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적 살처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1월 전북 고창에서 AI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1,100만여 마리에 육박하는 닭과 오리가 죽었다. 동물판 홀로코스트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가금류지만 2010년에는 우제류였다. 구제역 사태로 인해 돼지와 소를 비롯해 348만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그 방식 역시 일일이 약을 주사하거나 가스로 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9할이 생매장이었다.

이 모든 것이 예방 차원에서였다. 감염되지 않은 동물이 경제적 관점에 의거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발병지 반경 3킬로미터 내에 있는 가축이라면 예외는 없었다. 지난 10년 2,500만여 마리의 닭과 오리가 죽어나갔지만, 그 중 실제로 AI에 감염됐던 숫자는 0.0004%인 121마리였다. 99.9996%의 동물의 목숨을 예방적 차원에서 거둔 것이다.

안방 텔레비전을 통해 쏟아진 살처분 영상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말 못하는 짐승이 죽어나가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살처분 방식의 무자비한 폭력성, 더 나아가 가축 전염병이 창궐하기 쉬운 공장식 밀집사육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배터리 케이지에 가둬 놓고 기계처럼 다룰 것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에서 사육해야 한다는 동물복지 차원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꽃등심을 예찬하고 치킨에 열광한다. 동물권 보호에 동의하는 사람들 역시 육식 산업의 효율성과 동물권 사이의 균형을 맞춰나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해왔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이 모든 문제는 식성과는 별개의 문제로 치부됐다. 그러나 두 문제는 결코 별개일 수 없다.


왜곡된 육식문화 속 보이지 않는 손
 
오늘날 한국의 육식문화는 비정상적이다. 골목마다 돼지갈비 집이 들어서 있고 치킨 집은 한 집 걸러 한 집이다. 1970년만 하더라도 5.2kg였던 1인당 고기 소비량이 2012년에는 43.7kg로 8.4배 뛰었다. 반면 육식문화의 대안격인 채식문화는 빈약하기만 하다. 육식문화 대 채식문화의 구도로 어느 한쪽의 우월성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구도가 압도적인 것 자체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의 육식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수요는 곧 공급을 낳는다. 비대화된 육식 문화는 필연적으로 공장식 밀집사육 시스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와 돼지, 닭과 오리는 배터리 케이지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가축의 비정상적인 생활환경 문제에 있어 사람들이 자신 몫만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육식문화의 거대한 왜곡 위에 서서 소와 돼지, 닭과 오리를 착취해왔다.


“동물들에게 모든 사람은 나치다” PETA ‘당신 그릇 위의 홀로코스트’ 포스터



단순하게 ‘공장식 밀집사육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소비하는 만큼의 소와 돼지, 닭과 오리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갖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소를 방목하고 닭에게 쾌적한 사육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초지를 갈아엎어도 부족하다.

동물권을 논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공급은 한정적이다. 결국 칼을 대야 하는 부분은 수요에 있다. 인간이 육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일말의 부득이함에 동의한다. 그러나 부득이는 말 그대로 ‘마지못해 하는 수 없다’는 뜻일 뿐 그 자체로 당연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존재 자체가 가지는 기형성에 대한 자각이 중요한 이유다.

지금과 같이 고기를 소비하면서 동물권을 동시에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몫의 수요를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육식문화를 개선해 왜곡된 축산 시스템을 바로 잡아야만 지속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소비를 위한 한 걸음
 
1) 채식주의
육식 일변도의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참여는 채식임을 부정할 수 없다. 채식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통상 채식의 종류는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해산물, 달걀, 유제품 순으로 ‘어디까지 먹지 않을 것인가’로 정해지며,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도 있다. 

-플렉시테리안 : 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한다.
-폴로/세미 : 붉은 살코기(돼지고기, 소고기)를 먹지 않지만 조류(닭, 오리), 어류는 먹는다.
-페스코 : 붉은 살코기(돼지고기, 소고기), 조류는 먹지 않지만 어류, 유제품(달걀, 우유)은 먹는다.
-락토 오보 : 육류, 생선 및 해물류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달걀, 우유)은 먹는다.
-락토 : 육류, 생선 및 해물류, 달걀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우유)은 먹는다.
-오보 : 육류, 생선 및 해물류, 유제품은 먹지 않지만 달걀은 먹는다.
-비건 : 모든 종류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다.

이밖에도 윤리적 소비조합에서 공급하는 고기만을 먹거나, 일주일 중 하루 혹은 하루 중 몇 시까지 채식하는 방식도 있다. 채식문화가 빈약해 나홀로 채식을 선언하기 힘든 일반 사람들에게 좋은 첫 출발이 될 수 있다.

2) 통소비
한편 SBS 스페셜 고기 2부작은 육식문화 속 책임 있는 대안소비를 제시한다. 이른바 통소비다. 통소비는 두 가지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첫 번째, 특정부위만을 선호하는 고기 소비가 불필요한 도축을 낳았다. 두 번째, 사람들이 일말의 죄책감이나 문제의식 없이 마트에서 고기 팩을 집어 들게 됐다.

통소비는 직접 가축을 잡아 남김없이 모두 소비하는 것이다. 농장에 송아지를 위탁해 전문가가 사육하도록 계약한다. 이후 원하는 시기가 되면 도축하여 한 마리 분의 고기를 얻는다. 이 과정은 마트에서 고기 팩을 집어 드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고 불편하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문제는 거쳐야 했던 것을 생략하면서부터 비롯됐다. 통소비는 쓸데없는 고기 소비를 막고, 이 고기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거쳐야 할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에서 가축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육식 소비에 적절한 수준의 제동을 건다.


※ 참고 문헌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최훈, 사월의 책, 2012
<사육과 육식>, 리처드 W. 볼리엣, (주)알마, 2008
<북학의>, 박제가, 돌베개,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