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 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고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 악플을 기대한다.


지난 11일, 세월호 피해가족대책위원회가 축구 국가대표 응원 서포터즈 '붉은악마'측과 만났다. 논쟁이 되고 있는 월드컵 거리 응원 때문이다. 참사의 여파속에서 응원 분위기의 위축을 걱정해 응원단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가족들은 국가적 차원의 축제에서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사고를 잊지만 말아달라는 뜻을 전했다. 이 날 '즐기자 월드컵, 잊지말자 세월호'라는 구호도 나왔다. 응원을 목적으로 모인 이들이 자신들 때문에 볼 '눈치'에 대한 깊은 배려다.  

6월이 오기 전부터 '응원'이 금기어가 되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고 수습은 어려워지고 있고, 거리에 나온 침묵시위자들도 바쁘게 연행되었다. 유가족과 국민들은 제대로 된 진상조사 결과도 받아보지 못하는 상태다. 전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은 한국에서는 외려 부담이었다. 매번 열리던 거리응원도 열려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았다.

참사가 벌어진 충격을 그대로 흡수한 땅에서는 무엇이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초상집에서 풍악이 말이 되느냐'는 잣대로 뷰티풀 민트 페스티벌을 비롯한 여러 축제들이 취소되었다. 추모와 응원의 의도가 양극단에 놓여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촌극이다. 지금이 응원가를 외칠때냐는 훈계가 잠시 따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월드컵 거리응원 '자중'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브라질과 한국의 괴리는 시차 그 이상인 듯 하다.


ⓒ 연합뉴스




다행히 원래 계획되어 있던 행사의 연이은 취소는 '추모를 강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극히 사적 영역인 추모를 '공식 행사'로 흡수하려한 지자체와 집단의 실수였다. 감정의 표출을 전시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한 시절에는 오로지 하나의 의식과 정신만이 흘러야 한다는 웃지못할 단순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인간의 다양한 표정은 어색한 공존일 수 밖에 없다.

거리응원의 자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SNS 등 여론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축제 분위기'에 대한 질타는 또다른 혐오다. 감정의 강요가 이뤄지는 동안 정부차원의 제대로 된 사고 대처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부처의 책임소재가 분명해진 것도 아니다. 추모를 하라면서 침묵시위를 가로막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바라는 것이 조용한 상황 그 자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쯤되면 추모는 자연스러운 발생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참사의 강렬한 기억은 유가족을 비롯한 곳곳에 '파괴'를 감염시켰다. 급여와 안전·식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밤낮없이 일하는 잠수사들, 승객으로도 선원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아르바이트생들, 청소년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의 배려나 치료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아직도 참사를 경험중이다. 만들어진 침묵을 학습하는 것이 이들을 둔 사회가 할 일은 아니다. '자중하라'는 지적이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애꿎은 응원을 기죽이는 대신 추모의 원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