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이야, 너가 애인하나 안 데려 오는 것만 화가 나는 거야!” 정월 초하루 저녁, 화기애애한 가족식탁에서 혼기가 꽉 찬 딸에게 아버지가 장난스럽게 얘기한다. “아버지는 어떤 남자가 좋아?” 딸이 묻는다. “어...미국놈하고 일본놈만 아니면 돼!, 어쨌든 조선사람이 좋다.” 딸이 되묻는다. “조선사람? 어떤 조선사람? 최근에는 종류가 많은데...” 딸의 질문에 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인다. “조선사람 이라고 하면 그건, 아버지와 같은 조선사람 말이지...” 

영화는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의 한인타운에서 시작된다. 이곳의 주민은 4분의 1일 이상, 약 3만 명이상이 한국인이다. 이들은 일본에서 재일교포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양영희 역시 그렇다. 그녀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의 간부인 아버지(양공선)를 두고 있다. 그녀의 국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이다.

재일교포사회는 1948년 본국에서 남과 북에 서로 다른 2개의 정부가 생기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으로 인해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양분된다. 이북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와 이남을 지지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재일교포사회는 이념때문에 분열했고, 두 세력간의 대립은 점점 심해졌다. 이와 더불어 일본사회의 노골적인 재일교포 차별은 점점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1959년 북한은 약 20년 동안 ‘귀송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의 국적을 가질 것과 북으로의 귀국을 권했다. 당시 남한은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재일교포인 자신들의 삶을 물질적으로 지원해주는 북한에 고마움을 느낀 많은 이들이 북으로의 귀향길에 올랐다. 영희의 오빠들 역시 북으로의 귀국을 택했다. 그들은 머지않아 통일이 되어 원래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함께 살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통일의 길은 멀기만 하고 북한은 일본과 공식적인 국제관계도 맺고 있지 않은 상태다. 북으로 부터의 일본행은 금지되어있고 단지 일본의 가족들이 가끔 북으로 그들을 보러 갈 뿐이다. 영희는 북한과 일본을 오가며 약13년 동안 그녀와 그녀의 가족의 이야기를 비디오카메라에 담아낸다. 

성인이 된 영희가 가본 북한은 그녀가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곳은 북한 밖의 세계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수령님의 은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에게 그 이상의 사고는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그랬다. 그녀의 아버지도 북에서는 모든 것을 수령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실상, 북의 가족들은 일본의 가족들의 지원 없이는 살기 힘들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들은 살았다. 어릴적 북으로 건너갔던 그녀의 오빠들은 북에서 이미 가정을 꾸렸고 여러 아이들을 두고 있었다. 아침에는 어머니가 아이들 학교 보내기에 바쁘다. 아이들은 일본에서 온 할아버지 앞에 재롱을 부리고 때로는 아이스크림과 피자 같은 것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생일때면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케이크를 먹고 선물을 나누는 모습 등 사실 우리들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어쨌든 같은 한국말을 쓰고 때로는 앞날을 걱정하기도 하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같은 우리민족 이었다. 다만 정치적 이유와 사상의 차이로 잠시 떨어져 있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영희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오빠들을 북으로 보낸 것을 후회해?” 아버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한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고 그러한 흐름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에게는 사실 정치적 이유나 사상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직 빨리 통일이 되어 함께 사는 것만이 그들이 바라는 삶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산가족들과 해외교포들이 남과 북의 대립으로 인해 떨어져 지내고 있다. 지난 몇 년간은 남북 화해 분위기로 그나마 교류가 활발했으나 지금은 또 다시 발길이 끊어진 상태다. 이러한 그들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서로를 다시 타자화 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아주 상이한 국가로 받아들이고 외국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남과 북이 분단 된지 50여년, 오해와 불신만 깊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다시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우리는 함께 역사적으로 동고동락 했던 같은 민족 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분단과 휴전이라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