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작전 지휘 및 국민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아직까지 갈피를 못 잡고, 대중은 이곳저곳에서 쏟아지는 정보에 우왕좌왕한다. 오보, 루머, 음모론이 활개치고 가장 정확해야할 정부의 발표조차 오락가락한다. 갈 곳 잃은 여론의 분노가 언론을 향했다. 언론이 욕을 대신 얻어먹는 기능이 있는 것이냐는 비웃음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기자들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는 상황과 잇따른 오보사태, 재난상황에서 언론이 취해야 할 자세 등에 대해서 고함 기자들이 의견을 나눴다. 4월 19일 고함 사무실에서 열린 대담회에는 인페르노, 이빨, 밤비, 블루프린트, 아레오 기자가 참석했다.

 

 

언론이 아니라 찌라시라고 불러라

 

이빨 : 가장 기억에 남는 언론의 추태 하나씩만 말해보자.

아레오 : 학교에 찾아가 사망한 학생의 공책을 찍어 내용을 공개했던 기사. 너무했다. 

인페르노 : 전형적인 감성팔이 기사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건을 띄우기 위해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방법이 쓰였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사람들이 벌써 충분히 슬퍼하고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밤비 : 구출된 학생을 울렸던 JTBC의 인터뷰. 친구가 사망했는지 아냐고 물어서 많은 사람을 경악시켰다. 굳이 구출된 지 얼마 안 된 학생을 그렇게 인터뷰 할 필요가 있었을까. 최소한 녹화인터뷰로 진행했다면 앵커도 그렇게 허겁지겁 질문하지 않았을 테고 그 학생도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빨 : 난 홍가혜씨 인터뷰? MBN이 거하게 낚였다. 규모가 작지도 않은 언론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당했을까.

인페르노 : 이투데이의 두 기사. <타이타닉·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세월호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재난영화 소개 기사였고, <[진도 여객선 침몰] SKT, 긴급 구호품 제공·임시 기지국 증설 “잘생겼다~잘 생겼다”>라는 기사의 “잘생겼다~ 잘생겼다~”하는 부분도 정도가 지나쳤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공책을 공개한 기사나 JTBC의 인터뷰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실수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투데이의 두 기사는 다분히 트래픽을 올리려는 의도라고 봐야 한다. 기자와 데스크, 회사 전부가 이 기사를 용납했다는 건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다. 언론이 아니라 찌라시가 되고 싶은 건가.

 

기자 = 기레기?

 

이빨 : 언론의 연속적인 실책과 오보로 ‘기자=기레기’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분위기다. 원인이 뭘까

아레오 : 모든 방송사나 신문사가 계속 세월호 관련 내용만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주어진 시간을 채워야 하지만 정부에서 발표하는 내용은 한정적이다. 계속 새로운 뉴스를 보도해야하는데 정보는 없으니까 자극적인 보도를 하도록 내몰려진 모습이다.

밤비 : 기자가 내몰린 상황이란 점에는 공감하지만, 그래도 자극적인 내용만 찾는 건 분명 문제다. 그런 기사가 아니어도 뉴스거리는 충분히 있다. JTBC나 뉴스타파는 다른 언론과 차별화된 보도로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나.

이빨 : 이럴 때 언론은‘여기로 화내세요' 라며 여론의 방향을 안내해야 한다. 그 역할을 못하니까 거꾸로 욕을 먹고 있다.

인페르노 : 언론이 그동안 이런 재난상황을 겪지 못했다는 게 문제의 원인이다. 이런 사고를 겪고 어떻게 취재하고 관련 보도를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평소처럼 속보경쟁을 하니까 실수가 계속 나온다. 평소 같으면 홍가혜같은 사람에게 언론이 절대 안 낚인다. 현장에서 정확한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 속보를 내야 하니까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블루프린트 : 장사가 안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기사가 안 팔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위의 기사가 나오게 된 원인이라고 본다.

이빨 : 지나친 속보경쟁으로 인한 언론의 헛발질의 배경에는 국내 언론의 구조적 문제도 있다. 트래픽 양으로 광고를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검색어 기반의 환경에서 위의 사례들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 않을까.

인페르노 : 검색어와 트래픽을 목적으로 하는 언론사는 언론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 낚시성 기사를 꾸준히 생산하는 언론은 어떻게든 규제를 해야 한다.

이빨 : 어뷰징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일부 매체가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단 이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지 않을까

블루프린트 : 포털에서 뉴스를 제공하는 현 시스템을 재고해야 한다. 모든 언론사가 이 체제에 종속되는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힘들다.

인페르노 : 현실이 이정도로 악화되었으니 결국 포털의 역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관련 규제도 필요하고.

 

기자에게 잠수를 하라니

 

이빨 : 언론을 비난하는 이들은 기자에게 더 신중한 보도와 정확한 사실확인을 요구한다.

