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85센티미터인 이해준군(19)에게 지름 150센티미터의 배수관은 턱없이 작고 어두웠다. 배수관에 들어가기 위해 그는 허리를 숙여야 했다. 경북 문경에 있는 저수지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배수관의 누수를 확인하려던 CCTV 로봇이 장애물로 인해 배수관 안쪽까지 진입하지 못하자 그가 대신 투입됐다. 막힌 배수관의 진로를 확보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안전 장비도 사전 안전 교육도 없었다. 저수지의 물은 허리까지 잠겼다. 그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을 헤치며 배수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보다 먼저 들어갔던 CCTV 촬영 로봇은 지켜보는 관리자가 있었지만 그는 혼자였다. 

8월 5일 오전 9시경, 문경시 회룡 저수지에서 배수관 점검 작업을 하던 이해준 군이 쓰러졌다. 뒤이어 그의 상태를 알아보러 배수관에 들어가려던 50대 이 모 씨는 배수관에서 나오는 가스 냄새를 맡고 질식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군의 몸은 배수관 물속에 잠겼고 1시간이 조금 지나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인은 익사였다. 
 
 

                   이군이 들어갔던 저수지 배수관에는 아직도 물이 고여있다. ⓒJTBC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서울 경찰병원 지하1층 장례식장에 안치된 빈소는 한산했다. 이군의 아버지는 방문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며 빈소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어머니는 병을 얻었다. 작은 누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이렇게 아들 이군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19일이 지났다. 장례식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아버지 이왕용씨는 며칠째 이어지는 질문과 기자회견에 다소 지친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내 노기를 띠었다. 그는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한국농어촌공사의) 사과도 없었다”고 외치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최대 걱정은 아들의 얼굴에서 살색빛이 이미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보상금이 목적이 아니다.” 
 



왜 아르바이트생을 시켰냐는 질문에 현장 관계자 “무서워서 직접 들어가지 못했다” 

이번 용역의 발주처는 한국농어촌공사였다. 한국농어촌공사는 하청업체인 한빛환경에 문경 저수지에 대한 작업을 지시했다. 정상적인 계약 관계라면 발주처의 관리감독과 안전관련 책임은 한국농어촌공사에 있다. 하지만 한국농어촌공사는 ‘그런 작업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 (하청업체의 일에 대해) 책임지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며 눈을 감는 모양새다. 

유족들은 한국농어촌공사의 대응을 문제 삼고 있다. 1차 계약 당시 발주처인 한국농어촌공사와 하청업체인 한빛환경 사이에는 이군이 숨진 저수지 공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임의적 요청이었기에 저수지 조사 보완에 관한 명시된 추가 계약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사 발주 담당자였던 농어촌공사 직원의 용역 보완요청서만으로 그 계약이 존재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유가족들은 공사 직원에게 “계약서는 나중에 작성하려고 했다”는 책임 면피용 답변을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청업체인 한빛환경 측도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를 막지 못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작업숙련가들은 이군에게 안전에 대해 어떤 교육도 장비도 주지 않았다. 이왕용씨는 “하다못해 물 묻힌 수건이라도 얼굴에 감싸고 들어갔으면 살았을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왜 이런 위험한 일에 아르바이트생을 투입했냐는 질문에 하청업체의 현장소장은 “무서워서 직접 들어가지 못했다”고 실토했다고 유가족들은 전한다. 


“사과만 했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 

이왕용씨는 “(한국농어촌공사와) 일이 어떻게 되든 주말 이내로 장례를 치룰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이렇게 아들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뒤이어 “다른 언론에서는 한국농어촌공사와 유가족 간에 협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한국농어촌공사가 그렇게 말했다더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대로 된 사과도 보상금도 없이 무슨 협상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0일 ‘문경 아르바이트 대학생 사망사고’ 기자회견을 열었던 장하나 의원실은 22일 <고함20>과의 통화에서 “협상은 한국농어촌공사와 유가족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추후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의원실에서는 이런 인재(人災)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과 ‘기업살인법’을 제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21일 보상금 문제를 합의하기 위해 빈소를 방문하겠다던 한국농어촌공사와 유가족간의 합의는 23일인 오늘까지도 '아직'이란다. 지금 이 시각에도 일급 몇 만원을 벌기 위해 이군의 또래들은 다른 배수관에 들어가고 있다. 관련자들은 이를 그저 수수방관하거나 '자기 책임이 아니'라 말하고 있다. 해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