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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찾아왔다. 스펙을 쌓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바쁜 일상을 보내던 20대들에겐 잠시 일상을 정리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집에서 떨어져 살고 있다면 오랜만에 부모님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어렵게 구한, 고향으로 내려가는 차표를 보면 흐뭇하기만 하다. 어떻게든 표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지만, 일단 차표를 거머쥔 순간 고향으로 내려가 맛있는 것도 먹고 그 동안의 회포도 풀 생각에 들뜬다. 때로는 취직은 언제 하느냐, 라는 친척들의 질문 아닌 질문으로 인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분명 명절이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날이다.


그러나 모두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집에 내려갈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누군가는 오늘도 자신의 할 일을 한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70% 남짓이 친인척 방문 예정이라고 한다. 나머지 30% 정도의 대학생들은 설날에 가족들을 찾지 못하는 셈이다. 이들이 집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눈앞에 닥친 시험공부를 하거나, 설날맞이 특강을 듣거나. 평소보다 급료가 높은 일을 하기 위해 설날 단기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군 복무 때문에 마음대로 집에 가지 못하거나, 여러 가지다. 이들의 설날은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간다. 아니, 더욱 고달프다. 누군가가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떠드는 동안, 누군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두꺼운 교재를 읽어 내려가고 밀려드는 손님을 맞는다.


아르바이트생 5명 중 2명이 이번 설날에도 일을 할 예정이라고, 인크루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말하고 있다. 이에 걸맞게 대형마트는 설 대목을 위해 설 연휴 동안 문을 열고, 편의점도 36524시간 쉬지 않고 열려 있다. 한편 학원에서는 갖가지 시험에 대비하여 설날 집중 특강이 실시된다. 굳이 고향집에 가지 않더라도 갈 수 있는 곳, 가야 할 곳이 너무도 많다. 취직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생계를 위한 절박함은 이들이 정당히 누릴 수 있는 휴일마저도 막아 버렸다. 자진해서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철학자 강신주 씨는 한 칼럼에서 사랑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욱 진보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명절은 가족들, 친척들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일하는 시간 동안 누적된 피로를 풀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정해진 날이다. 본래 일하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기 위한 날에 누군가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 현실, 팍팍하기 그지없다. 쉬도록 정해져 있는 날에는, 적어도 사랑하고 싶은의지가 있는 사람에겐 그럴 수 있는 기회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정말 좋은 삶이고, ‘진보한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