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철저한 ‘평가’ 속에서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무언가를 잘하면 받곤 했던 ‘칭찬 스티커’부터 고등학교 수능 시험을 보는 그 자체가 하나의 평가였음은 물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후에도 나의 능력은 실적으로 평가된다. 평가는 한 개인에게 좋은 성장을 할 수 있는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더욱더 경쟁 상태로 몰아넣는 불필요한 평가 또한 존재한다. 대다수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상대평가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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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 선정되었다. 선정된 학교들은 절대평가로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할 수 없게 됐다. 학생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몇몇 대학은 평가를 P/NP(Pass/Non Pass-패스와 페일로 성적을 산출하는 방식)로 하는 과목 외에 모든 교과과목의 평가를 A 등급이 25%, A와B 등급의 합이 65%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상대평가가 아니면 점수를 환원할 수 없게끔 만든 대학도 여럿 있다.

사전을 보면 절대평가는 “교육의 목표에 대해 개인 또는 집단이 어느 정도로 목표를 달성했는가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나와 있는 반면 상대평가는 “한 학생이 받은 점수가 다른 학생들이 받은 점수에 의해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평가방식”으로 나와 있다. 결국 상대평가는 ‘평가’가 오롯이 나 자신을 놓고 이뤄지는 것이 아닌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들의 어쩔 수 없는 상대평가로의 전환이 한 개인을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만 보게끔 만든 셈이다.

어느 대학의 교수는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이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선정되자 지난 교직 생활에서 고수해오던 절대평가를 상대평가로 바꿔야만 했다. 고민 끝에 결국 교수는 상대평가를 선택하는 대신 ‘페스 페일’ 방식의 평가를 택했다. 개인의 노력과 가치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환원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에 성적 평가와는 상관없이 오직 자신을 진단하는 평가로서 점수를 적어주겠다고 했다. 교수는 “평가는 개인에게 도움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교수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온 교육과 전반적인 삶을 상대평가가 지배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쟁을 점점 더 내면화시키고 있다. 스스로 마음속에 경쟁자를 세워놓고 비교 대상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상대평가는 경쟁적인 구조를 더욱더 고착화하면서 사람들을 불안 속으로 잠식시켜 갔다. 반정부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엄격한 성적평가로 묶어두기 위해 전두환 정권 때 처음 도입된 상대평가가 결국엔 학생들을 학점에만 매달리게 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던 우리는 상대평가라는 굴레가 주는 경쟁적인 삶의 일상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는 삶도 ‘전쟁’이 될 수 있다. 내가 잘살기 위해 남을 밟고 일어서는 삶. 그것이 객관적 진리로 여겨지는 삶. 결국에는 그 모든 상처가 무뎌지는 삶을 우리는 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