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상에서 유명했던 훈남 수학 교사가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 출연했다.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과거에 온라인상에 게시했던 댓글들의 내용이 세간의 도마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등의 내용으로 인해 그가 ‘일베’ 회원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고, 곧 해당 교사는 사과문을 올렸다. 한 고교생의 생활기록부에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일간베스트 정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사회 진출 시 사회집단 혹은 조직에 악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은 학생’이라고 적혀 있는 사진도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인덕대 일본어과의 한 여대생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들도 온라인상에서 커다란 비난을 받았다. 유관순, 위안부, 독립유공자, 세월호 사건 등을 희화화하고 비난하는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그녀에게 ‘인덕대녀’라는 호칭을 붙였고, 결국 ‘인덕대녀’는 (정말 자퇴한 것이냐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스스로 학교를 자퇴하여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이 모든 사건이 2014년 7월에 일어난 일이다.

누군가가 일베 회원인 것이 밝혀지거나, 혹은 ‘일베스러운’ 언사를 한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범죄자 취급하고 사회에서 배제시키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베 논란에 휩싸인 주인공들은 <1박 2일>에 출연한 교사처럼 스스로 사과문을 올리거나 심지어 고교생 일베남, 인덕대녀처럼 사회에서 실질적인 처벌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결과는 마치 인과응보의 정의가 실현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일베의 무논리와 비도덕을 비난하는 행동으로 인해 ‘일베 없는 아름다운 사회’가 조금씩 만들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얼핏 일베를 사회의 비정상으로 몰아내는 프로젝트가 성공한 듯 보이기도 한다. 모두에게 사회악인 일베, 주변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그런 사람은 없고,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배제하면 그만이다.

이러한 느낌은 완벽한 착각이다. 일베는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배제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비난하고 배제하는 행동은 당장 그들을 눈에서 안 보이게 할 뿐, 그러한 생각까지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베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눈에 보기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베회원 혹은 일베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많다. 일베의 문화를 소비하거나 혹은 일베적인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상상 이상으로 불어난다. 일베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수없이 많다.


랭키닷컴의 7월 29일자 순위를 보면 일베저장소는 국내 전체 사이트 중 방문자수 106위를 달리고 있으며, 이는 엔터테인먼트-유머/재미 분야 1위로 ‘오유(오늘의 유머)’나 ‘풀빵(풀빵닷컴)’를 한참 앞선 기록이다. 지난 7월 22일 일베 내에서는 KBS 보도국 기자, 고려대 교원, 공무원,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일베 회원이라는 인증글을 올렸다. 자신이 일베 회원이라고 밝힌 가수 브로(Bro)는 여성 혐오적인 시선이 담긴 노래 ‘그런 남자’를 발표해 멜론 주간 음원순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만약 일베라는 어떤 세력이 무언가 약해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니라 ‘침묵의 나선이론’을 떠올려 보아야 할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할 때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지배적인 여론과 자신의 생각이 다를 경우 침묵한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다. 보수적인 20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거 때만 되면 30%의 20대는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것, 운동권은 모두가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총학생회 선거 때 운동권 총학이 30% 표는 얻고 가는 것 등의 현상은 침묵의 나선의 확연한 사례다.

일베와 같은 현상만 보면 불 같이 달려들어 그것을 비난하고 딱지를 붙이고 배제하려고 하는 식의 대처는 일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한 마녀사냥식의 대처가 정치적으로 옳냐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일단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베 딱지 붙이기식의 문화와 거기에 따른 각종 논란들은 우리 사회에 아직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정말 위험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일베는 나쁘기 때문에 마녀사냥은 정당하다’는 입장에 선 수많은 사람들은 극우적인 논리를 가진 사람들(혹은 그 자신들이 비판하는 일베 이용자들)과 어떤 면에서는 같은 입장에 있다. 대부분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사형제 찬성)나 온라인에서의 실명제 도입 등을 찬성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국가보안법을 찬성하는 극우파(일베)와 ‘반(反)일베’파는 분명 정치적 입장에서는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논리를 검열하고 특정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지점에서는 만난다.

“자신만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좌파들의 도덕적 폭력은 극우 반공주의의 매카시즘적 폭력과 결을 같이 한다.” - <우리 안의 파시즘>, 10쪽

집단의 논리에 의해 개인이 희생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주의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쟁취하려고 했던 어떤 목표가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가 그렇고, 사형제 폐지를 포함한 법치주의적인 관점이 그렇다. 그런데 일베 마녀사냥을 옹호하는 관점들은 일베를 범죄자 취급하고 배제하기 위해서, 그런 중요한 가치들을 스스로 잊어버리고 잃어버린다.

몇몇은 단순히 자신에게 불리할 때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일베 얘기를 할 때만 그래도 일베는 안 된다고 하는 식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많다. 그냥 표현의 자유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없어도, 법치주의적인 관점이 없어도 떳떳한 사람, 집단의 광기 앞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정상적인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 사회에서라도 ‘정상적인 사람’, 즉 자신과 같은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착각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결국 사상과 표현의 자유, 법치주의를 포기한 사회는 전체주의적 독재와 맞닿아 있으며 그런 사회에서는 그 어떤 개인도 자유롭지 못하다. 일베 마녀사냥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그로를 제대로 끌기 위해서 ‘인덕대녀’의 반박문을 인용한다.



“다들 그만 좀 하시죠? 제가 사과하지 않았잖습니까? 일본이 좋다고 하는 게 잘못인가요? 일본 애니메이션이 좋다고 한 게 잘못인가요? 위안부 창녀라고 한 게 잘못인가요? 독립유공자 개새끼들이라고 한 게 잘못인가요? 6.25 참전용사 쓰레기라고 말한 게 잘못인가요?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북한처럼 독재국가가 아니잖아요.”

인덕대녀의 비뚤어진 역사관을 이해하거나 옹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분명히 인덕대녀의 역사 인식이나 행동, 표현 방식은 비판받아야 하고 그런 일베적인 역사관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그것이 배제의 방식으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나는 인덕대녀와 같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탄압하고 청소해버려 겉으로만 평온해보이는 그런 사회보다는, 인덕대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공존한다는 것 자체를 일단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라고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