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괴롭힘에 못 이겨서 자살을 택한 중학생부터 티아라 사태까지, 왕따 문제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왕따 문화는 특히 중·고등학교에 유행처럼 번져서, 한참 감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큰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욱 크게 대두되고 있다. 왕따 피해를 경험한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사회 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 등 '왕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이에 왕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왕따 피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 중앙대 사회학과 정혜경(23) 대표가 만든 ‘더블에이’는 국가차원이 아닌, ‘사회적 기업’에서 왕따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혜경 대표는 어렸을 적 자신이 왕따를 당했던 아픈 경험을 극복하고, 이제는 왕따 피해자들의 멘토가 되어서 그들이 왕따 피해 경험을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대인관계의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Q. ‘더블에이’가 어떤 회사인지 설명해주세요.

왕따 피해 청소년들을 일대일로 가정방문을 해서, 대인관계 지식을 알려주는 일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에요. 심리학과 대인관계 지식을 섞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것을 이용해서 일대일 상담 형식으로 학생들과 대인관계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가는거죠. 또한 왕따를 당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진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다양한 시도도 겸하고 있어요.


Q.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기업을 열 게 된 건지 궁금한데요.

고용노동부와 중앙대학교에서 함께하는 창조캠퍼스라는 프로젝트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학교에 있는 15개 팀 중 하나로 선발이 되어서 60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Q. 대표로서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저는 대표로서 더블에이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요. 제가 직접 학생들을 만나러 가서 상담을 해요. 지금까지 총 7명의 학생들을 상담 했어요. 1:1이고 직접 학생 집에 방문을 해요. 단순히 프로그램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으로 연락도 하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사후관리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저 혼자서만 상담하러 다니니까 아무래도 조금 부담이 되는 부분도 있어요.

 

Q. 왕따 학생들이 상담을 직접 신청하나요?

왕따 학생들이 모이는 네이버, 다음 카페들이 있어요. 그곳에 글을 올려서 학생들을 구했어요. 물론 다른 경로로 저희가 하는 일을 아시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고요.
 
 

Q. 왜 사회적 기업 아이템으로 ‘왕따 피해자 상담’을 생각해보게 됐나요? 다른 좋은 아이템도 많았을 텐데

제가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결정적 계기는 저 역시 중1때 말실수를 해서 왕따를 당한적이 있어서에요.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 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언급된 친구의 무리들이 소위 ‘노는애’들이었어요. 그렇게 사소한 이유 때문에 왕따를 당하고 한참을 기죽어서 지냈어요. 6개월 정도의 기간동안 따돌림을 당했는데, 그 기억이 대학교 때까지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왕따를 당한 이후에는 대인관계가 두렵기만 했어요. 제가 지금은 말을 잘하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사람눈도 못 마주치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좀 치료를 받고, 상담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심리 상담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Q. 심리상담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더블에이에서는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주려고 노력하나요?

일단 심리상담 자체를 못 받는 애들이 많아요. 50분에 5만원이고 10회 이상 받아야 효과가 있어요. 그것도 부모님이 만류하거나 돈이 없으면 못 가죠. 그리고 막상 가도 상담사는 자세한 행동지침을 내려주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실질적으로 효과를 주고 싶었어요. 대인관계에서의 지혜를 주고, ‘대인사고’라고 사람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항상 가지게 되는 공통적인 생각이 있는데, 그걸 긍정적으로 바뀌게 해주고 싶었어요. 또 경청하는 방법, 사람을 대할 때의 말투나 목소리 등의 대인행동 면에서도 기술을 알려주죠. 그리고 자존감을 올려주는 것도 중요해요. 애들이 왕따를 당하면 자존감이 낮으니까 부당한 경우가 있어도 항의를 못해요. ‘나는 이런 대우를 당할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자존감을 올려주는 부분도 프로그램에 들어있죠.
 

Q. 일을 하다보면 큰 보람이 느껴질 것 같아요. 인상 깊었던 학생이나, 사건이 있다면?

대학교 1학년 학생을 상담해 본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랑 싸운 이후로 불안하고, 다른 사람이랑 말을 할 때 자기가 어떤 말을 할지 모르겠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다 끝내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여태까지 받았던 어떤 심리상담보다 좋았다. 감사하다”고... 갑자기 눈물이 확 났어요. 제가 중대에서 학생의 집인 3호선 원당역까지 1시간 넘는 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보니까 엄청 힘들다고 느끼던 때였는데, 순간 기분이 확 좋아졌죠. 이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아서요.

