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처음 겪은 세상과의 만남 역시 모태와의 이별의 순간도 함께였으니, 만남과 이별은 사람에게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남보다는 이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것과의 만남은 언제나 설레는 것일테지만, 만남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별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겐 각자의 이별이 있고, 각각의 이별은 모두 눈송이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함20의 새로운 연재인 <이 별에서 이별까지>에서는 20대라면 겪었을 법한,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이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별에서 사는 당신의 이별은 어떻습니까?


사람들과 만남의 횟수를 의도적으로 줄인지 몇 달쯤 됐을까.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집 청소고 나발이고 먼지와 함께 뒹굴며 담배나 뻐끔대고 소주병이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TV에서 흔히 보이는 바람직한 이별의 자세를 갖추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방은 생각보다 깔끔했고 곳곳에 놓인 디퓨져 덕분에 향기가 났다. 깔끔하고 향기나는 나의 자취방과 뒤죽박죽인 나의 마음은 매우 모순적이었다. 마치 나의 지금의 모습처럼.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만나달라고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오는 연락을 굳이 피하진 않았다. 사람들과 만나면 즐겁게 웃으며 성실하게 술을 마셨다. 괜찮으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나는 다른 사람을 욕하지 않아"라며 의연해했다. 그렇게 스스로 대견해하며 별일 없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취방에 돌아와 습관처럼 흔들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흔들흔들. 오늘은 뭐했지. 흔들흔들. 커피나 마실까. 흔들흔들. 영화 한 편 보고 한 시간 뛰고 오면 상쾌하겠다. 흔들흔들. 흔들흔들.

그렇게 흔들거리는 머릿속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내 의식의 흐름은 어느샌가 얼마 전 헤어진 사람에게로 흘러갔다. 마지막 데이트 때 갔던 신사동의 한 식당이 생각났다. 나는 그날 숙취 때문에 속이 아팠다. 그리고 그녀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날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백번 정도 했던 것 같다. 대단한 이유가 있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숙취가 있었고 기억도 안 나는 이유로 그녀에게 화가 나 있었으며, 음식을 맛있게 먹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도 화가 났다. 밥을 먹다가 화장실에 간다 하고는 헛구역질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고 "이거 맛있네"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내뱉었다. 그리고는 또 화장실을 갔다. 

그 식당 밥값이 얼마였더라. 나는 그날 얼마를 썼지. 식당에서 나와 커피를 마시러 갔다. 내가 커피를 사오자 "아, 커피는 내가 살랬는데" 라는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백한 번째 했다. 그랬으면 내가 가기 전에 네가 갔어야지. 

갑자기 내가 연애를 하면서 쓴 돈이 얼마일까 궁금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것저것 계산해보다가, 우리의 사랑은 얼마짜리인 건가. 우리는 이렇게 계산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사랑이 이렇게 저렴했을까. 돈이다가 아닌 데를 되뇌다가, '헤어지길 잘한거야'라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했고,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는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잤다.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치졸했던 하루가 또 지나갔다. 사랑을 하면 남자는 찌질해진다던데, 그렇다면 헤어진 후에 더 찌질해지는 건 남자일까 여자일까. 성구분이 무색하게 더 마음을 쓴 사람이겠지. 억울하다, 마음을 더 쓴 것도 억울한데 찌질하다며 욕까지 먹어야 한다니.

ⓒ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컷


일 년 반가량의 연애가 끝나가는 이별의 순간에 우리는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축자적 의미의 이별선언일까. 이 말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잘 지내라고, 행복하라는 말을 해야 했었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이별의 순간은 아무리 겪어도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를 붙잡아 보려 했던 것은 형식적인 체면치레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면죄부를 받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우리 관계에서 최소한의 노력은 했다고. 이후에 오는 모든 감정들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사실은 어긋나버린 관계를 회복시킬 의지도, 마음도 없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직면하기 두려웠던 것도 나였고, 더는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헤어질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도 나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또 한 번의 연애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