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들어 정부 차원의 예술계에 대한 지원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2011년 문화관광부가 제정한 영화발전기금안에서는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제작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고, 지원 방식도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 변경되었다. ‘2012 국민독서의 해기금으로 올해 투입된 예산은 불과 5억원으로 한류 관련 예산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부실대학 지정 기준에 취업률이 포함되면서 예술대 학생 된서리를 맞았다. 그나마 올 11월부터 일명 최고은법이라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4대 보험 혜택이 무산되고 예술인의 기준이 뚜렷하지 않은 등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예술계의 비판이 거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술인들의 생활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2009년 기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액이 100만원 이하가 61.8%에 달했고 200만원 이상은 20.2%에 불과했다. 계속되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홀대로 인해 이러한 지표는 올해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술대학생, 그리고 20대 예술인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계속 창작활동을 하자니 생계 걱정이 앞서고, 그렇다고 취업을 하자니 그 동안 품어 왔던 목표를 상당 부분 포기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예술대 학생인 조호은(동국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씨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7년여 동안의 호주 · 뉴질랜드 생활은 그에게 한국과 이들 국가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게 했고,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하면서 그러한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도대체 왜 한국 사회에서는 예술이 홀대받는 것일까. 예술적 성취를 위해 달려온 20대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활기찬 모습의 학생으로 가득한금요일 오후의 캠퍼스 안에서, 두 시간도 넘게 긴 이야기를 했다. 그의 얼굴과 말투에서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단호함이 묻어났지만, 한편으론 앞날에 대한 불안감도 함께 나타나 있었다.




Q. 외국 생활을 오랫동안 하셨지요. 언제부터 외국 생활을 하셨나요?

중학교 2학년 초였어요. 그 해 4월에 뉴질랜드로 갔으니 2002 월드컵 전이었네요.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라는 도시에 갔는데 거기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고, 2007년 시드니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시드니로 이사를 갔어요 

Q. 외국의 학교생활에서 힘들었던 점이나 재밌었던 점이 있다면? 

힘들었던 건 많았죠. 언어 소통도 안 되고. 외국인이다 보니 거기 있는 현지인들이랑 친해지기도 어려웠어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 혼자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겪게 되는 온갖 일들이 번거로웠어요. 홈스테이를 구한다든지, 보험처리를 해야 한다든지……그런 걸 직접 서류를 써 가면서 혼자 했어요. 물론 뉴질랜드에는 가디언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법적 보호자를 두고 일을 처리한지라 그나마 수월하긴 했지만, 자질구레한 일들은 제가 했죠.

좋았던 건 자유였어요. 분위기 자체도 그랬고, 자기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들도 많아요. 스포츠, 독서, 여행 등 여가를 즐길 시간이 많죠. 저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교지편집위원회에서 일을 했었어요. 교지에서는 주로 행사 사진을 찍고, 학내 소식들을 다루었죠. 사실 교지활동을 하다 보면 타지에서 온 많은 학생들과 얘기를 하게 되요. 아무래도 제가 가장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부분이 타지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 등에 관한 거였는데, 그러다 보니 그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생각을 나누었어요. 그런 게 재미있었지요. 


Q. 시드니대학교를 1년 반 다니다가 학기 중에 갑자기 중퇴를 하셨다고요. 한국으로 돌아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7년 정도 외국에 살다 보니 힘들었어요. 그 기간 동안 1년에 한 달 정도 한국에 갔었어요. 사실 처음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좋았어요.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어서 좋았는데, 대학교 들어오고 나서야, 이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가족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고요.

   

Q. 그렇게 해서 동국대에 입학하게 되었죠.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호주에서는 사실 언어 문제라든가 외로움 같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한국 대학도 한국 대학대로 어려운 점이 있어요. 한국인 특유의 사회적 습성, 특히 관계 맺기 같은 데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강박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대학을 다녀야 하고,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막 드는 거예요.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란 건 알겠는데, 자꾸만 회의가 들어요.

 

Q. 한국으로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시드니대학교에 간 건 상당 부분은 집에서 명문대를 가길 바랐기에 간 거였어요. 개인적으로도 명문대를 가면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 같기도 했고요. 하지만 행복하진 않았던 게, 전공을 선택할 때 항상 2%가 부족했어요. 동국대에 입학할 때도 그랬어요. 처음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문예창작학과로 전과를 했어요. 전공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거 괜찮다, 정말 공부하고 싶다, 란 생각이 드는 전공을 찾는 게 중요해요. 그게 어찌 보면 학교 간판보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걸 충분히 인지하고 전공을 정해야지, 단순히 취업이 잘 될 것 같다, 해서 전공을 정하면 결국은 자기 자신이 혼란에 빠져요. 그래서 전 지금 행복해요. 그런 전공을 찾았으니까. 지금까지는 정말 좋아하는 길을 찾기 위해 고민해 온 시간이라고 봐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동시에 들어요. 어떻게 4년짜리 전공으로, 앞으로 60년은 넘게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그건 말도 안 돼요. 계속해서 관심있는 분야를 탐색해야죠.

