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가 없는 일상은 관성대로 흘러가죠. 관성이란 남는 힘이에요. 이미 가해진 힘은 끝났고 그냥 그 남는 힘으로 움직이는 거죠.  정말 행복한 자기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면 항상 생각하면서 관성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행은 그럴 수 있도록 항상 새로운 변수를 주는 것 같고요. ”
-인터뷰 중 오정근 씨의 말



세계 3대륙 20개국을 7개월 동안 여행하겠다는 오정근 씨를 만나봤다. 여행 테마는 '나와 너의 1+1'이다. 세계 각지에서 2~3주 정도 거주하며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과연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겠다고 한다. 살면서 가져왔던 낯선 곳에 대한 동경을 품고 떠나는 이번 여행에 담긴 의미를 들어보자. 왜 그가 여행을 가게 됐는지, 20대로서 그가 갖는 생각을 들어보기로 하자.

오정근 씨의 여행명함


 

Q. 안녕하세요! 세계여행은 어쩌다 결심하게 되신 거예요?

군대 다녀온 후 국내로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해외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봉사차원에서 베트남을 가본 정도? 그러다 2012년에 코트라 인턴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주요 상대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외국에 대해 많이 알아볼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내가 너무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해외여행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왕 하는 거 좀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첫 해외여행을 혼자 세계여행을 하는 걸로 결정했어요.

Q. 여행준비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처음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일단 세계지도를 그려보는 것부터 시작했죠. 처음엔 그리는 게 힘들었는데 계속 그리다 보니 세계가 어떻게 생긴 건지 대충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세계여행 스터디 같은 곳도 가서 10회 정도 서로 발표도 하고 정보 공유도 했었죠. 처음엔 비용 생각 없이 막 짜다 4000만 원어치 여행계획을 세운 게 기억이 나네요. 외국에선 김장을 잘하면 인정받는다고 김장을 배우기도 했어요.


세계여행 지도 그림을 보여주는 오정근 씨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준비과정이 있으신가요?

사하라 사막 같은 오지를 가기 위해서는 예방 접종이 필요해요. 황열병 접종이랑 뇌수막염 등을 예방한다고 돈이 거의 20만 원이 깨졌어요. 그게 참 아픈 기억이었죠. 그리고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어요. 어머니는 저를 잘 믿으셔서 마음이 편치는 않으시지만 허락을 쉽게 해주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문제였죠. 그렇다고 말도 안 하고 갈 수는 없으니까 설득을 하기로 했죠. 생각을 해보니 아버지가 주시는 돈으로 아들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했던 여러 가지 활동들, 제 생각을 적은 포스팅들, 여행경비를 위해 제가 번 돈 등을 정리해서 20여 장의 보고서 형식으로 아버지에게 보여드렸어요. 그걸 쭉 읽으시더니 결국엔 허락을 해주셨죠.


Q. 여행 경비는 얼마나 모으셨어요? 어떻게 모으셨죠?

예상 여행경비는 1200만 원 잡고 있어요. 경비는 작년부터 낮엔 교 다니고 밤에 빵 공장 다니면서 돈을 벌었죠. 제가 꽤 잘해서 거기서 키워주려고 하던 거 겨우 뿌리치고 한 달 만에 나왔어요. 그리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여행사 사진 찍어주는 일도 같이했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고 4박 5일 동안 고작 만 원벌었는데, 노하우가 생기니까 총 73일 동안 800만 원 정도를 모을 수가 있었어요. 꿈 한번 이뤄보겠다고 악착같이 벌었죠.

Q. 여행을 다짐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이 있나요?

특별히 멘토라고 할 분까진 없지만 구글러 김태원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느꼈어요. 성공과 실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지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많이 배웠죠. 돈을 벌 때도 ‘다른 시각을 배운다.’ 라는 생각으로 임하게 도와준 것 같아요.

Q.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 활동들이 이번 여행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봉사단체 ON, KOICA에서 활동했던 경험은 여행 도중에 색다른 경험을 줄 것 같아요. 현지에서 봉사도 실제 할 생각이고요. 또 코이카나 코트라 같은 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해외 각지에 퍼져있기도 해서 그 분들을 직접 만나 뵙기도 할 생각이에요. 크게 도움이 되진 않지만,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건 맞는 것 같아요.
 

Q. 세계여행을 준비한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하나요?

세계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먼저 물어봐야 할 것은 ‘어디로 가는데?’ 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하나같이 나왔던 질문은 ‘학교는? 졸업은?’ 과 같은 질문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많이 흔들렸죠. 하지만 요즘 제 친구들은 다 저를 아니까 저를 응원해주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공대여서 일찍 취업한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이 저를 보면 ‘정말 네가 잘살고 있는 것 같다.’ 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Q. 본인의 여행을 스펙으로 보는 시선도 있을 것 같아요.

친구들 같은 경우 저를 잘 아니까 그렇게 보진 않는데 간혹 이런 말을 하곤 해요. ‘ 그거 다녀오면 자기소개서에 할 말 많이 생기겠다.’ 라고요. 그럴 때마다 좀 씁쓸했죠. 그 친구 탓이라기보단 그렇게 만든 사회가 문제인 것 같아요. 중학교에선 고등학교 가려고 공부하고, 고등학교에선 대학교 가려고 공부하고, 한 번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가질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Q. 많이 흔들리셨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흔들리신 거예요?

여행을 준비할 때 친구들은 한창 취업준비에 몰두했거든요. 저도 생각이 많아졌어요. 분명 아직 취업하고 싶지는 않고, '금까지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그것을 왜 했을까'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회의가 찾아왔죠. 그래서 거의 한 달을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라고 생각하니 하나의 답이 나왔어요. 삶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었고, 무엇을 할 때 좋고 잘하는지를 찾는 과정이었어요. 그렇게 고민을 하고 나니 제 꿈도 명확해졌죠. '고민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제 여행은 결코 스펙이 될 수가 없었던 거죠.

Q. 그럼 본인에게 이번 세계여행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일단 위에서 말한 제 꿈에 대해 생각할 마지막 기회에요. 사실 여행을 안 하고 바로 제 꿈을 위한 궤적을 만들어가도 되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준 셈이니까요. 또 제가 원래 되게 은근히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여행은 일부러 덜 계획적으로 짰어요. 그래서 그런 점들을 한번 깨보고 싶은 것도 있죠. 저에 대한 도전인 셈이에요. 여행은 변수가 많으니까 그 변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배워보고 싶어요. 하지만 좀 더 중요한 이유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전혀 다른 장소들을 가보는 것 그 자체에요. 제 여행 테마인 '1+1'처럼 전혀 다른 시선을 경험하며 삶의 폭을 넓히고 싶어요.

Q. 본인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지금을 즐겨라’ 도 아니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 하는 것’ 도 아니에요. 그저 지금을 살아가면서 이 순간의 의미를 항상 인지하는 것, 삶을 살아가면서 채우는 것, 그것이 저는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 인터뷰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오정근 씨는 자신이 꿈꾸던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그는 많은 생각을 하기보단, 많은 것을 느끼고 있으며, 많은 것을 남기기보단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 느낌과 경험이 오정근 씨의 행복을 하나하나 채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