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연일 메달 소식이 이어지며 국민들의 가슴에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이 아로새겨진다.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여수에서는 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12일까지 진행되는 여수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축제에 속하는 대규모 행사다. 그런데 막바지에 다다른 엑스포는 축제라는 말이 무색하게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람객들, 매너 좀 지키는 걸로”
 

고함20에서는 여수 세계박람회 관람객들의 무질서에 대해 이미 다룬 적이 있다. (7월 12일자 ‘세계여수박람회의 무질서한 관람객들’ 참조) 그 뒤로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관람객들의 태도는 조금이나마 나아졌을까?

“전국에 있는 무개념들만 온 줄 알았다”는 이상희 씨(20)는 가는 곳마다 진상 관람객들을 만났다. 특히 휴가철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줄서기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 씨는 ‘무질서의 끝을 봤다’고 한다. 이 씨는 “새치기, 자리 맡아주기는 기본”이라며 “직원들이 ‘새치기 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치고 말려도 무시하고 오히려 ‘내가 멀리서 이까지 왔는데 왜 지X이냐’며 화내는 아줌마도 있었다”고 했다. “또 어떤 아저씨는 새치기를 해놓고 직원이 ‘지금 새치기 하시는 거예요? 나오세요’ 그러니까 아주 당당하게 '새치기 할 건데요, 못나가겠는데요’라며 버티고 있었다”며 줄 서는 동안 만났던 개념 없는 관람객들을 회상했다.

관람객들의 무질서, 무개념 행동은 전시관 안에서도 계속됐다. 대학생 박성수 씨(24)는 “멀티관에서 영상을 보여주는데 한국 장애인협회에서 온 단체 손님들이 계속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방해해서 제대로 못 봤다”며 “장애인 분들은 질서를 잘 지키시는데 그 분들을 인솔해야 할 도우미들이 오히려 서로 앞에 앉으려고 어린 애들 밀치고 난리였다”고 했다. 박 씨는 “아쿠아리움에서도 직원들이 사진 찍을 때 플래시 터뜨리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플래시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기본적인 매너조차 지키지 않는 관람객들을 비난했다.

ⓒ 아시아뉴스통신


“봉사하러 왔다가 욕만 먹고 가지요”
 

이 와중에 가장 힘든 사람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자원봉사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진상’ 손님들과 맞서야 한다. 폭언은 물론이고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대학생 이민영 씨(23)는 지난 주말 엑스포에서 한 진상 손님이 자원봉사자에게 꿀밤을 때리는 걸 봤다. 이 씨는 “입구에서 어떤 아저씨가 동반 1인표 한 장으로 아내와 아이 다섯 명을 데리고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했다. 자원봉사자가 규정상 한 장으로 모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니 계속 욕하며 자원봉사자를 때리는 시늉을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아이들한테 짜증스럽게 가자고 하더니 분이 안 풀렸는지 다시 돌아와서는 자원봉사자 머리에 꿀밤을 때리고 갔다”며 “(자원봉사자가)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였는데 아무 말 못하고 당하는 걸 보니 불쌍하고 안쓰러웠다”고 했다.

자원봉사자가 여자인 경우에는 성희롱, 성추행의 위험도 있다. 자원봉사자 4기로 활동한 성미소 씨(23)는 “아줌마들이 내 엉덩이나 허벅지를 툭툭 치면서 부를 때가 많아서 몇 번이고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며 “할아버지들도 팔 부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면서 불러서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성 씨는 “한 번은 어떤 덩치 큰 관람객이 넘어지면서 내 허리를 잡았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남의 허리를 잡았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맞지 않냐’고 했더니 오히려 화를 내며 나를 밀치려고 했다”며 엑스포에서 겪은 황당한 경험을 얘기했다. 그녀는 “더 황당한 건 팀원들이 나를 위로해주기 보다 ‘네가 자원봉사자니까 참아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라며 “내 몸에 남들이 손대는 걸 참는 게 자원봉사자의 일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문제는 관람객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여수 세계박람회의 자원봉사 팀은 연령대가 다양하게 구성돼있다. 전국 각지에서 나이도 다른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팀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같은 조의 아저씨가 여자 조원을 성추행해서 쫓겨난 일도 있다는 성 씨는 그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장난도 치고 좀 친해진 아버지뻘의 조원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았을 때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는 그녀는 “두 번 정도 뿌리치자 더 이상 그러지 않고 또 분위기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그냥 넘어갔는데 굉장히 불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운영위원회나 조직위원회 측에서 쉬쉬하고 그냥 넘어가려 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은 어디 하소연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 여수세계박람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발췌



“운영상의 문제가 가장 큰 탓”
 

빅오쇼 팀에서 근무하는 자원봉사자 김수호(가명) 씨는 ‘진상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 씨는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새치기나 자리 맡기 같은 행동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며 “하루에 5-6만 명 정도 수용할 공간에 10만, 20만씩 관객들을 받아서 뭐 하나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지간한 사람도 다 진상이 되지 않겠나”고 관람객보다 운영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씨의 말대로 여수 세계박람회는 초기에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4만 명 정도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목표 관람객인 800만 명 달성에 비상이 걸렸다. 각종 언론에서는 ‘엑스포 특수 실종’이라며 여수 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조직위원회는 관람객을 늘리기 위해 ‘지자체 엑스포 방문의 날’을 지정하여 1인당 3천원만 내면 입장이 가능하게 하고 ‘대학생 관람 주간’을 정해 학생들에게 5천원 할인권을 제공하는 등 각종 할인 이벤트를 열고 있다.

문제는 각종 할인권 남발에 휴가철까지 겹치면서 하루 관람객이 수용치를 넘어선 데 있다. 지난 29일 하루 관람객은 27만 명으로 초기 4만 명의 약 7배의 인원이 몰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시관마다 3-5시간씩 대기하는 건 기본이요, 30도를 넘는 폭염 속에 관람객이 집단 탈진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게다가 초기에 3만 3천원의 입장료를 냈던 사람들이 3천원짜리 입장권 판매 소식에 분통을 터뜨리며 환불을 요청하는 등 관람객 수에만 신경 쓴 입장권 떨이 판매의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의 품격을 드높일 거라 기대했던 여수 세계박람회가 무리한 인원 채우기로 ‘나라망신’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런던에서 쌓은 ‘국가의 품격’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또 한 번의 국제 행사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여수 엑스포의 깔끔한 마무리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