 

Q. 전공으로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전공을 많이 바꿨어요. 교육학, 철학, 미술사, 정치외교학 등 여러 가지를 했어요. 다들 조금씩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였지만 막상 이걸 계속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하니 다들 뭔가 조금씩 부족했어요. 진정으로 좋아하는 학문을 찾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소설에서 그런 진정성을 찾았다, 는 아니었어요. 다만 소설을 통해 내가 나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 는 점이 맘에 들었어요. 단순히 학문을 배우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고 창조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그 수업에서 사실 많이 혼났어요.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안 돼, 이건 소설도 아니야, 라고 혹평을 받았죠. 그런데 그게 정말 좋았어요. 자극받으니까 더 도전하고 싶어지잖아요. 뭐가 잘못되었지?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큰 자극이 되었어요. 쓰는 법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그래서 문예창작학과로 전과를 했어요. 전과하면서 확실히 글을 더 많이 쓰게 되었죠(웃음). 글 쓰는 게 반드시 재밌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죠. 그럼에도 저는 지금 제 전공이 좋아요.

   

Q. 호주의 대학생과 비교해 한국 대학생들의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한국 대학생들을 보면 뭔가 여유가 없어요. 무언가 해야 하고, 빨리 이루어야 하고, 항상 짜인 계획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과도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학교의 주체가 학생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매우 많이 봐 왔어요. 사실 입학하는 순간부터 학생은 주체가 되지 못해요. 학생에게 주어지는 자율권이 너무 없어요. 학생들은 학교에서 맞춰주는 커리큘럼에 따르죠. 뭔가 맞지 않으면 불안해 하고. 그러다 보니 뭔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데 미숙한 것 같아요. 자기가 주도하는 학문이 부족한 거죠. 대학교도 점차 취업률, 시험 합격률 등 실질적인 지표를 중요하시하게 되고요.

한국 대학생들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엄청나게 많은 선택에 노출되어 있는데 하나라도 선택받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잘 해야 해요. 꿈을 가져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등등. 저는 이것을 긍정의 강박이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다 긍정적인 요소들인데 그게 강박이 되어 버리는 거죠. 그러다 보니 한 번도 자기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해요. 이것저것 다 하느라 바쁘니까요. 비단 캠퍼스뿐만 아니라, 이 사회 자체가 강박이에요. 호주에서는 이러한 강박이 아닌 여유가 일상화되어 있어요, 이미 그곳은 여유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죠.


Q.
한국 대학교에서 실현되었으면 하는 것은?

다양한 과목에 대한 존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학이란 곳은 넓고 크고 다양한 전공들을 배우는 곳이잖아요. 하지만 한국의 대학교에서는 그게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 같거든요. 학과 통폐합이다 뭐다 말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학과를 더 세분화하여 늘려야 한다고 봐요. 학문의 다양성을 더욱 확대하고, 다양한 전공에 대한 자유가 존중되었으면 해요. 왜 경영학과와 의대 등 인기 학과만 키우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가요. 명색이 종합대학이면서 말이죠. 학문은 취업률로 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유일한 잣대는 없어요. 경영에는 경영의 잣대가, 예술에는 예술의 잣대가 있는 거죠. 취업률이라는 잣대는 결국 성장과 경쟁이라는 틀로 연결되는데, 과연 이게 대학이 추구하는 가장 최우선일까요? 대학교의 이런 모습은 사회의 모습과도 연결돼요.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성장 중심적이에요.

   

Q. 그렇다면, 앞으로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지금의 20대가 30, 40대가 될 때를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떠한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Art’라는 단어가 있어요. 본래 아트는 중세 때는 기술이라는 의미로 쓰였어요. 그 이후에는 예술이 되었고요. 이제 아트는 곧 문화가 될 거예요. 기술, 성장, 경쟁 이런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될 거예요. 그것이 곧 복지이고 여유고, 교육이고, 모든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복지의 최종 완성은 예술이라고 봐요. 단순히 편하게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살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문화를 즐기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이요. 쌀을 주고 집을 준다고 해서 문화가 형성되진 않아요.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위해서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생각이 필요해요. 이는 단순히 누군가로 인해 한꺼번에 형성되는 게 아니에요. 국가 차원에서 문화, 그리고 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서, 문화를 만들 토대가 너무도 약하죠.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라는 책에 나온 이야기를 하나 인용할게요. 드골 대통령이 장관들을 모아 놓고 국가 운영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당시 프랑스는 경제도 어려웠고, 높은 청년실업률로 인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던 시기였죠. 가만히 듣고 있던 드골 대통령이 갑자기 옆의 비서에게 물었어요. 우리나라에 시인이 얼마나 살고 있냐고. 비서가 며칠 뒤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의 시인이 있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드골이 말했어요. “그 정도면 우리나라는 아직 살 만하다라고.