인페르노 : 구조요원의 선체진입여부를 두고 오보가 잇따르면서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기자가 잠수부인가. 해경에서 그렇게 발표하면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정부 공식 발표를 하나하나 사실 확인을 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잘못된 정보를 알린 정부가 문제의 원인인데, 엉뚱하게 언론이 욕을 먹고 있다.


아레오 : 네티즌이 언론에게 그런 걸 요구하면서 SNS에서는 부정확한 정보를 ‘좋아요’찍으면서 유포하는 상황도 아이러니다.

블루프린트 : 사람들이 중앙대책본부에서 내보내는 자료를 기자가 취재한 자료라고 오해하고 있다. 구조 현장에 직접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발표를 하는 건데,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기자라고 착각한다. 기자들이 피해인원를 세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정부에 비판이 가해져야 하는데, 대신 언론이 과도한 욕을 먹고있다.

 

언론을 향한 비판엔 디테일이 부족하다

 

이빨 : 언론에 대한 비난이 전례 없이 심각한 상태다. 언론에 대한 혐오로 언론을 부정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블루프린트 : 주위 친구들만 봐도 기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 몇 가지 사례만으로 기자는 비정한 사람,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으로 매도당한다.

인페르노 : 기자들 충분히 고생하고 있다. 카메라잡고 배를 타는 등 현장에서 고생하는 기자들이 욕을 먹는 상황이 안타깝다. 누가 생지옥 같은 사건현장에 가서 당사자에게 말을 걸고 싶겠나. 경찰서 관계자한테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물속에 갇혀있는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를 취재해야 하는 일은 기자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다. 분명 필요한 역할을 한 건데 이런 측면은 다 무시당하고 욕만 얻어먹으니까 기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아레오 : 언론을 향한 비판에 디테일이 부족하다. 설득력 있는 비판을 해야 언론 쪽에서도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텐데……. 감정적인 비난만 가득하다.

블루프린트 : 데스크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을 취재하고 어떻게 보도할 건지 신중하게 계획해야 한다. 현장 기자들은 직접 구조현장에서 취재하고 보도하기 힘든 상황인데 데스크에서 새로운 정보를 계속 요구하니까 얼마나 괴로울까. 현장에서 이런저런 보고가 올라오면 이를 조율해야하는 서울에서 할 일이 더 많아야 하는데, 지금은 무조건 현장기자들에게 다 맡겨놓은 듯 한 모습이다. 욕도 현장기자만 먹고 있지 않나. 사람들이 이런 구조적인 문제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

인페르노 : 최근 SNS에서 얻는 정보와 언론에서 얻는 정보의 양이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는 점도 언론에 대한 회의에 일조했다. 언론은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하고 이에 따라 언론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데, 이 과정이 무너졌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언론을 SNS가 대신하는 건 불가능하다. 언론에 대한 신뢰를 조속히 회복해야 한다.

 

언론은 SNS가 아니다

 

이빨 : 언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인페르노 : 정규방송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재난방송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새로운 뉴스가 안 나오는데 방송은 해야 하니까 했던 이야기가 반복되고 무리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인페르노 : 지금 중요한 건 속보보다 사건의 파편을 모아 전체적인 얼개를 짜는 일이다. 뭐가 문제였는지 제대로 정리해서 보도해주는 언론을 찾기 힘들다.

아레오 : 보도에 대한 최소한의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렇게 욕을 먹은 것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모든 게 바뀌진 않는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빨 : 통합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게 가능한 얘기인지 모르겠다. 이미 기자윤리강령이나 취재준칙이 존재하는 데 안 지켜진 것 아닌가. 더 자세하게 정해야 한다면, 모든 기자가 공감하고 따를만한 규칙을 누가 정하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블루프린트 : 재난상황에 대한 대응매뉴얼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이 부분을 더 보강해서 보다 합리적인 취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건 당사자를 더 배려하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인 보도를 자제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인페르노 :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언론 측에서 중앙프레스센터나 공동취재단을 만들어서 취재와 보도에 관해 합의하는 방안도 있다.

 

슬픔은 이미 충분하다

 

이빨 : 앞으로 언론에 기대하는 모습은?

밤비 : 요 며칠 악몽을 꾸고 있다. 세월호 관련 내용의 지속적 보도로 슬픔이 재생산되고 있다. 굳이 사망자 수나 비극적 스토리, 장면을 계속해서 보도할 필요가 있나.

인페르노 : 언론은 건조하고 냉정해야 한다. 지나치게 감정을 자극하는 사진이나 기사를 내보내면 국민 전체가 트라우마에 걸린다. 언론의 역할은 장사가 아니라 그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일이다. 피해자가 얼마나 효자였는지, 착한 학생이었는지 강조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미 모두가 충분히 슬퍼하고 있다. 지금은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구조는 어떻게 해야 하며 피해자들에겐 무슨 도움이 필요한 지에 대한 보도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정부를 압박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