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안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펼치는 대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전국적인 대학 구조조정 열풍 탓이다. 인문학, 예체능 관련 학과가 대학 구조조정의 주된 대상이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학과를 잃어버렸다. 대학 구조조정의 기준이 되는 지표는 사실상 취업률이 유일하다. 단지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가치 있는 학과들을 폐지하고 있다. 폐지되는 학과 학생들을 위한 후속 조치 또한 미흡하다. 이렇듯 부당한 방식의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서, 대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펼치는 중이다.

한남대 철학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도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고 있다. 비대위는 지난 6월 16일에 결성됐다. 이후 한남대 철학과의 폐지 결정을 철회시키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해왔다. 학교 안에 현수막을 거는 것을 시작으로 1인 시위, ‘철학의 죽음’ 퍼포먼스, 기자 회견, 대학 구조조정 토론회 참석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오며 비대위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남대 안의 한 카페에서 비대위 학생들을 만났다. 이곳에서 거의 매일 비대위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비대위 학생들은 석사 과정 학생 1명을 제외하면 모두 4학년이었다. 비대위 활동으로 4학년 여름방학의 대부분을 보낸 것이다. 취업 준비까지 미뤄가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4학년에게 대학 구조조정은 한 학기만 더 다니면 자신과는 상관없어지는 문제다. 그런데 비대위까지 꾸려가며 강렬히 맞서고 있는 이유가 뭘까. 비대위원장 함형남 학생은 “폐과가 되면 몇 년 후에 다시 학교를 찾았을 때, 내 추억이 깃든 장소가 전혀 다른 장소로 바뀌어있을 것이다. 부당하게 추억을 뺏기는 기분이었다.”고 답했다. 비대위 최현덕 학생은 “불합리하고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남대 철학과의 폐지 과정은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다. 한남대 철학과의 폐지가 학생들에게 알려진 건 5월 28일이었다. 학생에게는 접속 권한이 없는 교내 인트라넷에 올라온 공문을 통해서였다. 과제 독서실에서 우연히 조교와 함께 공문을 못 봤더라면, 더 늦게 폐지 사실을 알 뻔했다. 비대위 장영희 학생은 “철학과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학과가 폐과되거나 축소된다는 말은 귀에 달고 산다. 항상 소문이 있었기에 공문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폐과되는 건지 구분이 잘 안 갔을 것”이라 말했다. 공식적으로 학생들이 철학과 폐지 소식을 접한 건 6월 10일 교수 공청회 때였다. 이 모든 일이 어수선한 종강 시즌에 일어났다. 일방적인 통보라는 방법도 문제지만, 통보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왜 비대위가 적극적으로 구조조정 문제에 맞서는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비대위 학생들이 학생회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학생회가 구조조정 문제를 방관하고 있어서, 답답해하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비대위를 꾸린 건 아닌지 물었다. 비대위 장영희 학생은 자주 받는 질문이라며 “학생회가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활동영역이 다를 뿐이다. 비대위가 시위를 하면, 학생회가 학교 측과 대화를 하는 식”이라고 답했다. 비대위원장 함형남 학생 또한 “학생회와는 협력하는 관계다. 학생회가 시위에 나선다면, 후속 조치를 논의할 때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비대위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철학의 죽음' 퍼포먼스 중인 한남대 학생들


