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은 작년 8월까지만 해도 하나의 정당이었다. 두 정당으로 갈라서게 된 시발점은, 19대 총선의 비례대표 순번을 결정하는 통합진보당 당내 선거였다. 당내 선거의 부정·부실 의혹이 제기됐고, 그 후로 여러 논란과 함께 당내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현재의 정의당 세력이 통합진보당에서 탈당해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었다. 두 정당으로 갈라섰지만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은 여전히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이 갈라선 지 1년 즈음이 지난 8월의 어느 날, 두 정당의 20대 당원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통합진보당 당원 최인호(27)씨와 정의당 당원 오수환(28)씨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에 대한 질문은 잠시 뒤로 미루고, (청년)학생위원회에 대한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Q. 통합진보당에는 학생위원회, 정의당에는 청년학생위원회가 존재한다. 학생 당원들이 포함된 위원회라는 건 알겠지만,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다. (청년)학생위원회가 가지는 권한, 의무 등이 궁금하다.

통합진보당 최인호(이하 ‘최’) : 통합진보당 중앙당에는 학생위원회가 있지만, 대전시당에는 학생위원회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유성구에 사는 대학생들이 많아서, 유성구 학생위원회를 만들려고 하는 중이다. 학생위원회에는 지원금이 주어진다. 지원금이 있으면 강연, 선전전, 캠프 등을 쉽게 열 수 있다. 공식적인 지위가 가지는 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위원회에서 매주 만나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의 의미가 가장 크다. 아직 대전에는 학생위원회가 없어서 아쉽다. 서울에선 학생위원회가 꽤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같다.

정의당 오수환(이하 ‘오’) : 정의당에는 아직 학생 당원수가 많지 않아 학생위원회는 없고, 청년학생위원회가 있다. 문정은 부대표가 청년학생위원회의 1기 위원장이었다. 통합진보당과 상황이 비슷한 것 같다. 서울에서는 학생 당원 수가 많으니깐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최저시급 인상과 관련된 활동을 주로 했다. 하지만 지방에는 당원 수가 부족해서 서울처럼 하기가 힘들다. 대전시당의 경우 청년학생위원회에 속하는 2030의 비율이 높긴 하다. 그런데 그 중 대부분이 30대다. 20대 당원을 어떻게 모을 것인지가 고민이다.

통합진보당 최인호 당원(우측)과 정의당 오수환 당원(좌측)


Q. 20대 당원들끼리는 자주 만나는가?

최 : 그냥 친해서 모이는 20대 당원들이 많다. 굳이 당원이어서 만나는 건 아닌데, 만나고 보면 당원들이다. 모여서 고기를 구워먹거나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한다.

오 : 주로 만나는 사람이 당원들이다.

최 : 당원이 아니던 사람도 만나다 보면 당원이 되고...(웃음) 일상인 것 같다.

오 : 정당 가입이 일상적인 게 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정당에 가입한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Q. 20대 당원들끼리 만나면 주로 어떤 얘기를 하는가? 역시나 시사 얘기 인가?

최 : 꼭 시사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각자 사는 얘기를 주로 한다. 어떤 힘든 일이 있었다던가, 어디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던가 하는 얘기다. 그런데 사회 현안에 관심이 있어서 당원이 된 거기도 하니깐, 시사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오 : 하는 얘기는 비슷한 것 같다. 20대 청춘이다 보니 연애 얘기도 많이 한다. 20대 후반 당원들의 경우, 결혼 얘기로 바뀐다.(웃음) 대학 졸업 후엔 뭘 해야 할까 하는 진로 얘기도 한다. 물론, 쟁점이 되는 시사 현안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Q. 진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겠다. 두 정당 모두 진보를 표방한다. 통합진보당은 당명에도 진보가 들어가 있고, 정의당은 얼마 전에 당명에서 진보가 빠지긴 했지만 강령 상으론 여전히 진보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두 정당이 말하고자 하는 진보가 약간은 달라 보인다. 각자가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인가?

최 :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게 진보라고 생각한다. 현 시점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공유한 뒤, 해결해나가는 것이 다 진보이지 않나 싶다.

오 : 약육강식을 깨뜨리고, 편안함을 바꾸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느끼기엔 진보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몸 가는대로만 하면, 강한 사람만 더 강해지는 정글 같은 세계가 된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것이 진보이지 않나 싶다. 통합진보당과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어 보인다.

통합진보당 최인호 당원


Q. 각 정당이 추구하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줬으면 한다.

오 : 정의당의 색깔은 약간 복잡하다. 다양한 생각을 가지신 당원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여러 당원들의 가치를 공유해가면서 공통된 지향점을 찾는 게 정의당의 목표다. 현재로선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외적으로는 정의당이 북유럽 복지국가 방식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실 상황에 맞는 사회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려 한다.

최 : 통합진보당원들도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달라서 이론적으로 자주 싸우기도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생각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후에도 친일파들이 권력을 이양 받았다. 아직도 기득권에 친일의 잔재가 남아있다. 지난 대선 토론회 때 이정희 대표의 ‘다카키 마사오’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Q. 두 정당이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것 같다. 편견과 오해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보겠다. 어느 정당이든 편견과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오해가 아닌 사실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편견과 오해를 풀어보고자 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당원으로 활동하며 많이 들어온 편견 혹은 오해 몇 가지와 함께 해명까지 덧붙여 주시길 바란다.

