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10개월 전,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판자촌이라는 '구룡마을'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판자촌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싶다."는 호기심이었지만, 그 호기심이 발전하여 기사로 옮겨졌다.

당시에는 공영개발이든 민영개발든 조속히 결정하고, 최대한 원주민들의 주거권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었는데, 다행히도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원주민들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영개발이 서울도시계획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

하지만 공영개발 결정 이후 2년이 지난 2014년 3월, 한창 공영개발이 진행되고 있어야할 구룡마을에는 <구룡마을 주민은 권력에 눈 먼 구청장에 분노한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구청장의 목적은...>등의 공격적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도대체 2년 사이 구룡마을에는 어떤 일이 있던 것일까?

구청을 비판하는 현수막@고함20


-수용방식이란?
수용방식이란 뉴타운, 아파트재개발 등과 같이 대규모 재개발사업이 있을 시에 개발의 주체(예:SH공사)가 그 지역의 소유권을 모두 수용(구매)하여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수용 단계에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게 되지만, 재개발이 끝난 후의 개발이익이 개발주체에게 모두 귀속되는 장점이 있다.
 
-환지방식이란?
환지방식이란 수용방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재개발지역의 소유권을 원주민에게 귀속된 상태에서 재개발을 진행한 후 다시 돌려주는 개념이다. 이렇게되면 수용방식이라면 들어가야했던 토지매입비용이 zero가 되기 때문에 초기자금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원주민들에게 과도한 이익이 돌아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서울시 : 주민들의 원활한 정착을 위한 방법 vs 강남구청 : 민간투기세력에게 돈을 쥐어주는 꼴
 

2년 전의 구룡마을은 민영개발을 하고자 하는 주민들과 공영개발을 추진하는 서울시의 싸움이었다. 결국, 서울시는 SH공사의 주도 아래 공영개발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주민들에게 개발과정에서 그리고 개발 후에 주민들의 커뮤니티를 유지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공동체사업과 맥락을 같이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영개발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결국 서울시는 전부수용방식이 아닌 일부수용(일부환지)방식으로 구룡마을의 재개발을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문제는 그 이후다. SH공사가 일부수용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기위해서는 강남구청의 환지승인이 필요했는데, 여기서 강남구청이 여러가지 이유로 반대를 하고 나섰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로는, 구룡마을의 재개발에 있어서 환지방식으로 진행하게되면 원주민들이 과도한 이익을 취하게되고 결국 이는 민간투기세력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두번째로는, 일부수용방식으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구룡마을의 최대주주와 서울시 사이에 비리가 존재하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로 서대문구에서는 정식으로 감사원에 구룡마을 재개발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였고, 3월에 그 감사가 끝난 상태이다. 문제는 감사결과가 5~6월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8월에 재개발계획이 통과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10년 가까이 끌어온 구룡마을재개발의 전면백지화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고함20


정당한 비판 혹은 정치적 다툼


현재 구룡마을에 대한 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주목받고 있다. 이는 아무래도 올해 6월에 있을 지방선거과 맞물린다. 특히 서울시장 자리를 다시 되찾고자 하는 새누리당과 재선을 노리고 있는 박원순시장의 기싸움과 관련이 있다. 때문에 강남구청의 서울시의 일부환지방식 결정에 대한 비판에는 정치적 공작이 아니냐는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서울시와 구룡마을 주민들은 강남구청의 정치적 공작을 주장하고 있고 반대로 서대문구측에서는 정당한 비판이라 주장하고 있다.

수용방식과 환지방식은 서울의 재개발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논쟁거리였다. 보통 낙후된 곳이지만 입지는 좋은 곳에서 재개발이 이루어지는데, 그 곳의 거주민들에게 환지냐 수용이냐하는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환지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있어야하고 일정수준의 건축비를 부담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자신의 땅이 아니거나 잉여경제력이 없는 거주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구룡마을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다만, 현재 구룡마을주민들은 1만평의 땅을 구매해 10평씩 나눠가지고 있는 상황이며 건축비는 땅을 담보로 갚아나간다는 계획이다. 1만평의 땅은 구룡마을의 원래 주인인 대토지주가 신탁을 해준 상황이다.

서대문구청 측은 '대토지주'와 구룡마을주민들을 다 같이 묶어 '민간투기세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투기와 투자는 백짓장 한장 차이기 때문에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대토지주'입장에서는 구룡마을재개발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20년동안 행사하지 못한 소유권을 행사하려하고 있는 것이고, '구룡마을주민'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통해 내가 20년동안 살아온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싶은 것이다. 두 주체는 분명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노력이 '투기'라고 불려야하는 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고함20

 

주민들은 그저 "우리가 살아온 이 곳에서 계속 살게 해 달라."라고 말한다. 수용방식으로 개발이 진행되어서 토지소유주들이 명당 5,000만원씩 받고 토지가 나라에 수용된 후 번듯한 집이 지어진 상황을 가정해보자. 5,0000만원씩 받은 토지소유주(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살던 강남은 물론 서울에서는 전세조차 얻지 못한다. 임대아파트의 경우 초기에는 어느 정도 혜택을 받아서 살기 시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자촌에서 겨우 겨우 먹고 살았던 이들 중 몇명이나 임대아파트에 계속 살 형편이 될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환지방식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다. 즉, '개발이익의 향유'보다는 '주거권 확보'가 먼저라는 말이다. 그런데 강남구청과 서울시는 정작 중요한 주거권 확보에는 주목하지 않고 과도한 개발이익의 향유가 아니냐는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룡마을의 재개발이 유독 부침을 겪고 있는 것은, 구룡마을이 위치한 지리적 위치와 관계가 깊다. 강남에 위치하여 학군이 좋고 뒤에는 산까지 자리한 최상의 위치이기 때문에 재개발만 하게되면 그 자체가 돈이 된다. 이러한 경제논리에 묻혀서 원주민의 주거권은 뒤로하고, 여기서 생겨나는 이익을 누가 취하느냐에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땅의 가치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