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서는 대다수의 대학교가 이성 기숙사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건국대학교의 동물생명과학대학의 기숙사가 남녀 동거 기숙사라는 전통을 이어가고는 있다지만 해당 기숙사도 같은 ‘건물’을 쓴다는 개념이지 같은 ‘방’을 쓴다는 개념은 아니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남,녀가 분리되어 있는 기숙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이성 기숙사를 출입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기숙사 규정에 대해서 커다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이성 기숙사의 출입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조하지 못하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숙사에 이성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규정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거나 냉철하게 분석한 결과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도덕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옳지 못하다고 생각되어 기성세대가 자의적으로 금지시켜놓은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규정을 실제로 적용받는 당사자인 대학생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성 기숙사의 출입 금지를 대학교측이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은 집단이 개인의 사적인 권리를 침해할 수 있고 개인을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주로 기성세대)의 생각이지 개인이 개별적으로 설정하는 도덕이 아니다. 즉, 대학교의 기숙사에서 이성 기숙사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은 단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개인보다 우선한다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자유나 평등같은 민주적인 가치보다는 질서나 통제같은 권위주의적 가치에 더 근접해있다.




▲ 여자 기숙사와 남자 기숙사
(출처 : http://cafe.naver.com/apro5003/35 | http://cafe.naver.com/knuarchi/1293)



과거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선진 민주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던 때가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1968년. 당시에는 우익세력이었던 드골대통령이 장기집권하던 시대였고 학교든 직장이든 권위주의적인 분위기와 일방적인 의사소통구조가 만연해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교육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데 이에 걸맞은 교육기반이 형성될 시간이 없어 단지 학생을 가둬놓기만 할 뿐인 어설픈 대학교가 난잡하게 생겨났다. 게다가 지식을 하향적으로 주입시키기만 할 뿐인 교수진들과 이성 기숙사에 대한 출입을 금지시켰던 강압적인 대학규정은 학생들의 불만을 부추겼다. 그러다가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을 반대하던 낭테르 대학 학생들이 학부장의 집무실을 점거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자 대학 측은 경찰을 끌어들여 캠퍼스를 폐쇄하게 되는데 이 조치가 학생들을 자극함으로써 68혁명이라 불리는 사태를 초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낭테르 대학 학생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프랑스의 전통적인 시위방법인 바리케이드를 이용한 거리점거를 벌이며 학교 측에 대항했고 2주 후에는 권위적인 직장내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낀 젊은 노동자들이 이에 동조함으로써 시위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기야는 프랑스 전체 노동자의 2/3정도 수준인 천만명 정도의 노동자가 시위에 가담하며 각종 혁명적인 슬로건을 내걸게 되는데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절대로 일하지 마라’, ‘마오쩌둥 만세!’같은 사회주의적이며 반사회적, 반권위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비록 이 혁명은 주도적인 세력이 없었기에 정권을 탈취하는 등의 정치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와해되었지만 68혁명 이후에는 여권신장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양하게 이루어짐으로써 프랑스는 정치의식적으로 진일보할 수 있게 되었다.




▲ 68운동 (출처 : http://blog.naver.com/alex514?Redirect=Log&logNo=140099786227)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1968년 당시의 프랑스와 비슷하다. 권위적이며 강압적인 분위기의 직장과 학교, 창조적인 토론수업보다 낡은 주입식 교육에 의존하는 교육방법,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에 대한 불만 등이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이성 기숙사에 출입하지 못하는 것은 68운동의 원인 중 하나가 됐던 것처럼 당당하게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권위적인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적용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탠퍼드대, 코넬대, 시카고대 등 남녀가 원한다면 같은 방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미국의 대학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의 학생들은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특별한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같은 방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당연시 여긴다고 한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한다. 개인의 선택보다는, 자유와 권리보다는 정해진 규정과 도덕적 질서를 더 중시여기는 대한민국. 이러한 현실에 대해 한 번쯤 문제의식을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