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의 감동을 한국에서

'지지않는 꽃' 기획전 한국에서 앙코르 전시

어렵고 민감한 소재임에도 만화로 쉽게 다가와

 
짐 윌리스의 저서 <God’s politics>에서는 ‘사회를 바꾸려면 정치인이 아니라 바람, 담론 배경 등 의제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인터넷이라는 요소와 만화의 장점이 합쳐진 ‘웹툰’ 장르는 이제 의제를 형성하는 최적의 방법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과거 만화는 유흥 수단으로만 여겨지거나 특정 집단의 마니아들만 향유하는 장르로 취급받았다. 기자도 어렸을 적 만화책을 빌려오면 어머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 침대 밑에 숨기거나, 장롱 속에 들어가서 몰래 보기 일쑤였다. 하지만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즐겼다. 신문 만평 등에서 나타나듯 만화는 이런 기능을 가장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도구다.  

웹툰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해다란 작가 '어른스러운 철구'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1992년 1월 8일 시작한 위안부 수요 집회가 22년째 열려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와 한이 새겨진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담화를 재검증하겠다는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그럼에도 지난달 28일 스가 장관은 검증 조사팀을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웹툰 또한 이에 동참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되는 이무기 작가의 ‘곱게 자란 자식’은 위안부에 끌려간 한 소녀의 일대기를 모티프로 잡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소녀가 주인공인 웹툰 '곱게 자란 자식' ⓒ이무기



중간 중간 그려지는 이무기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은 어린 시골 소녀들의 해맑음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해맑음 때문인지 일제 강점기에 군화에 짓밟히는 소녀들의 참상은 더욱 잔인하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작품 말미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삽화를 넣었다 ⓒ이무기



‘위안부’라는 소재는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위안부'는 생소한 개념이다.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행태를 막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인식과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1월 30일부터 4일간 열린 세계 최대의 만화 축제인 제 41회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테마는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함께 하자는 주최 의도에 따라 대한민국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과거사를 고발하는 ‘지지 않는 꽃 - I'm the Evidence’ 기획전을 열었다. 일본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1만 7천여 명의 관객이 모였고,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 덕분에 외국인들은 낯선 소재임에도 깊은 공감과 지지를 표했다. 특히 현지 언론은 만화 작품 자체의 예술적 측면도 높이 평가했다. 라파엘 퀴르 국제미술평론가협회장은 “민감하고 다루기 어려운 소재임에도 만화로 정화시켜 다가가기 쉽게 표현했다.”며 극찬했다.

앙굴렘 만화축제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이번 전시는 지난 2월 18일 부천만화박물관의 전시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앙코르 기획전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위안부 소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이현세, 박재동, 김광성 등 19명의 만화가들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최신오 작가 작품 ‘70년 동안의 악몽’중 ⓒ최신오

탁영호 작가 작품 ‘꽃반지’ 중 ⓒ탁영호


전시 작품 중 탁영호 작가의 ‘꽃반지’는 위안소에 함께 끌려갔다가 혼자만 살아남은 언니가 주위의 시선에 고통 받으며 어린 동생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최신오 작가의 ‘70년 동안의 악몽’ 에서는 어린 나이에 위안부에 끌려가서 살아 돌아온 이후로 매일 같이 당시의 악몽을 꾸며 힘겹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삶을 그렸다.

24개의 액자를 통해 점점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잃어버린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신지수 작가의 ‘83’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고 이렇게 큰소리 펑펑치는 놈들은 처음이오 닛뽄도 뒤로 감추고 되려 나보고 사기꾼이라오...’ 라는 붓글씨와 함께 일본 군인의 칼을 부러뜨린 소녀를 그린 이현세 작가의 ‘오리발 니뽄도’등, 다양한 만화 작품들이 당시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지난 1월 2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총 234명 중 이제 남은 생존자는 55명 뿐이다. 매주 수요일 집회가 열리고, 나비 기금을 모아 전달하고, 소녀상을 세워봐도 일본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일본 정부의 주장의 핵심은 근거 부족이다. 산증인인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두 떠나시고 난 뒤에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사라진다. 지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사과를 그 때가 되면 어떻게 받아 낼 생각인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때문에 이번 전시회와 같은 다양한 시도가 더욱 반갑다.     

전시장 도슨트이자 학예연구원인 박초록씨는 “평일에도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주말에는 1700명 이상도 온다.”며 “중장년층이나 역사 단체에서도 많이 오고 먼 곳에서도 찾는 편이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서 어린이들도 많이 찾는다는 점이 이번 기획의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관람객 이태윤(26)씨는 “만화라서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수위도 높고 묘사가 선명해서 놀랐다. 보면서 눈물 날 정도였다. 일본의 방해가 있더라도 살아있는 분들이 계시는 동안 빠른 해결이 났으면 좋겠다.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적 진실을 훨씬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예정이다.”라며 일본에서 날조라고 주장하지 않도록 명백한 자료들을 만드는 작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자 전시회 정보
한국 만화 박물관(부천시 원미구) 1층 제2기획 전시실. 기간 : 2월 18일~ 3월 16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울시 종로구) 1층 기획전시실 . 기간 : 3월 1일~ 4월 13일
한국근대문학관(인천 중구). 기간 : 3월 5일~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