씨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뭉치고 집단적 정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굉장히 개인적이고 각자의 시간을 중시하는 것 같다. 파티 같은 어울림의 문화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 조인스랜드부동산
한국에서 플랫셰어가 경제적, 문화적 이유로 아직 활발하진 못하지만, 외로운 현대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골목바람부동산의 조희재 대표는 “주거의 질을 정서적인 공유,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의 의미로 본다면 1-2인가구가 중심인 현대사회의 대안주거문화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과도한 보증금 문제나 동거를 무작정 좋지 않게만 바라보는 인식이 변화한다면, 외롭고 궁상맞은 20대의 주거 환경이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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