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가 파업을 결정했다. 100만인 서명, 정책토론, 국회 청원, 집회까지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 지금의 파업이다. 그런데 현재 철도노조의 파업을 바라보는 일부 여론과 언론, 심지어 문제의 당사자인 국토교통부마저도 '국민 불편'이라는 주제만을 고장 난 스피커처럼 동어 반복하고 있다. 코레일은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일부 열차 운행이 중지… 이용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한껏 정중한 척 입장을 가다듬고 있고, 국토교통부는 철도노조가 "국민의 불편을 담보로 파업에 돌입"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실로 불편하다. 화물열차가 줄어 물류유통의 문제는 있을 것으로 예고되지만, 아직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이용객이 열차이용에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뭐가? "국민의 불편을 담보로" 노조의 정당한 권리인 파업을 '불법'으로 치부하는 코레일의 언어 연금술,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가 "국민의 불편"이라는 용어 뒤에 숨어서 정상적인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국토교통부의 얄팍한 태도가 불편하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불법인가, 라는 질문에 국토부와 코레일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은 김명환 철도노조위원장을 포함한 194명의 노조 인사를 대거 고발 조치했다. "파업에 참여한 철도노조원의 직위를 해제 할 것"이라고 엄포를 내놓은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파업 참가자 4,356명 전원을 직위 해제하는 파격적인 처벌을 가했다. '고발'하고 '처벌'하니, 정말 파업이 '불법'같아 보인다. 하지만 표면상에 드러난 것으로 사태를 간편하게 진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철도노조는 현재 수서발 KTX와 관련된 철도 민영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상 '정당한' 파업의 목적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노사 간의 자치적 교섭을 조성'에 한정된다. 만약 철도노조가 민영화 반대를 위한 파업을 진행한다면 '불법'으로 판단될 여지가 생긴다. 철도노조는 그래서 '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6.7%의 임금인상안 등을 포함한 요구사항을 걸고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철도노조의 파업은 국토부와 코레일로부터 '불법'이라는 딱지를 맞고, 일부 언론과 여론에 '임금 때문에 파업한다'고 몰매를 맞고 있다.

철도 민영화는 철도 노조를 비롯한 철도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동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나아가 열차를 이용하는 국민들과 무관한 사안인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철도 민영화 이후 관련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해지며, 민영화된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의 안전은 담보할 수 없다. 한국의 9호선과 신분당선을 각각 베올리아와 맥쿼리가 민영화했을 때, 보여준 결과는 요금인상 문제, 검은 머리의 외국인 논란, 여기에 이윤 및 배당금이 그들의 호주머니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꼴'뿐이었다.

파업은 법률이 정한 기본권이다. 중고등학교 때 한 번쯤은 중간고사 시험문제로 출제가 예상되어 달달 외웠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교과서와 시험지 답안에서만 문자로 존재한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처럼 "노동3권을 보장하면 파업발생 우려는 당연"하다고 설레발치고 있다. 파업이 마치 국정원 '불법' 댓글 파동마냥 표현한다. 국토부와 코레일이 말하는 '불법 파업'이라는 용어자체가 형용모순이자, 어불성설이다. 파업은 노동3권이고, 이는 헌법이 인정하는 기본권이다. "헌법이 보호하는 '불법' 기본권"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국민과 노동자의 기본권조차 자의로 결정하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협하고, 헌정을 뒤집으려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 물어야 한다.

홍세화 <말과 활> 편집인은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95년 파리의 대중교통이 전면 파업한 2주의 모습을 그린다. "단 한 차량의 자하철도, 고속전철도, 전차도, 기차도 없었고, 단 한 대의 시내버스도 운행되지 않았다"는 파리에서, 시민들은 당연하게도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파리의 시민은 말했다. "불편하지요. 하지만 나는 파업노동자들을 100% 지지하고 있습니다." 홍세화는 파리시민의 이러한 태도가 가능한 이유를 "똘레랑스로 불편함에 대한 불평, 불만을 털어내고 파업 노동자들의 사회정의 요구에 연대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 레프트21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대규모 파업 현장


프랑스의 실천적 지식인 알베르 카뮈가 선언한 "사회적 정의는 질서에 우선한다"는 명제는 지금도 프랑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사유권 보장'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홍세화 씨의 설명이다. 그는 이어서 파업은 실제 사회에서 '사회적 정의'와 '질서'가 충돌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노동자에게 파업권은 사회정의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이자 '권리'이다. 이에 상대방은 노동자의 권리행사에 합당한 태도로 대화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국토부와 코레일은 파업을 '불법'이라고 말하고, '국민의 불편'을 빌미로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사회에서 본인들의 의무를 도외시하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