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핫한 드라마로 떠오른 SBS 수목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者들>(이하 '상속자들‘)은 가난에 찌든 18세 여고생 차은상(박신혜)이 재벌 2세 김탄(이민호)과 사랑에 빠지고,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험난한 사랑의 여정을 겪는다는, 언뜻 보면 신데렐라 판타지에 충실한 드라마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등으로 유명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의외로 김은숙 작가는 신데렐라 내러티브를 순순히 차용해오지 않았다. 우선 작품의 숫자만 따져봐도 그동안의 작품들 중 신데렐라 내러티브가 중심이 된 것은 9개 드라마 중 '상속자들'을 포함 3개에 그친다. 그나마 해당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작가는 순순히 정도를 따라주지 않았다. '파리의 연인'의 경우에는 재벌 2세 남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님' 지위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하는가 하면, 급기야 마지막회에서 그동안의 모든 일이 여주인공이 쓴 소설 속 내용이었다는 것으로 결말이 나서 시청자들에게 적잖은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었다.

'시크릿 가든'에서도 남주인공은 극 초반부터 여주인공에게 그들 간 극심한 계급 차이를 분명히 하며, 자신의 신데렐라가 아닌, 오매불망 사랑하는 남자만 바라보다 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인어공주'가 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시청자들의 드라마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는데, 드라마의 대중성에 매몰되지 않고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보고 싶은 나름대로의 몸부림으로 읽힐 수 있다. 요컨대 김은숙 작가는 통념과는 달리 전형적인 신데렐라 내러티브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어떻게든 비틀어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보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파리의 연인'의 경우에는 종영 직후 시청자들의 반발이 엄청났으며, '시크릿 가든'의 경우에도 방영 내내 새드엔딩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쇄도했었다. 대다수 드라마 시청자들로서는 마음 놓고 신데렐라 판타지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이 크다. 현실이 아닌, 꿈을 즐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는 상속자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 하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는 좀 이상하다. 현실과 꿈을 둘 다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작가의 욕심이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신데렐라 아가씨와 재벌2세 왕자님의 내러티브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그 기저에 자리한 현실의 민감한 문제들을 슬쩍슬쩍 건드린다. 그 결과 '상속자들'은 현실도, 꿈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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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들'에서 작가는 모험을 시도한다. 드라마가 꿈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의 구체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드라마의 자기분열이 시작된다. 우선 '상속자들'이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공교롭게도 이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쓴 책과 이름이 같은데, 부르디외의 책에서 일컫는 '상속자들(Le Heritiers, 1964)'이란 부모의 계급이 다시 자식의 계급으로 이어지고 재생산되는 매커니즘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계급 재생산은 계급 간 차별적인 학교 교육을 매개로 한다. 학교 교육을 통해 자식들은 부모가 향유하고 있는 고급 문화를 고스란히 학습한다. 드라마 속 주요 공간인 '제국고'는 이러한 부르디외의 설명에 철저히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 상위 1%의 자녀들만이 다닐 수 있는 학교, 2~3개 외국어 구사는 기본이고 골프와 승마를 필수교양으로 배우는 학교, 스스럼없이 자신이 미성년자 재벌 몇 순위인지를 떠들어대는 학교. 이러한 현실비판적 이론을 염두에 둔 공간은 상상 속 판타지의 공간으로만 머물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제국고'라는 네이밍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제중 사태에 대한 환기를 요청한다. 부르디외의 이론을 모른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계급 갈등 문제가 생생하게 와 닿는 순간이다.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만을 '찍어서' 폭력을 행사해 온 호텔 사장 아들 최영도(김우빈)의 에피소드는 제국고로 상징되는 최상위 계급에 감히 발을 들이려는 하층 계급에 대한 '당연한' 차별과 배제의 결과다. 사배자 학생 문준영(조윤우)을 향해 최영도가 “앞으로 네 인생은 쭉 이럴 거라는 거지. 우리가 앞으로 커서 네 고용주가 될 테니까”라고 말하며 비웃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아들을 국제중에 부정 입학시키려 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교장에게 1억원씩 상납해서라도 사배자 전형을 통해 국제중에 자녀를 입학시켜보려 했던 중산층 부모들을 각각 오버랩시킨다. 순간 드라마는 황홀한 꿈이 아닌 냉엄한 현실로 탈바꿈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작가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그녀의 신데렐라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데 실패한다. 또다른 사배자인 차은상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잔혹한 현실은 사랑의 낭만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소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였던 작가의 문제의식은 신데렐라 서사의 허울 좋은 병풍으로 전락한다. 거창하게 시작했던 사배자 에피소드는 결국 최영도의 행동이 어머니의 가출로 겪은 외로움이 폭력성으로 발현된 결과이며, 그로 인해 차은상은 그를 보면서 모성애를 느끼는, 가련한 신데렐라 여고생을 둔 왕자님들 간의 갈등을 본격화하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로 축소된다. 그렇기에 결국 전학을 택하고 제국고 교문을 나서는 문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차은상에게서는 별 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급기야는 계속 출연하면 주요 스토리 전개에 방해만 될 것 같은 주변부 캐릭터가 마침내 제거된 듯한 후련함마저 준다. 꿈과 현실 모두를 말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지나친 욕심이 부른 결과다.

그런데 작가는 끝끝내 현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인지, 이번에는 김탄이 재벌 회장의 ‘서자’라는 설정을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그동안의 전형적인 재벌2세 캐릭터가 집안의 적자로서 지위 유지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법적인 부인이 아닌 ‘첩’의 자식이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김탄이 차은상의 ‘백마 탄 왕자님’이 되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더 나아가 여전히 혈통을 중시하는 한국 상층 사회의 전근대적인 면모를 조명함으로써 한국 재벌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하지만 이 또한 뜬금없는 것이, 이 드라마에서 ‘부(富)’는 판타지의 시작이자 끝이다. 극 초반에서 김탄이 배다른 형에 의해 한국에서 쫓겨나 ‘유배 생활’을 하는 곳으로 나오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배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하얗고 눈부시다. 그곳에서의 김탄과 차은상의 첫 만남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서자’ 김탄이 아닌, ‘재벌2세’ 김탄만을 머릿 속에 부지불식간에 각인한다. 오랜만에 만난 형이 매몰차게 김탄을 대하는 모습을 차은상이 우연히 엿보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이 가난한 여고생이 남주인공의 상처를 보듬으며 신데렐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만을 발견할 뿐이다. 김탄이 배다른 둘째 아들로서 골치 아픈 재벌가 내 암투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극 후반에 들어서서 판타지로서의 '부'가 갑자기 현실의 그것으로 돌변하니, 신데렐라 서사구조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갈 길을 잃는다. 재벌2세로서의 지위도, 사랑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김탄의 모습에서 김은숙 작가의 딜레마가 읽혀진다.

사실 이렇게까지 골치 아프게 드라마를 분석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쉬우면 안 보면 그만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김은숙 작가가 풀어내는 '상속자들‘ 속 신데렐라 이야기가 위태롭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작가가 감당해야 하는 꿈과 현실 사이의 줄타기는 작가 개인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작품성과 대중성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간극에서 비롯되는 한국 드라마계의 한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꿈도 현실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김은숙 작가, 과연 끝까지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