그리고 학급 임원까지 할 정도로 똑똑하고 착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전학을 간 케이스였어요. 전학 간 것 때문에 리더쉽 전형 입시도 못쓰고 친구들도 다 잃어버리고, 안타까웠죠. 집은 여전히 학교 근처에 있었는데 집에 갈 때는 사복을 가방에 챙겨서 간대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를 왕따 시켰던 학생들이 교복을 보고, 지금 다니는 학교 와서 나쁜 소문을 펼칠까봐 너무 무섭다는 거예요. 마음이 아파서 프로그램 진행 외에 사적으로 많이 만났어요, 새 친구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사진 찍어오면 선물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도 있었고... 프로그램을 마친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는데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고 하니 참 다행스럽죠.

 

Q. 왕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잖아요. '당할 만하니까 당하는 거다.' 이런 식의...

정말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죠. ‘당할만하니까 당할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왕따 시키는 애들은 선배들하고 잘 지내고 선생님하고도 잘 지내거든요. 그러니까 그들이 왕따 피해자에 대한 낙인을 찍는 거예요.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왕따를 정당화 시킬 순 없어요. 사실 왕따 요인은 정말 다양하거든요. 정말 작은 이유로, 이를테면 “쟤가 나랑 화장실 손 안 잡고 갔어.” 이런 이유로 왕따 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한번 왕따를 당하면 피해학생은 평생 대인관계에서 고통을 겪거든요. 정작 사회에서는 그 점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을 안 해요. 안타깝죠.


Q. 왕따 문제 해결에 대해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걸 사업화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었어요. 집단상담식으로 해볼까 강연식으로 해볼까 1:1상담을 해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도움 받을 수 있는 컨텐츠도 부족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대인관계 기술에 관해서는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책을 많이 읽고, 발로 뛸 수밖에 없었어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학과 친구한테 묻고 또 물어서 프로그램 계획을 짰어요. 처음 하는 거니까 확실히 힘들었어요.

 

Q. 남들이 안가는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두려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

매순간이 불안하죠. 조금만 실수하면 입소문 잘못 타서 망할까봐, 판단 한 번 잘못하면 일을 전부 그르칠까봐 느끼는 불안감이 컸어요. 중대 창조캠퍼스 15개 팀 중간 평가를 했는데 거기선 1위를 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조금 놓이긴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잘 해야 인정받기도 하고, 나중에 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계속 열심히 하고 있어요.  또 경영 외적으로, 개인적인 측면에서 앞으로 제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많아요. 지금 하는 일과 훗날 내 직업과 어떻게 연결될까, 고민해보면 아직은 잘 모르겠으니까요.

 

Q. 주변에서도 취업이 잘 안 되죠?

선배들도 취직이 안돼요. 취업이 워낙 안 되니 그냥 자격증 공부만 하는 언니도 있고... 그런 거 보면서 ‘나도 장녀라서 돈을 벌어야 할텐데. 뭐해먹고 살지.’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Q. 취업이 워낙 큰 화두가 되니까 20대의 관심사가 오로지 ‘취업’에 집중되는 분위기에요.

동기 하나가 위닝(축구게임) 대회를 열었어요. 저는 주도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재미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 대단하다고 칭찬까지 했어요. 그런데 정작 그 동기의 주위 사람들이 전부 동기를 욕하는 거예요. ‘너는 가둬두고 토익 공부만 시켜야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토익. 대외활동을 하는 것만이 인생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 안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들을 지지해주고, 그게 돈이 안 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Q. 요즘 청년 문제가 심각하고, 본인도 그것 때문에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정부, 또는 정치권에서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노력할 부분이 무엇일까요.

‘도전 할 수 있는 환경’이요. 20대 애들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이 일을 하는 것도 지원이 없으면 못했잖아요. 앞으로 청년들에 대한 지원, 그리고 실패했을 때의 안전망이 더욱 확장되면 ‘하고 싶은걸 당장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이 되겠죠. 지금 애들이 자격증 따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하고 싶은 게 있어서도, '무서워서' 그런 거예요. 속된말로 ‘죽도 밥도’ 안 될까봐요. 그런데 사실 실패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경험도 없고, 처음이면 끝까지 밀고 나가기도 힘든데 실패하는 게 당연해요. 그런데 실패했을 때 대가가 정말 크잖아요. 도전을 못해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Q. 그래도 도전을 하고 사시니까 행복하실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 더블에이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들이 대인관계에 대해서 아파하지 않도록, 전국적으로 우리의 프로그램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블에이에서 일 년 정도 프로그램을 진행한 다음에는 노하우를 다 공개할 생각이에요. 제가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나타나면 일을 어느정도 맡길 수도 있겠죠.
 

Q. 차기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실제 서민들에 대해서, 보통의 삶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요. 직접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나야죠.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대통령 되려면 장애인 체험 한 달, 빈곤층 체험 한 달, 이런 식으로 1년 가까이 실제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체험 한 다음 자격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들 정신 건강에도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해요. 지금 대인관계 문제를 겪은 사람들이 말 한마디 할 친구도 없이 소외되어 있다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면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는 거잖아요. 정신적 고통을 겪는 국민들을 도와주고 챙길 의지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