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고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 악플을 기대한다.


친구에게 생리대 있느냐고 큰 소리로 물어봤다가 등짝을 맞은 경험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 역시 '성'에 관한 통념을 그대로 주입받았기 때문에 ‘생리대’라는 단어는 부끄러움 내지 숨기고 싶은 무언가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친구의 질타에 금방 수긍하곤 했던 것을 떠올려보니 말이다.

‘생리’와 관련된 대화가 금기시된 사회 분위기는 비단 이러한 경험에 국한되진 않는다. 생리대를 사러 편의점에 갔을 때 점원의 ‘검은 봉지에 담아드릴까요?’라는 물음도 생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가늠하게 한다. 또 요즘엔 카페나 술집 화장실 문에 적혀있는 ‘여성 생리대가 필요하신 분은 카운터로 와서 조용히 말해주세요’라는 문구도 그렇다. 왜 생리대는, 아니 생리는 ‘조용히’ 언급해야 하는 걸까? 큰 소리로 말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2006년 제8회 '월경페스티벌' ⓒ여성신문

이러한 인식은 여성과 ‘성’을 관련짓는 것이 금기시 되어온 사회 분위기에서 파생된 것이기도 하다. 남성에게는 당연시되는 것들이 여성에게는 멀리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곤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성들이 여성의 생리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남성들의 문제라기보단 그동안의 ‘생략된’ 성교육 내지는 사회 분위기에서 발현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던 셈이다.


특히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이뤄지는 성교육은 중고등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성교육에서는 여성의 생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남성들에게 생리는 미지의 세계였다. 잘 알지 못하니 주변 여자 친구들이 생리를 한다고 하면 ‘하루만 하는 거 아니냐’는 물음도 쉽게 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부터 축제 형태로 진행된 ‘월경 페스티벌’은 여성 스스로 생리에 대해 떳떳하고 올바른 인식을 가지자는 취지로 열려왔다. 매년 진행된 행사에서는 생리에 대해 기존보다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남성우월주의 사회 안에서 여성의 열등성·지저분하고 감추어야 하는 것으로 왜곡·폄훼되어온 생리와 관련된 의견’들과 ‘생리대의 발전이 월경 경험을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지’, 또 ‘생리대 가격의 부당함’ 등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처음엔 ‘세상이 말세’라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해가 지날수록 공감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뭐 자랑스럽다고 당당하게 저러냐’는 인식도 여전하다. 특히 2006년 제8회 ‘월경 페스티벌’에서는 흰 천에 생리를 상징하는 붉은 물감을 흩뿌리고 여성들이 그 위를 뛰어다니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에 관해 일부 여성들은 ‘세련되지 못하다’며 비난했다. 결국 진지한 논의와 관심의 초점은 논란이 된 퍼포먼스로 옮겨갔고, 생리는 중요한 사회적 담론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


행사 이후 많은 이들이 거부감을 불러오는 퍼포먼스를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월경 페스티벌이 실패한 이유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선행되지 않은 탓도 크다. 생리에 관한 인식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과감한’ 퍼포먼스가 과거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주입받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 셈이다.


생리에 대한 인식은 보편적인 담론으로 끌어올려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가 중심이 된 일상에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제대로 된 ‘성교육’이 먼저 이뤄지는 것이 좋겠지만, 기다리고 앉아있기엔 사회적 통념은 '생각보다' 느리게 변화한다. 일상에서 당당하게 생리대를 빌리고 구입하는 것은 그 변화를 한 단계 끌어올릴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