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창 씨라고 해서 쪽방 주민이셨던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이 거의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처럼 말라가시면서도 계속 병원에 안 가신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러다 마지막에 잠깐 병원에 가시고? 그리고 한 달 안에 바로 돌아가셨어요. 결핵이었는데, 저희는 결핵인지도 몰랐어요. 나중에야 (쪽방 안에서)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라는 이 문구를 발견했는데.”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조승화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문구가...... 마지막 절규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 누구에게 자기가 죽음 앞에 있다는 걸 말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았던 거죠.”

한때 6.25 피난민들이 북에서 내려와서 정착했던 남산 부근 용산구 일대는 해방촌으로 불리곤 했다. 그곳에서 서울역, 그리고 남대문까지가 서민들이 주거하는 판자촌이었다. 이 판자촌이 70년대에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주택과 같은 주거공간을 잘게 쪼개 좁지만 저렴한 ‘쪽방’으로 개조한 것이 쪽방촌의 역사다. 개중 서울역 맞은편, 우뚝 선 빌딩들 사이에 숨은 1000가구의 ‘죽어가는’ 생명의 공간을 사람들은 동자동 쪽방촌이라고 부른다.

ⓒ 서울신문

쪽방은 열악하다.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세면장에는 겨울에도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여름에는 지독한 더위 때문에 다들 속옷차림으로 나앉는다. 1.5평에 불과한 공간은 한 사람 눕는 것으로 꽉 찰뿐더러, 방문을 닫으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철저한 고립만이 남는다. 그럼에도 싸기 때문에. 빈곤 속에 점점 떨어지는 주거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에게 쪽방은 최후의 주거지다. 이 다음에 남은 것은 노숙밖에 없다. 

“실제로 쪽방 주민의 38.7%는 노숙 경험을 가지고 계세요.” 동자동 쪽방촌의 주거 개선을 위해 조직된 자치기구, '동자동 사랑방'의 사무국장 조승화씨의 설명이다. “노숙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기초수급을 받아 쪽방에 들어오거나, 일용직 등의 노동을 통해 간신히 주거 수준을 끌어올리는 상황이고.... 고시원과 여인숙을 전전하다 점점 더 빈곤해져 쪽방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경우 대부분이 가족 해체를 동반하고요.”

열악한 생활환경 탓에 주민들의 건강상태와 영양상태 역시 위협을 받고 있다. 작년에 쪽방 주민 대상으로 건강실태조사를 한 결과, 건강이 ‘매우 나쁘다’ 의 응답률은 최고 37.1%를 기록했다. 건강이 '매우 좋다'고 답변한 주민은 거의 없었고, 나쁘다 쪽으로 갈수록 응답률이 더 높아져 ‘다소 나쁘다’와 ‘매우 나쁘다’의 결과를 합치면 무려 주민의 68%에 이르렀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노숙자의 건강실태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한국 종합 사회 조사에 2010년 조사 보면, 보통 건강상태가 어떠시냐라고 물으면, '다소 좋다'가 대부분 나와요. 그래서 기울기가 앞(‘매우 좋다’)에서 올라갔다가 일반적으로는 ‘다소 좋다’부터 조금씩 내려가는데 쪽방 주민의 경우 보시면 나쁘다로 가파르게 올라가죠.”

쪽방에는 아이들이 없다. 50대, 60대의 주민이 대부분이고, 그보다 더 젊더라도 장애를 겪고 있거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고, 기본적으로 우울증은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7가지 이상의 질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수급을 받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형편이다. 그러나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는 60%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 40%는 나이나 부양의무기준의 미달, 또는 몸이 아픈데도 병명이 제대로 진단되지 않아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단 수급을 받으시던 분이 있어요. 조두선씨라고, 40대 중반이었고, 만성질환인 당뇨로 수급을 받으시는 분인데요. 그런데 갑자기 이 분 가족의 재산이 증가되면서 수급에 탈락이 되셨어요. 가족과 연락을 안 한지는 10년이 넘었어요. 가족이 분명히 단절되었지만 가족 단절을 증명할 수 없는 상태라, 부양 기준에 따라 지원을 못 받는 상태가 된 거죠. 그렇게 수급이 탈락된 상태에서 계속 방치되어 있는 거에요. 방세 계속 밀리고 병원에도 당연히 못가죠. 처음에는 당뇨가 심했는데, 계속 두니까 지금은 신부전증으로 전이가 돼서 고칠 수가 없어요.”

작년 건강실태조사에서 이어진 가족관계 관련 질문에, 쪽방촌 주민 58.9%는 가족이 있는데도 ‘같이 안 살고 연락도 안 한다’고 답변했다.

“법적으로 고아라든지 이럴 때 가족 단절이라고 말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는 1년만 헤어져도 가족단절일 수 있거든요. 어떤 분은 가족과 10년을 떨어져 살다가 돈이 없어서 전화를 했는데,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식의 통보를 직접 가족들이나 자식들에게 받곤 해요. 그런데 제도가 이런 사례까지 확인을 못하는 거죠. 확인이 안 되면 지원도 안 되고.”


고독사 역시 빈번하다. 주민들 역시 누군가 외로이 쪽방에서 홀로 죽어가고. 그 이후에 시체가 되어서 며칠 뒤에 발견되는 상황에 익숙하다. 자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질병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맞게된 죽음일 수도 있다.
 
“이런 죽음들이 동자동 쪽방에서는 정말 흔하게 발견되요. 그러다보니까 주민들도 ‘어, 또 죽었네’ 하고 말고, 집주인들도 얼른 치우고 1주일 안에 또 새 주민을 받아요. 그런 정도로 되게 무감각한 상태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게 끝은 아니다. 이 속에서도 주민들이 소통을 하고, 만나면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토록 철저하게 혼자이기에, 한층 마음으로 사람을 찾게 된다. 매달 20일, 날이 따뜻한 수급날이 되면 오밀조밀한 쪽방 사이에선 작은 술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친구한테 한 턱 낼 엄두도 못내는 가난한 사람들이,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날”이라고, 살풋 웃는 조승화씨의 얼굴에는 희망이 있다.

4월 17일, ‘동자동 사랑방’ 사람들이 동자동 쪽방촌을 대표하여 목소리를 내기 위해 참여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투쟁 이야기’는 4.19 투쟁 기간을 맞아, 투쟁하는 여러 단체들이 서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서로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공유해보자는 취지로 지난 4월 초부터 이어져왔다. 지금까지 장애등급제, 철거민, 용산참사, 노숙인에 관한 이야기가 쭉 이어졌고, ‘동자동 사랑방’ 이야기를 통해 그 다섯 번째 소통의 장을 열었다.

동자동 사랑방의 사무국장 조승화씨는 당일 광진 장애인 센터를 대표해 참가한 박경미씨와 노숙인 자립 문제에 관해 장애인 자립 시스템의 사례를 듣고, 함께 토론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동자동 사랑방에서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사랑방 식도락’이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해 밑반찬 및 기타 편의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2013년 ‘건강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의 출범에 따라 주민들의 자치적인 모임 조직도 활발해졌다. 보건소에 찾아가서 보건지소를 세워달라고 요구도 했었고, 주민들이 직접 고독사 문제와 결핵문제 등을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건강교육과 심층 면접 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