최 : 당연히 종북 얘기를 많이 들었다. 김일성 개새끼라고 외치면 종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나? 아쉬운 점이 많다.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을 정말로 종북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하다. 통합진보당이 어떤 행동을 하든 종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자유로운 시선으로 통합진보당을 바라보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Q. 단순히 사람들의 고정 관념이라고 보기엔, 통합진보당의 행적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 : 북한에 대해 공부를 하는 당원들이 있긴 하다. 그런데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함이지 다른 목적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반공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지다보니, 북한에 대한 인식을 가지기만 해도 종북이 되는 것 같다. 통합진보당의 강령을 문제시 삼기도 하는데, 통합진보당의 강령은 대한민국의 제헌 헌법보다 수위가 약하다. 통합진보당 강령을 가지고 종북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설립 자체를 무시하는 발언일 수 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때문에 주체사상을 봤다고 말만 해도 잡혀가는 상황이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책을 봤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듯, 주체사상을 본다는 것만으로 문제를 삼아선 안 된다.

Q. 정의당의 경우 어떤 편견이나 오해가 있나?

오 : 편견이 있나요?(웃음) 솔직히 말하면 정의당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이다. 차라리 오해나 편견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노회찬, 유시민 같은 유명한 정치인을 알긴 하지만, 어느 정당에 속해있는지는 모르더라. 정의당에 이정희 의원이 있다고 착각하는 분도 있고, 민주정의당이라고 잘못 부르시는 분들도 있다. 정의당에 대한 기사도 별로 안 나오는 편이다. 인터넷 언론에선 많이 다뤄주지만 메이저 언론에서는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왜 이렇게 존재감이 약한지 원인을 빨리 찾아야 한다.

정의당 오수환 당원


Q. 이제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겠다. 작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 얘기다. 비례대표 선거에서 부정·부실이 발생했다. 이후 부정선거의 주체가 누구인지부터 시작해서 중앙운영위원회에서의 폭력 사태를 비롯해 여러 논란이 있었다. 당시에 발생했던 여러 논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 : 논란들 중에 주요했던 것 3가지를 뽑아보면 부정 선거, 중앙운영위원회 폭력 사태, 종북 논란이다. 비례대표 선거의 부정·부실을 제기했던 세력(참여계)이 오히려 부정 선거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알고선 멘붕했었다. 중앙운영위원회 폭력 사태의 경우, 현재의 통합진보당 세력이 분명히 잘못한 사건이다. 그런데 종북 논란이 모든 걸 다 덮어버렸다. 종북 논란은 통합진보당 당원들 간의 관계를 더욱 소원하게 만들었다. 사회와 언론이 통합진보당을 두 동강 낸 것 같다.

오 : 진보 진영의 암묵적인 문제가 드러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당 내 부정·부실 선거는 이전에도 계속 존재했던 사건이다. 독재 시대에 진보 진영은 괴물과 싸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괴물이 됐어야 했다. 그런데 독재 시대가 끝났음에도, 괴물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는 게 문제다. 당 안에서 패권을 잡으려하다 보니 선거에서 부정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참여계 뿐만 아니라 다른 세력들도 비례대표 선거에서 자잘한 문제들을 일으켰다. 다 같이 잘못한 건데 서로의 책임을 물으며 싸우기만 하면서, 국민들에게 더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함께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최 : 양쪽 다 잘못한 부분이 있는 건 맞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쪽에선 부정 선거를 저지르진 않았다. 통합진보당 비례 대표 선거를 검찰에서 검사 13명을 투입시켜가며 철저하게 조사했었다. 김재연, 이석기 의원의 제명 이야기까지 나왔던 때다. 그토록 김재연, 이석기 의원을 구속시키고 싶어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만일 통합진보당 쪽에서도 부정 선거를 자행한 정황이 있었다면, 검찰이 못 찾아냈을 리가 없다. 통합진보당은 패권 문제에 대해선 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여 통합진보당에게 부정 선거의 책임까지 묻는 건 아니라고 본다.

오 : 검찰 조사 결과에서 참여계만이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나왔다고 해서, 통합진보당이 부정 선거를 전혀 일으키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자기 쪽에선 잘못이 없었다고 말하는 부분은 아쉽다. 서로를 탓하기 보다는 반성하고 대안을 만들어냈어야 했다. 당 내 부정 선거 문제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국정원의 선거 개입만을 비판하는 건 이중 잣대다.

최 : 이제는 모두들 작년의 여러 논란들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을 거라 본다.

오 : 작년의 논란들로 인해 진보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진보의 위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 질문이다. 통합진보당에게 정의당이란? 정의당에게 통합진보당이란?

최 : 통합진보당에게 정의당이란, 헤어진 여자친구 같다. 정의당을 생각하면 정말 오만가지 감정이 든다. 다시 만나고 싶은데도 못 만나겠다. 막상 보게 되면 화가 나다가도, 같이 술 한 잔을 하고 싶기도 하다. 오만가지 감정 중에서도 아쉬움, 슬픔, 애증감이 먼저 든다.

오 : 정의당에게 통합진보당이란, 가깝고도 먼 존재다. 두 정당의 당원들 중에는 서로 친한 분들도 있다. 그런데 작년에 여러 일을 겪으며, 겉으로는 친해 보여도 속으로는 벽이 생겼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진보 진영에서 함께 가야할 동지다. 하지만 굳이 하나의 정당으로 합쳐야 하는 건 아니다. 사안에 따라 연대를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