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정말 ‘요정’이 되어 날아간 것이 올해로 3년이 됐다. 요정이 2003년에 첫 앨범을 낸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2003년 가요계에는 굵직한 가수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다른 그녀와 비교하지 말라던 이효리가 10분만 달라며 나왔고, 그녀는 정말 10분이면 누구든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에 질세라 보아는 자신이 아틀란티스의 소녀임을 증명하려고 뮤직비디오 속에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비는 이름답게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들고 나왔고, 세븐은 노래를 모르겠는데 신발에 바퀴를 달고 나왔다. 이렇게 가요계가 복작거릴 때, 요정은 가내수공업을 통해 제작된 첫 앨범을 가지고 조용히 찾아왔다. 요정의 이름은 무척 길다. ‘이효리보아비세븐’ 보다 길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 괴상하고 난해한 이름이 요정의 이름이다.

요정의 이름이 이렇게 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정은 그 이유를 ‘욕망’이라 했다. 요정은 말한다. “현실의 이진원은 대한민국 하위 70퍼센트의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무대에서 달빛요정의 탈을 쓰고 평균치의 인간이 된다. 노래하는 이진원은 달빛요정이다.” 그렇다. 하위 70%의 인간이 노래하기 위해서는 ‘요정의 탈’을 쓴 ‘달빛요정’이 되어야만 했다. 요정은 앨범마다 새로운 고민과 시도를 접목했기에, 각 앨범의 느낌은 다르지만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욕망의 좌절과 체념. ‘절룩거리’는 ‘스끼다시 인생’도, ‘자신은 어차피 이것밖에 안 되’고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그의 체념 섞인 하소연, 뭇 여성에게 어떤 어필도 할 수 없던 사랑에 낙담한 남자의 모습은 모두 좌절과 체념이라는 주제로 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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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의 노래를 좋아했던 나를 비롯한 이들은 요정이 노래하는 좌절과 체념에 어떤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요정의 노랫말은 우리의 현실을 철저하게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시험에서의 좌절과 경쟁에서의 패배, 사랑의 아픔은 공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결국에는 ‘알량한 자존심’을 버릴 결심해야 하는 모습은,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이 매일 반복하는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요정이 떠나고 발간된 에세이집 ‘행운아’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달빛요정 행세는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라는 구절에서 요정도 젊은이들이 자신의 노래의 어떤 점에 매료되어 있는지를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요정은 말한다. “난 현실을 노래할 뿐이다. 현실의 절망을 노래해서 돈을 번다. 절망을 팔아서 먹고사는 게 부끄럽기에 많이 벌 생각은 없다. 평생 음악만 하게 해줘요.”

하지만 빌어먹을 현실은 요정의 바람을 지고지순하게 두지 않았다. 달빛요정이 살았던 인간으로서의 삶은 그를 좋아했던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울하거나 암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되려 요정과 요정의 가족은 달빛요정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웬걸. 현실이라는 놈은 요정을 그렇게 우려했던 비극적 서사의 주연으로 연출했다. 2010년 오늘, 요정은 뇌졸중으로 떠났다, 현실을. 이후 요정의 죽음은 달빛요정이 우려하던 식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88만원 세대 음악인의 쓸쓸한 죽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사회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이들은 여전히 달빛요정의 ‘노래’에서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때로는 그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씁쓸하고 처절한 모습을 위안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또 다른 아픔을 둘러볼 여유를 얻기도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요정의 노래가 마치 모두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각자의 삶 속에서 꿈을 꾼다. 수능 고득점, 명문대 진학, 황홀한 연애와, 대기업 입사, 연이은 성공과 대박과 승리. 그런데 잠깐, 우리가 이런 ‘엄청난’ 것들만 욕망하던가, 아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대학에 가고 싶고, 소소하지만 설레는 사랑을 해보고 싶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월급이라도 나오는 직장을 바란다. 성공과 대박과 승리, 사이에 몇 번의 실패가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에게 그 정도의 욕망도 허락하지 않는다. 연이은 실패와 좌절로 좌절과 체념만을 맛보게 한다. 때문에 우리는 달빛요정의 노래를 듣는다. 달빛요정은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 ‘욕망’을 위해 ‘요정의 탈’을 쓰고 무대에 올랐듯이, 우리도 각자의 소소한 바람을 위해 가면을 쓰고 각자의 무대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 모두가 ‘요정’이 되는 것이다.

달빛요정은 한국프로야구 LG트윈스의 열혈팬이었다. 요정은 LG의 경기를 매번 일기장에 적었고, LG가 우승한다면 전국 무료 순회공연을 약속하기도 했다. LG가 11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가을야구에 참여했으나, 이미 요정은 없었다. 그러나 팬들의 뇌리 속에는 요정에 대한 기억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유투브에 업로드 된 그의 노래들에는 댓글을 통해 LG의 가을 야구를 그와 함께 축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아쉬움이 박혀있다. “난 잊혀질 거야. 지워질거야. 모두에게서 영원히”라고 나지막이 노래하던 요정은 이제 정말 가버리고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좌절하고 실패하며, 하소연과 푸념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여전히 내 ‘청춘을 단 하나에 바쳐도’ 먹고 살기는 힘든 지금, 우리는 그를 잊거나 지울 수 없다. 달빛요정은 지금도 누군가의 ‘요정’이 되어 노래할 것이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