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지 못한 대학생들의 대자보 릴레이는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매일 같이 대자보가 새로 붙고 있습니다. 대자보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1000개는 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는 25만 개를 넘어섰고, 이제는 대학별로도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지가 생겼습니다. 16일에는 명동에서, 17일에는 서울역에서 1인 시위도 시작됐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앞으로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안녕들하십니까’ 열풍에, 저는 처음부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안녕들하십니까’ 열풍에 동참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자라는 미명 아래 현상을 관찰하고, 이어지는 논의를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목소리가 담긴 대자보를 하나의 정보로만 여겼습니다. 저 자신이 안녕한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고려대 정경대 후문으로 가는 길. 벽면이 대자보로 가득 찼다.


그런데 점차 안녕하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대자보가 감성팔이에 불과한 선동이라는 말들 때문입니다.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며, 대자보를 쓴 대학생들을 폄하하더군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자보를 썼다면서요. 수서발 KTX의 자회사 설립은 철도민영화가 아니다, 불법파업에 대한 징계는 당연하다는 반론이 이어졌습니다.

대학생들의 “안녕하지 못하다”는 외침은 단지 철도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철도 문제는 안녕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뿐입니다. 수많은 대자보의 숫자만큼, 수많은 이유로 대학생들은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신은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면서, 다른 분들은 안녕한지 묻는 것입니다. 남들에게도 안녕하지 못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도, 선동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김진 위원님, 대자보에 C학점을 주니 안녕하시던가요? ⓒjtbc 화면 갈무리


팩트를 운운하며 안녕하지 못하다고 외치는 대학생들을 짓밟는 광경 때문에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대학생들에게 왜 자꾸 팩트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요? 심지어 대자보를 찢고, 불태우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물론, 대자보의 내용에 동감하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대자보의 내용 중에 잘못된 정보가 포함돼있기도 합니다. 대자보 열풍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묵살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대자보를 쓴 대학생들을 비난하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꽁꽁 싸매고 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훼방을 놔야만 직성이 풀리시나요? 용기를 내서 안녕하지 못하다고 외친 대학생들을 손가락질하니, 안녕들 하시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