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대형마트, 식당, 건축현장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던 이군
아버지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웠던 아들, 이렇게 갈 줄 알았냐”며 탄식
 

경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해준군(19)의 빈소, 지난 21일에 찾은 그곳은 여전히 발인날짜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아버지 이왕용씨(51)는 “잘못한 사람들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이번 주 안에는 아들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관리의 의무가 있는 원청업체 한국 농어촌 공사와 하청업체인 한빛환경은 사과와 보상 등의 실질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군은 강원도의 한 국립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내년에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생활력 강한 두 명의 누나들은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장학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안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이군도 그런 누나의 모습을 보고 자랐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는 것을 미안해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기 위해,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항상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형마트 주차요원, PC방 아르바이트, 식당 서버 등 가리지 않았다. 이군의 SNS는 그가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대형마트 모자를 쓴 그는 “와 엄청추워 바람짱이야 발에 감각이 없다”라며 일하는 사진을 올리거나, "다른 피시방 사장이 와서 물건을 빌려가는데 왜 반말을 하지“라고 말하며 알바생의 고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여름방학에는 노동 강도가 세지만, 보수는 좋은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 "와 힘든 하루였다 정말”이라며 감자를 트럭에 나르는 일을 했다고 써놨으며, “건축현장에 갔다 욕 엄청 먹었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빈소에서 만난 이군의 선배들도 “남들이 잘 안 하고, 기피하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기 이틀 전 이군은 아버지 이씨에게 전화를 했다. 용역 사무실에서 소개받은 하청업체 한빛환경에서 일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군이 한쪽 손 없이 건축 일을 하는 아버지 이씨에게 “아빠도 막노동 하지?”라고 물어보자 이씨는 “맞다. 직업이 건축쟁이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군은 “아빠, 나 막노동 했는데 엄청 힘들더라”고 고백했고, 이씨는 아들에게 누가 그런 일 하라고 했냐며 나무랐다. 이군은 누나와도 전화를 했는데, 누나의 생일인 이틀 뒤에 집에 온다며 생일선물로 원피스를 사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이 가족들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이틀 후에 온다고 했으니 당연히 걱정 안 했죠. 누가 문경까지 갈 줄 알았답니까.”


아버지 이씨에게 이군은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아들이었다. 키 185cm에 몸무게 80kg의 듬직한 체격에, 성격도 활달했고 친구관계도 좋았다. 이군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간 이씨는, 수많은 친구들이 아들과 함께 졸업식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고 했다. 스스로 국립대학교를 선택하고, 누나를 뒤따라 의료계열로 진학한 것도 이씨 입장에선 기분이 좋았다. 이씨는 아들의 미래를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막내아들의 죽음 소식에 이씨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군의 어머니는 극심한 충격으로 쓰러져서 병원치료까지 받는 중이다. 그러나 아들을 잃었다는 것만큼 이씨를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들을 사지로 몰은 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씨는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스스로 책임자들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다녔다. 결국 기존의 저수지 공사와는 다르게, 이번 저수지 배수관 점검은 농어촌공사가 계약상 원청업체인 D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청업체인 한빛환경에게 작업을 시킨 것을 밝혀냈다. 농어촌 공사가 원청업체로서의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한 셈이다.

20일 농어촌공사의 공식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열린 기자회견. 누나 이지연씨와 아버지 이왕용씨와 모습이 보인다 ⓒ청년유니온

 

“저도 공사를 해봤지만 사고가 난 배수로 안에 바람을 바꾸려고 산소를 넣어주는 식의 환기만 한 번 시켰더라도 사고가 날 수가 없어요. 농어촌 공사에서 공사 인원 파악하고, 장비가 제대로 갖춰진지 파악하고 현장에서 감독했다면 우리 아들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라며 이씨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 관리가 안 됐다고 지적했다. “농어촌 공사에서는 ‘로봇이 들어갈 곳에 사람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먼저 그들이 나와서 제대로 관리를 안 해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영정사진 속의 이군은 그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따로 영정사진을 준비했을 리가 없을 나이였다. 누나에게 원피스 선물도 전해주지 못한 채, 이군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