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어떤 기준에 들어맞기 위해 몸과 마음을 사린다. 사회나 조직의 '다수'에 속하기 위해서는 표현 방식, 때로는 표현여부 마저 뜻대로 선택할 수 없다. 나 역시 집단에서 배척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타인에게까지 그 화살을 돌리게 만든다. 


고함20은 창간 5주년을 맞이해 한국사회의 검열을 주제로 4부작 기획기사를 펴낸다. 1부에서는 뿌리깊은 '빨갱이 콤플렉스'의 영향력 앞에 함구하는 분위기를 다룬다. 2부는 '처녀성'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겪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좌담 형식으로 담는다. 소위 '모태솔로'인 남성들은 연애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조롱당하고 바보취급을 받는다. 3부에서는 이들의 '무죄'를 변호한다. 마지막으로 락과 힙합씬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얼빠'검열과 구분짓기 현상을 분석한다.


기사의 사례들은 우리의 거울 속 모습이기도 하다. 오로지 타인만을, 혹은 오로지 스스로만을 검열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네 개의 주제로 압축했을 뿐, 시대는 늘 새로운 검열을 낳을 것이다. 이 기획을 관통하는 또 다른 줄기는 의사소통의 부재이기도 하다. 검열의 해소는 그래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검열의 중심에 '편견'이 있고, 그 뒤에 편견을 쌓아올린 인간이 있다. 이것이 고함20이 포착한 한국 사회 속 검열의 풍경이었다.



‘얼빠’란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 빠순이’의 준말로, 외모와 같이 음악 외적인 부분을 보고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여성팬을 가리킨다. 아이돌 팬 문화에서 ‘얼빠’는 모욕적인 단어가 아니지만, 장르음악 씬의 경우는 다르다. 음악성을 강조하는 씬 내 문화상, 음악 외적인 요소만으로 뮤지션을 좋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태도로 여겨진다. “내가 좋아했던 밴드 ‘로맨틱펀치’ 팬 중엔 얼빠가 많아서 다른 밴드 팬들에게 욕을 먹곤 했었다.” 음악 팬인 대학생 ㄱ 씨(여, 22)는 인디락 씬 내에 존재하는 얼빠혐오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로맨틱펀치 외에 인디씬 전체적으로 어린 여성팬이 늘어나는 추세다. 소녀팬들은 씬에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힙합에서도 얼빠혐오 현상 있는 건 마찬가지다. 힙합씬에서 얼빠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실력도 없는 랩퍼를 얼굴만 보고 찬양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힙합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김승범(남, 22)는 “랩퍼가 잘 생겼다는 이유로 그 랩퍼를 무조건 찬양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생겼다고 실력까지 잘생긴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랩퍼들도 가사에서 이와 같은 인식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팔로알토의 <Cool kids> “쟤도 랩퍼, 얘도 랩퍼, 죄다 랩퍼/ * 같은 트윗 이제 쓰지말고 제발 랩해/ 오빠 오빠 거리는 애들이 뭘 알겠어”, 허클베리 피(하이라잇 레코즈)의 <정신차려> “너의 존재는 이곳에 아무런 도움도 못 돼/ 소녀팬들의 맨션이 너에겐 유일한 동기부여”, MC 메타의 <직언> “너 1년만 더 하고 정말 랩을 끊을래?/ 너 그러기엔 일러/ 허튼소리만 질러/ 니가 만든 이미지 그저 아이돌빠 킬러.” 얼빠와 동의어라 볼 수 있는 ‘오빠 거리는 애들’, ‘소녀팬’, ‘아이돌빠’는 뮤지션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거나 그에 대한 관심이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랩 게임에서 얼빠의 증가는 오히려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일 뿐이다. 




