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그야말로 파리바게뜨 천국이다. 읍·면·동 단위에서 파리바게뜨가 없는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심지어 서울에서는 큰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파리바게뜨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특이한 광경도 볼 수 있다. 파리바게뜨는 1996년에는 가맹점 수 600개에서, 2007년에는 가맹점 수 1500개를 넘으면서 꾸준히 성장해왔다. 특히 요 근래 그 상승세는 심상치 않다. 4년 만에 가맹점수를 2배를 늘려, 작년에는 가맹점 수가 3000개를 넘어섰다. 말 그대로 ‘무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빵집은 2003년 초 18000여 개에서 지난해 4000여 개로 급감했다. 파리바게뜨와, 경쟁 프랜차이즈인 뚜레주르 점포수를 합치면 4400여 개로, 이제 프랜차이즈 빵집이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빵집보다 더 많아진 것이다. 2000년도 들어서 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빵 시장을 프랜차이즈가, 특히 파리바게뜨가 장악하게 된 것일까?




대기업의 힘으로 동네 상권을 장악하다

파리바게뜨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SPC그룹은 식품업계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대기업이다. 파리바게뜨뿐만 아니라, 삽립, 샤니 브랜드로 ‘슈퍼마켓 빵’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또한 던킨도너츠와 베스킨라빈스의 한국판매를 담당하는 ‘비알코리아’ 역시 SPC그룹의 계열사다. 그들은 이렇듯 많은 식품업체를 거느리며 거대한 ‘식품 자본’으로 성장했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동네 곳곳에 직영점 또는 가맹점을 내면서 과감한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다양한 빵, 깔끔한 인테리어, 확고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경쟁자인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동네빵집을 전부 물리쳤다. 이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빵집 이름은 ‘파리바게뜨’다.

사실 빵 시장뿐만 아니라, 요식업이나 유통 분야는 이미 유명한 프랜차이즈 몇 개가 시장을과점하고 있는 형국이다. 구멍가게가 없어지고 우후죽순 생겨난 편의점들도 그렇거니와, 영세업 중 하나인 분식집도 죠스 떡볶이, 아딸 같은 프랜차이즈들로 채워지고 있다. 동네 상권을 프랜차이즈가 장악하게 된 것은 2000년도 이후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으니, 파리바게뜨가 빵 시장을 장악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IMF 이후 늘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명예퇴직자들, 또는 직장의 불안정성 때문에 회사를 나와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파리바게뜨가 늘어나는데 한 몫 했다. 자본은 있지만 경험은 없는 퇴직 직장인들이 무턱대고 장사를 시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본사에서의 지원과, 브랜드의 인지도 때문에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체인점 개설을 생각하게 됐다. 특히 파리바게뜨는 강력한 인지도 때문에 퇴직 이후 각광받는 창업아이템이 되었다.

파리바게뜨가 주도하는 빵 문화

파리바게뜨가 동네마다 생기면서 한국의 빵 문화는 달라졌다. 물론 빵 문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면도 상당하다. 소비자들은 어디를 가도 비슷하게 ‘먹을 만한’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비교적 깔끔한 외관을 갖추고 있어, 쾌적하고 편안하게 빵을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동네 빵집처럼 빵을 고를 때 가게 점원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파리바게뜨에서 만난 대학생 박종근(26)씨는 “파리바게뜨가 가장 이용하기 편하다. 맛도 무난하고 가격도 무난하다. 시내에 있는 유명한 베이커리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동네 빵집에 가보면 가격이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은데다가 오히려 사는데 눈치만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리바게뜨가 빵 문화를 오히려 획일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품질이 떨어지는 동네빵집은 물론이거니와, 아무리 특색 있고 맛있는 빵을 만드는 곳이라도 파리바게뜨 때문에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 빵이 ‘파리바게뜨 빵’으로 한정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소비자의 빵 선택권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파리바게뜨 빵은 직접 반죽해서 구운 빵이 아닌, 냉동생지로 반죽한 것을 들여오다 보니 소비자들이 신선한 빵을 맛보지 못하게 된다. 파리바게뜨 방식의 빵 제조에 대해 유명제과점 ‘리치몬드 과자점’을 이끌어온 권상범 명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드는 빵이 훨씬 맛있을 것이다. 체인점 방식처럼 음식을 싣고 다니면서 (냉동생지) 다시 재가공하는 식으로 내놓는 것은 일종의 편법과 같다.”고 주장했다.