자유롭게 활동할 순 있다지만 현수막을 달고, 1인 시위를 하고, 기자 회견을 여는 등 모든 활동이 비대위 학생들은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시행착오가 많았다. 현수막 제작도 해본 적이 없으니, 현수막 하나를 만드는 데도 여러 번 디자인을 바꿔가며 힘들게 만들었다. 비대위를 만들고 보름 정도는 새벽 3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떤 활동을 할지 회의를 하고, 구조조정이 부당함을 알리는 자료를 찾았다. 학교 측이 밤에 현수막을 떼면 다음날 찾아온 다음, 다시 다는 일을 반복했다. 비대위 염샛별 학생은 “아는 게 없어서 더 용감했던 것 같다. 무조건 하고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비대위가 구조조정에 맞서느냐 항상 심각한 상태로 있던 건 아니다. 비대위 장영희 학생은 “즐겁게 하는 시위가 오래가고 잘 된다는 말이 있다”며 “낮에는 시위를 하고 밤에는 노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비대위 염샛별 학생은 “비대위 활동을 하는 동안 밥은 가장 잘 먹었다. 격려의 차원에서 밥을 사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1인 시위를 하는 중에도 음료수나 음식을 갖다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비대위의 주요한 목표는 기자회견이었다. 6월 27일 기자회견 때까지 버티자는 마음이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기자 명단을 구해 전화를 돌렸다. 기자들이 오지 않고 한남대 학생들끼리 하는 조촐한 행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기자회견은 성공적이었다. 여러 언론을 통해 비대위의 시위가 기사화되었다. 학교 내부에도 비대위의 진정성이 전해졌다. 때마침 기자회견 날에는 전국 대학교수 선교대회가 한남대에서 열렸다. 비대위 학생들은 기자회견 후 선교대회 행사장 앞에서 침묵시위를 펼쳤다. 그 결과, 아무리 요청해도 이루어지지 않던 총장과의 면담이 성사됐다. 비대위 장영희 학생은 “기자회견 후에 언론의 반응이 뜨거워서 철학과 폐지가 정말로 철회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침묵시위 중인 한남대 철학과 비상대책위원회


그러나 비대위 학생들은 곧바로 기자회견 너머에 있던 더 높은 벽과 마주했다. 총장과의 면담에선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학교 측은 면담 또한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면담 1시간 전 갑자기 동문 대표의 참석을 불허하는가 하면, 사전에 가능하다고 협의했던 녹취를 면담 자리에서 불허했다. 비대위 염샛별 학생은 “토론을 하려고 했지만 학교 측은 설명회를 하려했다. 학생들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비웃기도 했다. 정말 권위적이었다.”고 말했다. 폐과 결정을 철회하는 데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목표로 삼았던 기자회견이 끝나니 허탈감도 들었다. 기자회견이 끝이 아니었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고 나니 두렵고 무서웠다. 몰라서 용감했을 때와 달리 아는 것이 많아지며 지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비대위원장 함형남 학생은 “힘이 없는 게 점점 느껴지고, 학교는 더욱 철옹성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은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소 무기력해졌던 비대위에게, 7월 22일 국회에서 열렸던 대학 구조조정 토론회는 새로운 계기가 됐다. 토론회를 준비하며 비대위를 다시 추스를 수 있었다. 토론회에선 대학 구조조정이 한남대 철학과만의 작은 문제가 아니고, 전국적인 큰 문제라는 걸 체감했다. 한 편으로는 답답함을 느꼈다. 한남대 철학과는 이미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인데 토론회에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토론회 후에 이루어진 논의에선 대학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의 9월 발족이 결정됐다. 하지만 비대위는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는 데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대위 최현덕 학생은 “공대위의 이름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비대위 장영희 학생은 “공대위는 학생회에서 참여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비대위가 시위에 관해서는 위임을 받았지만, 학교 이름을 걸고 전국적인 조직에 참여하는 데는 학생회가 나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비대위는 9월 국정감사에 대학 구조조정 문제가 채택되도록 하는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한남대 철학과를 비롯해 전국의 여러 대학의 사례를 같이 첨부하여 국정감사 의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교육부에는 교육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진정서와 질의문을 제출할 계획이다. 8월 초까지 마무리를 짓고 비대위는 잠시 활동을 쉰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방학을 즐길 생각이다.

비대위에게 남은 방학 때도 계속해서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비대위는 이미 최선을 다했다. 한남대 철학과 폐지 결정의 철회 여부에 상관없이 비대위의 활동은 의미가 크다. 물론 폐지 결정이 철회되길 바란다. 더불어 그들이 ‘한남대 철학과 비대위’가 아닌 ‘한남대 철학과’로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