여성팬=얼빠? ‘최태현의 발놀림만 바라보고 있는 호구 2-30대 여성들’


얼빠혐오의 문제는 ‘얼빠’가 단순히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 팬을 가리키지 않는 데에 있다. 밴드 ‘밤섬해적단’의 권용만 씨는 <2013년 51+ 페스티벌>의 출연 밴드 ‘쾅프로그램’을 이렇게 소개했다. “쾅프로그램을 이야기할 때 모두가 기타/보컬인 최태현을 이야기한다. 애초에 이 밴드의 시작은 최태현의 솔로프로젝트로 시작했고, 대부분의 인디뮤지션에게 지갑을 아낌없이 열고 있는 호구층인 2-30대 여성들은 최태현의 발놀림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일부 인디락 팬들은 ’2-30대 여성’을 ‘호구’라고 지칭하고 그들을 발놀림’만’ 바라본다고 소개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해당 표현이 문제가 되자 권용만 씨는 쾅프로그램의 주요 팬층이 2-30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칭했을 뿐이며, 발놀림만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농담’에 불과했다고 해명했다. 그가 농담에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농담이 인디락 씬 내에 존재하는 여성팬에 대한 편견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디 음악 팬 김지은 씨(여, 24)는 여성팬의 대부분을 얼빠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음을 전했다. “얼빠들이 뮤지션에게 애칭 붙이거나 오빠라고 부르는 행동은 놀림거리가 된다. 그런데 저런 행동들은 얼빠가 아니라 전반적인 여성 팬의 특징일 뿐이다. 형은 되면서 왜 오빠는 안되는가? 오빠라는 호칭에 섹슈얼한 이미지를 입힌 건 애초에 남성들이 아닌가? 일부는 여성팬이 많은 뮤지션은 실력 없는 뮤지션이라 생각하는데 그것도 틀렸다. ‘지미 핸드릭스’나 ‘건즈 앤 로지스’도 여성팬들이 많았는데 그럼 그들은 실력이 없는 뮤지션인가? 여성팬인데 얼빠가 아닐 수도 있고, 무조건 감싸주는 ‘실드팬’인데 얼빠가 아닐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경우가 많을 텐데 모든 경우를 얼빠라고 칭하고 더 크게는 여성팬이라고 칭한다.”



검열하는 여성팬들 “나는 얼빠가 아니다”


인디 음악이나 힙합 팬들이 얼빠를 씬의 불청객, 불량 리스너로 생각하는 분위기와 여성팬을 대부분 얼빠로 단정해버리는 분위기가 서로 결합되면서, 여성팬 중에는 자신이 얼빠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는 팬도 있었다. 음악팬 ㄴ 씨(여, 22)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TV를 타고 유명해지면서 여성팬들이 많이 생겼다. 물론 나도 여자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밴드 멤버들에게 낯 뜨거운 애칭을 붙이고 밴드 멤버들의 잘 생기지도 않는 외모를 칭찬하는 것을 아니꼽게 생각했다. 그런 비뚤어진 마음으로 주변인들에게 멤버들 외모를 더 폄하거나 나는 그 사람들 음악성 때문에 좋아한다는 점을 어필하곤 했었다”라고 말했다.


힙합팬 ㄷ 씨(여, 25)도 “한국 언더 랩퍼가 Curren$y의 곡을 좋다고 트윗한 적이 있다. 트윗한 곡이 내가 엄청 좋아하는 곡이라 나도 좋아한다고 멘션을 보냈다. 물론 내가 그 사람을 '오빠'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여성인 걸 인지하면 그 곡을 모르면서 괜히 친목을 위해 괜히 아는 척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라며 자신의 검열 경험을 밝혔다. 



힙합씬에서 여성팬이 많은 랩퍼에는 대표적으로 빈지노가 있다 ⓒ네이버뮤직


한 힙합커뮤니티 이용자들도 “나는 랩퍼를 좋아할 때 얼굴을 따지지 않는데, 어느 순간부터 빈지노가 인기 절정을 달리면서 괜히 이 뮤지션의 노래 듣기가 눈치 보인다”, “랩퍼들이 빠순이라고 생각할까봐 절대 공연장에서 만난 랩퍼에게 사진이나 싸인 부탁을 하지 않는다”라고 자신들이 ‘눈치’ 본 경험에 대해 적었다.



늘어난 여성팬이 뮤지션의 음악성을 망친다?


