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승객인 포스코에너지 상무 A(53)가 승무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실을 들은 기장은 즉각 현지경찰에 신고했고 미 연방수사국(FBI)과 경찰이 출동해 A씨에게 수사를 받거나 입국 포기를 선택하게 했다. 이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자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A씨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포스코 측은 황급히 내부감사를 발표하며 사건 진화에 나섰다.

여승무원에 대한 폭행사건이 이렇게 공분을 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은 흔히 ‘갑을’(甲乙)이라고 하는 관계에서 갑(甲)이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폭행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대기업 임원이 자신의 높은 지위를 악용해 여승무원을 폭행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들고 나온 패는 ‘창조경제’다.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으로 둔 창조경제는 상호 간의 평등한 지위가 필수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꽃을 피우려면 함부로 꺾지 못하게 보호해야 한다. ‘갑을’(甲乙)로 대표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하수직 관계에선 이런 창조경제가 절대 나올 수 없다. 힘 있는 갑(甲)이 납품단가를 강제로 낮추고, 사내하청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창조’에 이바지할 중소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러한 착취의 부작용은 사회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납부단가 후려치기에 중소기업은 기술력을 개발이 아니라 점점 더 싸구려 재료, 저렴한 인력을 찾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선 더이상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성공신화'도 우수한 개발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가 보편화 되자 산업 전체가 정체된 것이다.

문제는 대기업 임원 A씨가 부린 행패는 특기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보이는 갑(甲)의 행태일 뿐이다. 대기업의 ‘갑질’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에게 창조경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