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가 ‘그리고 싶은 것’은 여전히 그려지지 않았다. 8월 15일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의 상영 및 박원순 시장과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영화는 2007년 한중일 평화 프로젝트를 통해 권윤덕 작가가 위안부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동화책『꽃할머니』를 만드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2013년인 지금까지 꽃할머니의 일본 내 출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꽃할머니』를 만드는 과정은 한중일의 만만치 않은 현실 속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부딪히게 될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 고함20 블루홀



그녀가 천황과 육일승천기를 지운 이유

영화는 논쟁적이다. 우리나라가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것을 넘어 일본 사람이 위안부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과 및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응어리 진 분노를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에 대해 쉽사리 동의하기 힘들 수 있다.  

『꽃할머니』의 초안엔 일본 천황 얼굴과 배급되는 콘돔이 대비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일 본 작가들은 천황이란 상징을 숨기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일본 작가들의 반응을 처음으로 접한 권 작가는 전형적인 우익의 논리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묘사가 노골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출판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권 작가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객관적 조율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힘겹게 말을 뗐다. 권 작가의 말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 사회 내에서 어떻게 공론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부재한 지금 되새길 만한 가치가 있다.

갈등은 한국 작가들과의 회의 속에서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일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우리나라 사람에게 또다시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일승천기를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는 권 작가에게 우리나라 작가들은 “독일이면 독일, 일본이면 일본, 구체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 작가는 “분노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선 안 된다. 그 감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설명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거 하나 지운다고 해결되겠냐. 그럴 거면 가상 세계를 만들지”라는 냉소적 반응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들 수 있는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두 집단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선 영화를 보고도 천황과 육일승천기를 표현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끝내 동의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숙고해볼 만한 문제이다. 

ⓒ 경향신문 『꽃할머니』가 한국에서만 출간되던 날 하마다 게이코 작가가 책의 주인공인 심달순 할머니를 방문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합니다” 하마다 게이코 씨의 눈물

영화는 위안부 문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또 다른 사람들, 일본의 양심 세력의 목소리도 담고 있다. 『꽃할머니』의 일본 내 출간이 미뤄지고 한국에서만 출간되던 날 하마다 게이코 작가는 책의 주인공인 심달순 할머니를 방문한다. 게이코 작가는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일본 출판사 동심사의 회장은 동화책의 일본 내 출간에 앞서 직접 방문하는 열의를 보인다. 그러나 “일본 사회 내에선 태평양 전쟁 이전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더욱 빈틈없이 준비해 출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답장으로 또다시 출간 연기를 통보한다. 

출간을 질질 끄는 동심사 회장의 처우가 못 미더울 수 있다. 그러나 현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다. 일본 내 우익 집단은 양심 세력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중학교 교사였던 마스다 미야코 씨는 역사 교과서의 왜곡 문제를 지적하다 2006년 3월 교사 면직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정계의 우경화  역시 심화되는 추세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평화 헌법 개정 발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위안부 정당화 발언 등 정계의 상식 밖의 행보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양심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 내 양심세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원성을 들으면서도 일본 내 우익 집단의 위협을 염려해야하는 어려운 입장에 서있다. 권효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동심사의 우케다 편집장이 영화 관람 후 “내가 너무 악역으로 나온 거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을 회상했다. 영화 내에서 우케다 편집장은 시종일관 책의 내용이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 권 작가와 논쟁한다. 우케다 편집장과 같은 양심 세력은 한일 양측을 오가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선의의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 “일본은 철저한 준비 중”

이날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 박원순 시장이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박 시장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들려주었다. 박 시장은 1992년 영국 런던 대학에서 유학 중 에츠토 도쿠카라는 일본인 변호사가 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던 기억을 회상했다. 박 시장은 “가해자인 일본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에 정작 한국 변호사인 자신이 위안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남북한 검사단 수석검사를 맡아 히로히토 천황 등 전쟁의 책임자들을 고발했다. 당시 재판부는 일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민간 재판이었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공론화하는데 기여했다는 것만이 의의이며 실제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박 시장이 밝힌 것처럼 위안부 문제를 드러내려는 측의 노력보다 덮으려는 측의 노력이 더큰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고노 담화 수정을 주정하고, 본격적으로 개헌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공격적인 우경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행보에 대해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함에도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담화에서 위안부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우회적 방식으로 일본을 문책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침묵은 지난 여성의 날에 이어 광복절에도 계속된 것이다.

권 작가와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기 위한 과정은 험난했다. 권 작가는 1권을 출간하기 위해 12권의 가제본을 만들었다. 동화책 한 권 만들기가 이렇게 힘든데 현실 정치는 어떻겠는가. 광복 68주년을 맞은 지금, 국제 사회에서의 위안부 문제 공론화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