여성팬이 다수가 얼빠일 것이라는 편견은 락과 힙합의 장르적 특징에서 비롯된다. 락과 힙합은 다르지만 두 장르 모두 남자들이 들을 법한 음악으로 인식된다. 락의 과격한 가사, 강렬한 사운드나 힙합의 갱스터적인 면모들은 남성적인 것에 가깝고,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여성팬’이 씬의 불청객으로 인식되는 이면에는 그들 장르의 역사적 맥락도 존재한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의 <한국 음악의 현재, 인디냐 진보냐(문학과사회, 2012년 여름호)>에 따르면, 국내 인디 음악은 1990년 중반 펑크로 시작해서 2000년대에는 펑크에서 모던락으로 그 흐름이 이동했다. 락 씬의 주류가 펑크에서 모던락으로 옮겨가면서 팬층이 확대되었는데, 그 증거 중 하나가 공연장에 늘어난 ‘여성팬들’이었다. 이 시기는 저항정신을 무장한 “반사회적인” 음악이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면서 그저 듣기 좋은 카페배경에 불과한 음악으로 퇴보했다는 논쟁이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감성적인 느낌의 음악이 늘어나면서 음악성 논란을 겪은 건 힙합씬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5-07년 한국힙합에는 소울컴퍼니의 ‘이루펀트’로 대표되는 소위 ‘감성힙합’이 등장했다. 이는 스토리텔링과 멜로디컬한 비트가 가미된 곡을 가리키는 말로, 그간 발표되던 ‘강한’ 힙합과 차이를 보였다. 이 차이를 두고 “힙합이 맞나”라는 식의 논쟁이 있었다. 힙합팬 ㄹ 씨(여, 23)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루펀트의 경우 부드러운 힙합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중고등학생 여성팬들이 많았다. 이 곡들이 취향이 아닌 사람들은 '여성 리스너들이 괜히 이루펀트같은 노래듣고 힙합 좋아한다고 하고다닌다'고 비꼬기도 했다. 얼굴 보고 좋아하는 거면서 뭘 힙합을 아냐는 그런 시각이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대중음악연구자 키스 니거스 교수(골드스미스 대학 음악학과)는 <대중음악이론>에서 ‘팬들의 삶과 곡의 의미, 음악가의 정체성 사이에 직접적이나 필연적인 연결은 존재하지 않고, 곡이나 음악의 정체성은 사람들이 음악과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성립된다’고 말했다. 음악의 정체성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락과 힙합의 남성적인 특징 또한 원래 그 음악들에 내재한 특징이 아니라 그 씬 안에서 만들어진 특징일뿐이다. 그렇다면 여성과 락/힙합의 사운드는 여성들과 맞지 않기 때문에(혹은 여성들이 좋아하긴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 여성팬은 그 장르 아티스트를 음악이 아니라 음악 외적인 이유로 좋아할 거라는 짐작은 ‘잘못된 편견’이 아닐까. 


씬 내에서 얼빠를 비난하는 태도 또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락과 힙합은 기존의 주류문화에 대한 반발심에서 태어난 장르다. 반면 얼빠는 ‘얼굴’이라는 미디어에서 엔터테이먼트적 요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점에서 얼빠와 두 장르음악이 충돌할 수 있으나 얼빠는 락스타나 랩스타를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난의 지점은 그들을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야 한다. 트위터리안 ㄹ씨는 “문화에 돈 쓰지 않으면서 왜 공연장을 채우는 여성들을 욕하는지. 웃합기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락 팬인 대학생 한만길(남, 25) 씨도 “얼빠를 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예전부터 음악만 보고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존재가치를 높이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고지식하다고 생각한다. 팬들 때문에 판이 팔리고 아티스트가 돈을 버는 거다”라고 의견을 주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 씨(<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저자)는 "비판하는 쪽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순기능과 긍정적인 부분에 더 주목하고 싶다. 주석의 소녀팬들이 주석 '오빠'로 인해 Big L의 시디를 샀다거나, ‘에픽하이’ 때문에 홍대 힙합공연에 다니기 시작한 여성들이 한국힙합에 빠져들었다거나, 아이돌 ‘방탄소년단’ 팬들이 '오빠'들로 인해 내 책을 사서 읽었다고 내게 인증했던 일이 있었다.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더 적극적으로 끌어내느냐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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