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다 보면 이어폰을 낀 채로 흥얼거리는 행인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수많은 행인 중 한 명으로 일상의 반은 이어폰 사이로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한다. 난 음악 속의 목소리만으로 그와 소통한다. 만나봤거나 혹은 만나보지 못했거나 그의 목소리가 내게 주는 영향은 크다. 우울한 내 기분을 단숨에 ‘업’ 시켜줄 만큼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절친한 친구 강바다(가명,21) 역시 성시경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반해 그의 음악을 즐겨들었고 ‘푸른밤’의 열렬한 청취자였다. ‘커피프린스’의 이선균 역시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바다여행’ 을 불러 많은 여성 팬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케이블 프로그램 ‘남녀탐구생활’의 성공비결에 일조한 것 역시 성우의 목소리 아니었을까.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는 목소리가 사랑의 매개체가 된 영화 ‘콜링 인 러브’ 가 3월 25일에 개봉했다.


스토리는 없고 목소리만 있다.

여주인공의 목소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여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전화선과 실루엣만 보여주면서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물론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100분을 이어갈 스토리가 부재했다. 이미 여자가 있었던 남자 주인공은 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빠져 만남을 약속한다. 남자가 자신을 보고 실망할 것을 우려한 여자 주인공이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둘은 호텔 로비에서 부딪히게 되고 그 우연한 만남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된다. 이러한 전개 자체가 비현실적이지만 영화라는 전제 하에 보더라도 두 주인공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과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가 로맨스물로서 인정받는 이유는 두 주인공간에 오가는 미묘한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최고점에 서 있는 두 주인공간의 갈등 역시 지나치게 미미했고 오해 역시 초콜릿을 건네면서 풀려서 숨죽은 배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 인도 특유의 느낌을 잘 살려 낸 영화 '연을 쫓는 아이'(2008) 와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


배경이 관객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배경을 인도와 미국으로 설정하는 데에 이유가 불충분했다. ‘연을 쫓는 아이’나 ‘슬럼독밀리어네어’처럼 인도 특유의 느낌을 살린 영화도 아니었다. 단순히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하더라도 여주인공이 사는 곳인 ‘인도’ 의 모습이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두 주인공 모두가 미국에 사는데 멀리 떨어진 주에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영화 자체에서 국경을 두 주인공 간의 장애물이라 볼 만한 요소는 없었다. 제임스 도드슨 감독은 인도에서의 촬영기간 동안 이국적인 문화를 접하며 강한 인상을 접했다고 한다. 그러나 감독은 자신이 느낀 감흥을 관객에게 전달해 주지 못했다.


부자연스러운 영상, 따로 놀다.

남자 주인공의 일상 컷과 여자 주인공의 일상 컷을 교차로 보여주는 영상은 거칠었다. 영상이 부드럽게 연결된다는 느낌보다는 거문고 줄이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옴니버스식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의 러브스토리, 여자 식구네 이야기, 남자의 사생활이 전부 따로 만들어진 것만 같다. 로맨스 영화인 ‘냉정과 열정 사이’의 경우, 남자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여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보여주면서도 둘의 사랑을 기묘하게 엮어낸다. 덜 완성된 느낌을 풍기는 영화를 100분동안 견딜 수 있는 관객은 과연 몇이나 될까. ‘쇼퍼홀릭’의 각본을 쓴 트레이시 잭슨이 각본을 썼다고 해서 기대를 했지만 ‘콜링 인 러브’ 는 기대의 반에 미치지도 못했다. 역시 연출의 힘이 부족했던 것일까.


상상은 상상일 뿐일까요?

‘목소리’ 만을 듣고 반할 수 있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 역시 ‘목소리’만을 듣고 반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그것이 ‘콜링 인 러브’ 처럼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실제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달콤한 상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콜링 인 러브’는 상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랑의 간절한 떨림과 달콤함을 느끼기 위해 ‘콜링 인 러브’ 를 보려고 한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