  


Q.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정책,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차기 대통령은 이러한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어야죠.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문화적 그림을 가질 것인가, 어떤 문화를 형성하고 어떤 사고를 가질 것인가, 에 대해 면밀히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는 보이는 것에만 급급해요. 전시성 행사에 열을 올리는 게 그런 이유죠. 빨리빨리 준비하고, 보여주고, 많은 걸 얻고 싶으니까요. 그런 게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예술에 대해서는 지원이 부족한 것 같아요. 한국은 문화, 예술과 경제성장의 차이가 너무 커져 버렸어요.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다다르는 동안 문화와 예술은 저 뒤에서 헐레벌떡 뒤따라오는 거죠. 차기 대통령은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그것을 끌어주어야 해요. 문화적 복지가 왜 중요하냐면, 사람들이 문화적인 활동을 통해 위안을 받고 치유를 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너무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문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해요. 그리고 예술가들은 국가의 지원 부족 등으로 인해 예술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거고요. 악순환에 빠져 있어요.


Q.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스스로 실감하는 부분이 있나요?

주위에서 수많은 시인, 소설가, 미술가들과 인디밴드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기본적인 지원조차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 , 미술 등을 못해요. 작년에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도 그렇고. 그만큼 예술가들의 생활고가 심각해요. 이번 정권에 들어서서 예술 창작 기금이 다 끊겼어요. 그러고 보면 지금 주목받는 2030 소설가들은 대부분 이전 정부 때 지원을 받아 소설을 마음놓고 쓸 수 있었던 이들이에요.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문단의 유망주로 꼽히는 이렇다 할 소설가가 없어요. 글은 써야 하는데 돈은 부족하고, 그래서 글 쓰는 시간을 줄이고 생계전선에 뛰어드는 거예요. 당연히 창작에 전념하지 못하니 그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산하지 못하죠. 혹자는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 라고 하는데, 웃기는 소리예요. 예술은 현실적이고 다분히 자본이 전제되어 있는 영역이예요. 그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해요. 가난한 채로 예술을 해야 한다는 건, 정말로 옛날이야기에요.

 

Q. 예술대생으로서 그러한 지원 부족에 불안함을 느끼나요?

소설이 좋아서 문창과로 온 거지만, 요즘 주위를 보면 취업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돼요. 저희 과 학생들을 보면 신문방송학과, 국어국문학과 등으로 복수전공을 많이 해요. 이 나라에선 도무지 글 쓰는 것만으론 먹고 살기가 힘드니 다른 길을 모색하는 거죠.

예술대생들, 정말 치열해요. 엄청난 노력을 해요. 밤새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그런데 그걸 바보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게 너희에게 안정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 왜 그런 데 목을 매느냐, 라고 말을 해요. 그런데 그 일이 좋은 걸 어떡해요. 저희는 저희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예술대생의 노력에 대한 존중이, 한국 사회에선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Q. 하지만 요즘 서민 경제가 너무 어려운 건 사실이죠. 사람들이 예술을 누릴 틈이 있을까요?

맞아요. 문제는 지금 당장 20, 그리고 나아가 서민들이 너무 배가 고프다는 거예요. 예술은 자기 배가 채워지고 살 집이 마련되고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건데, 기본적인 복지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해요. 한국 성인 평균 독서량이 1년에 10권 정도인데,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도 30여 퍼센트나 돼요, 일이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그런 측면이 큰데, 그것도 결국 기본적인 복지 시스템조차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최소한의 문화를 즐길 여유조차 부족한 상황이죠. 누가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보러 가는 걸 안 좋아하겠어요. 누리고 싶은 데 시간과 여유가 없는 거죠. 사실 막막해요. 예술과 문화의 보존, 그리고 향상을 바라는데, 다른 외부 요인들이 너무 열악해서……성인들뿐만이 아니라 고등학생, 대학생들도 그래요. 공부해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예술을 향유하러 가겠어요. 그래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아이돌, 케이팝 등에 열광하는 거예요. 유행을 쫓아가는 거죠. 그 자체를 가지고 뭐라 할 건 아니에요.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니까. 그런데 그게 과연 장기적으로 이어질 있는 문화인진 의문이에요.