파리바게뜨가 한국의 빵 문화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문제제기도 무시할 수는 없다. 빵의 모든 트렌드를 파리바게뜨가 주도하다보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발효기술이 필요한 프랑스 빵 종류 같은 경우에는, 파리바게뜨에서 내놓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일본에서 들여 온 ‘일본풍 빵’을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깜바뉴나, 치아바타같은 프랑스 빵을 좋아하는 대학생 박은수(24)씨는 "파리바게뜨 빵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자극적이다. 달거나 짜거나 맵다. 프랑스빵처럼 담백하게 밥 대용으로 만들 수 있는 빵도 파리바게뜨에서 선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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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의 범람, 독립 자영업자의 시장진출을 막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빵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기존에 있던 독립 빵집을 몰아내는 것은 물론, 독립 자영업자가 빵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는 것도 막고 있다.

새로운 업체가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면 결국 독점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공정한 시장 구조가 만들어질 수 없다. 얼마 전 대기업 재벌 3세들의 제과 사업 투자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삼성의 아티제나 롯데의 포숑 등은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상 재벌3세들의 빵집은 백화점이나 강남 등지에만 위치했을 뿐 사실 동네 상권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정작 동네 자영업자들을 위협한 것은 '파리바게뜨'였다.

심지어 SPC 그룹은 ‘서울 3대 빵집’으로 불리는 홍대 리치몬드 제과점 땅을 사고, 그 자리에 파리바게뜨를 열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관련기사:  http://www.goham20.com/1513 ) 이들의 공격적인 경영은 독립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전통 있는 명장의 빵집까지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프랜차이즈 내에서도 경쟁 업체인 크라운 베이커리는 서서히 지점을 줄이고 있고, 뚜레쥬르 역시 쥐식빵 조작사건으로 인해 타격을 입으면서, 파리바게뜨만 홀로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이와 같이 파리바게뜨가 범람한 이후에, 새로 여는 개인 빵집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뚜레쥬르나, 아니면 '빵굼터' '주재근 베이커리' 같은 중소 프랜차이즈일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2년간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바로 ‘로드샵’이라는 신개념의 독립 빵집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로드샵의 등장 - 진정한 대안인가, 한 때의 유행일 뿐인가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로드샵형 빵집들은 빵가게의 외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 인테리어도 거의 하지 않았고, 심지어 간판도 없고, 빵가게의 이름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실내에는 빵을 만드는 대형 오븐과 빵을 만드는 사람만이 있고, 실외에 빵을 진열해놓고 팔고 있다. 이런 형태의 빵집들은 거의 재래시장 안에만 존재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조금 더 깔끔한 형태로 대로변에 생기고 있다.

로드샵형 빵집들은 주로 인테리어나 광고비를 줄이면서, 대신 빵 가격을 최대한 싸게 하면서 박리다매로 파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명 ‘빵 3개에 1000원’ 마케팅이다. 최근 높아진 빵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을 저가의 가격으로 공략한 것이다. 파리바게뜨가 식상해졌거나, 파리바게뜨의 빵이 너무 비싸다고 느낀 소비자들은 로드샵을 대안으로 찾게 되었다.

이렇듯 새롭게 생겨나는 로드샵형 빵집들에 대해, 빵 관련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빵 과자 갤러리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여론은 로드샵형 빵집에 상당히 호의적이었고, “가격이 싸고 맛있는 곳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1000원에 3개인데도 맛있다.” “동네빵집인데도 꽈배기가 빠바(파리바게뜨)보다 맛있다.” “동네 즉석빵집이 파리바게뜨를 이겼다.” 와 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견도 존재했다. 닉네임 ‘빵떡순’은 "1000원에 3개짜리 빵은 딱 그 가격만큼의 맛을 낸다. '1000원에 3개' 빵은 미끼상품이고, 맛있어 보이는 것은 거기도 가격대가 세다." 라며 가격이 의외로 싸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닉네임 ‘ㄱㄴ’은 “어쩔 수 없이 반죽에 들어가는 계란 비율이나 우유를 물로 대체하거나, 마가린도 조금 더 저렴한 걸 사용할 것이다.” 라며 재료의 품질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췄다.

로드샵형 빵집이 앞으로 파리바게뜨의 진정한 대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잠깐의 유행으로 그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이들 중에는 동네에서 파리바게뜨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곳도 있지만, 1년도 안 돼 폐업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저렴한 가격만으로는 파리바게뜨의 ‘먹을 만한’ 빵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 수 없을 것이다. 파리바게뜨의 시장 독점 속에서, 이들이 어떤 식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