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나 지하철에 탄 학생들은 자리에 앉든 말든 각자 휴대폰을 꺼내어 든다. 그들은 재빠르게 본인이 사용하는 웹툰용 어플 또는 각 포털이 제공하는 어플을 이용해 즐겨보는 웹툰의 업데이트 상황을 확인하고 곧바로 감상하기 시작한다.

왼쪽부터 '그대를 사랑합니다(강풀 作)'.'神과 함께(주호민 作)', '치즈인더트랩(순끼 作)', '미생(윤태호 作)'


웹툰 감상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한다. 직장 생활을 하던, 학교에 있던, 집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던 이들 모두 각자의 ‘휠’을 내리며 웹툰을 감상한다. 저마다 웹툰 하나씩을 몰두해서 보고 있는 광경을 생각하고 있으면, 최근에 10대와 20대를 문화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세대용어는 ‘삼포 세대’나 ‘88만원 세대’가 아니라 ‘웹툰 세대’라는 점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10대와 20대의 문화 전반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과 함께 웹툰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젊은 층이 웹툰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웹툰이 그들의 선택을 모두 수용할 만큼 다양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연재되고 있는 웹툰의 수만 300여 편이다. 많은 수의 웹툰은 작품의 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소재로,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웹툰에 담긴 내용들은 젊은이들에게 흥미를 일으킨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거나, 젊은 날의 사랑을 소재로 하는 것은 10대와 20대 전반이 공감 가능한 이야기의 ‘전형’이다. 물론 ‘비주류’적인 소재도 웹툰의 소재로 활용된다. 나아가 웹툰은 소재의 다양성만이 아니라, 장르의 다양성과 작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곳이기도 하다.
 
웹툰은 무궁무진한 소재와 장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독자에게 그만큼 넓은 선택의 폭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웹툰은 작게는 가정으로부터 크게는 사회에게서 항상 선택을 강요받아왔던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도 ‘경쟁’ 아니면 ‘도태’라는 이분법적이고 편협한 선택의 기회가 아닌, 각자의 관심과 가치관을 반영해 선택할 기회가 제공된 것이다. 취향을 억제해왔던, 아니 억제하기를 강요받아 온 젊은이들이다. 본인들의 취향을 존중받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웹툰은 웹툰세대에게 신선한 공감의 장이자 유일한 낙원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웹툰이 젊은이들의 다양한 삶을 그리고, 다양한 관심사와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소재를 끊임없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웹툰의 작가가 바로 웹툰을 소비하는 ‘본인’이라는 것이다. 2003년 포털에서 웹툰을 처음 연재한 강풀(1974년)은 당시 만으로 29세였다. 2005년 데뷔한 뒤 2008년 ‘신과 함께’로 유명해진 주호민 작가는 81년생, 2006년 ‘삼봉이발소’로 데뷔한 하일권 작가도 82년생, 같은 해에 ‘마음의 소리’로 데뷔한 조석이 83년생이다. 또 ‘이말년씨리즈’의 이말년 작가는 83년생, ‘패션왕’의 김희민 작가는 84년생 등 대부분이 20대의 나이에 웹툰 작가가 되었고, 지금도 20대 작가인 경우도 적지 않다. 더욱이 최근에는 ‘역전! 야매요리’의 정다정 작가(91년생)과 같이 90년대 출생의 웹툰 작가도 웹툰 계에 입문하고 있다. 물론 ’미생’의 윤태호 작가(69년생)처럼 연배가 있는 경우도 분명 존재하지만, ‘예외’라고 할 만큼 드물다. 웹툰 시장에서는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젊은이들이 해당 분야의 주류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웹툰 문화는 제작자와 소비자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전반이 주류가 되는, 이례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점은 일면 가요계의 ‘아이돌’과 비슷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웹툰 문화와 아이돌 문화는 분명 다르다. ‘아이돌의 연령층’과 ‘아이돌을 소비하는 이들의 연령층’이 10대와 20대에 곱게 포개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돌 산업은 아이돌을 하나의 ‘성(sex)’ 상품으로 기획하여, 시장을 통해 ‘돈’으로 소비할 수 있는 계층에게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때문에 10대와 20대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이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모두 주류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웹툰 문화와 아이돌 문화를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웹툰세대는 기존의 경제구조에서 경쟁력을 갖추거나, 갖추었어도 보일 기회조차 박탈당해왔다. 경제영역에서의 기회가 박탈당한 웹툰 세대는 ‘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 전반에서 소외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웹툰의 등장과 성장은, 아직 젊은이들이 소외당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웹툰 세대가 점거한 웹툰이라는 ‘게토’ 역시, 다른 문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본에 의해 붕괴될지 모른다. 이미 웹툰은 자본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는지 모른다. 소수의 대형 포털이 웹툰 시장을 독과점 형태로 취하고 있는 상황, 이 대형 포털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웹툰 계에 입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대형 포털들이 같이 웹툰의 제공할 공간을 독과점하고, 웹툰 작가들의 등용문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포털의 횡포를 당연시한다. 소수의 스타 웹툰 작가는 포털로부터 고액의 계약금과 후원받지만, 그 밑에 있는 절대다수의 젊은 웹툰 작가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무한하게 착취당하고 있다. 만화계의 거장 허영만이 이러한 웹툰 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방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웹툰 작가들 대다수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는 외면한 채 ‘흥행 대박’을 위해 포털이 제공하는 작은 등용의 문만을 바라보고 있다. 또 웹툰의 젊은 소비자들 역시 이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곪아가는 웹툰 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제시될 리 없다.
 
웹툰 세대에게 웹툰은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다양한 관심과 욕구를 흡족하게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웹툰이 해주고 있고, 이는 그들이 스스로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웹툰에 녹여내고 있기에 당연하다. 자본은 20대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점하고 공유하는 웹툰 문화라는 ‘게토’에 조용히 들어와 ‘돈의 논리’로 잠식하고 있다. 문제는 웹툰 세대가 자본이 던져주는 작은 미끼에만 현혹되어, 자본의 탐욕에 아무런 비판도 대응도 하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웹툰 문화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웹툰 세대의 다양한 삶을 소재로 관심사를 그려내기를 바란다면, 현 상황에 대해 그저 만족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 대형 포털을 통해서가 아니면 웹툰 계에 입문하는 길이 이토록 작은지. 왜 웹툰을 제작하는 환경이 그처럼 열약하고 협소해야만 하는지. 몇몇 대형포털에서만 ‘인기’ 웹툰이 연재되고, 영화사에서는 그 ‘인기’ 웹툰을 영화화하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지. 10대와 20대, 웹툰 세대는 의문을 가지고 비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웹툰이 자본에 저항하며, 웹툰 세대에 의해 그들의 문화로써 영유될 수 있을 것이다.

상단 좌측부터 강풀 작가(74년생), 주호민 작가(81년생), 하일권 작가(82년생), 조석 작가(83년생). 하단 좌측부터 이말년 작가(83년생), 서나래 작가(83년생), 정다정 작가(91년생), 윤태호 작가(69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