 

Q. 차기 정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차기 정권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을 거예요. 당장 산적한 실제적 복지 문제도 있고, 문화와 예술이 사회 구조에 스며드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다만 그 틀을 다져주고, 여기서 더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이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해요. 환경과 자리를 만들고, 예술가들을 지원해 주면 사람들은 저절로 따라와요. 그러니 공약들이 너무 앞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리적 복지뿐만 아니라 정신적 복지도 시급한 과제라는 걸 잊어선 안 되요. 최근에 강력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는 것도 결국은 정신적 빈곤 때문이에요. 여유 없고, 쫓기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까요. 그들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비단 경제적 어려움으로만 모든 걸 볼 수는 없어요.


Q.
어떤 점에서 특히 한국 사회에 예술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이 길이 아니면 안 돼, 이 방식이 아니면 안 돼, 라고 사람들은 많이들 이야기해요. 근데 그렇지 않고 살고 있는 다른 나라들도 많아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회 전체가 강박에 시달리다 보니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그것은 결국 어려운 경제, 그리고 살인적인 취업전선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제 바람이 사치라는 생각도 들어요. 당장 취업해야 하는 현실이 닥쳐왔는데, 과연 문화에 신경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한국 사람들에겐 표현이 필요해요. 표현이 곧 예술이거든요.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나누고, 토론을 하고, 행동을 하고. 그런데 한국은 이러한 표현의 자유가 부족해요. 그 표현의 자유가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될 수 있는데, 그걸 전시성 행사 등의 보여주기식 행정과 사회에 만연한 강박증이 막아 버려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 되는 걸 매우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시민들을 계몽하고, 무언가를 규제하는 게 국가가 할 일은 아니에요. 개인이 나로서 설 수 있게 하는 것, 사람들에게 환경을 제공하는 것, 저는 그게 국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책임져 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국가는 생각해야 해요. 개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나? 환경을 제공해 주었나? 개인에게 가지고 있는 국가의 책임은 다 했는가?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아요. 

물론 20대 중에서 나름대로 공동체를 만들고, 예술을 하며 자체적인 길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현재의 사회 하에서는 한계가 뚜렷해요. 사실 20대들은 독립하고,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데,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국가는 이들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도 않고, 기성세대는 그런 걸 하위문화로 규정지어 버리고. 결국은 존중이에요.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이 필요해요.

 

Q. 예술대 학생으로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예술대 학생들을 보는 기준부터 달라져야 해요. 취업률이라는 일률적 기준으로 인해 대학 평가를 매기고, 예술대생이 주된 학교는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부실대학에 연이어 지정되고. 그래서 예술대 학생들이 많이 불안해 해요. 미래를 고려하여 예술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이 봤고요. 사실상 국가가 예술대생에게 취업을 하라고 떠밀고 있는 상황인데, 예술대생들이 과연 취업을 위해서 이곳으로 왔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에요.

예술가들도 그래요.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때문이 아니라, 선택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예술계에서 이탈을 해요.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권리가 있고 사람마다 각자 다 재능이 다른데, 그걸 국가가 보장해주지 못하면 그 사람들은 갈 곳을 잃게 되죠. 예술가는 한량이 아니에요. 일반 구직자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해요. 그들에겐 취업보다는 자기 세계를 만들고 소통하는 것이 일차 목표거든요.

 

Q. 마지막으로 같은 2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설가 손홍규 씨가 이런 말을 했어요. “20대는 세상을 심판해야 할 나이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힘이 쭉 빠졌어요. 우리는 세상을 심판해야 할 나인데, 세상에 더 뛰어들고, 관찰하고, 뜯어봐야 하는 나인데, 우리는 오히려 거기에 속박되어 있잖아요. 20대들은 요즘 몸짱, 성형 등 외모적인 측면이나, 스펙, 도전, 열정, 패기 등에 많이 매달려요. 놀랍게도 그 많은 걸 다 신경 쓰고, 다 하고 있죠. 그럼에도 지금 20대는 건강한가? 에 대한 의문이 들어요. 정작 자신과 자신 주변의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죠. 세상에 얽매여 있어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고 싶어요. 저는 지금 4학년 2학기인데, 학점을 더 잘 따야 했다거나, 대외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 했다거나, 무언가 상을 더 받아야 했다거나, 이런 후회가 들진 않아요. 정말 후회되는 건 왜 더 책을 많이 읽지 못했을까, 하는 거예요. 적어도 우리가 쌓을 수 있는 무기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뭐라도 좋으니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잠시 멈추고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책읽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유도 책에서 찾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