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방영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인기 극작가 김수현이 오랜만에 집필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동성’ 커플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동성애 포비아들의 반발이 거셌던 것이다. 당시 보수세력과 기독교 단체들의 동성애 폄훼는 꽤 공격적이었다. 기독교 단체에서는 동성애 혐오를 드러내는 신문광고를 냈고, 이 광고 이후 정부는 구치소 내 해당 드라마 방영을 중단시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아직은 지켜 보겠다’며 동성애가 문제 거리가 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이러한 관심은 결국 드라마가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원래 동성커플의 성당 언약식이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그 부분은 편집된 채 커플링이 겹쳐져 있는 단 한 장면만 나온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끝도 없이 많다. 동성애 영화<친구사이?>는 선정성과 관계없이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트랜스젠더 토크쇼 <XY그녀> 역시 반동성애 세력의 출연자 협박에 못이겨 단 1회만 방영되고 무기한 방영보류 되었다. 작년에는 <코미디빅리그>에서 동성커플이 등장한 ‘마초맨’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권고’ 제재를 받았다. “방송의 품위 저해했고, 청소년 시청보호시간대 방송 한 것은 문제”라는 이유였다.


이제는 콘텐츠 속에서 동성애를 접하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동성애가 주류 매체에 전파가 되면 논란은 재점화된다. 그래서일까. 매체 속에서 동성애는 계획적으로 노출된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친구로서 감초역할을 해주거나, 아니면 주인공의 유머코드로 사용되거나 하는 식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는 ‘트렌디함’과 ‘쿨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사람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동성애는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수준에서 배경에 녹아 있었다. 매체들의 이런 모습에 불편함을 가지고 있던 차에 눈길을 끄는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지난 11월 2일에 방영된 동성애 사극 <형영당 일기>다.


형영당 일기는 2006년 극본 공모전에서 단막부문 대상을 수상한 시나리오로, 공모전 당선 후에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 노희경 작가는 “동성애라는 자칫 민감한 부분을 푸는 일이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그 안에서 감정 절제를 잘했다”고 평가했으며, 이재규 감독은 “사극이면서, 동성애, 멜로라는 점을 잘 결합시켰다”며 “공모전 당선작 중 한 작품을 연출 하라면 형영당 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형영당 일기는 MBC에서 드라마 제작에 들어간다는 것이 알려지자 동성애 문제 대책위원회와 기독교 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들은 MBC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비난을 퍼부으며, 드라마가 ‘비정상적인’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MBC에 대해 ‘시청 거부 및 형사고발, 손해 배상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묘한 반발심이 생겼다. “드라마가 어떻게 나오는지 두 눈 뜨고 지켜보겠다”라는 심산이었다. 제발 그들의 외압을 못 이겨 제작이 무산되거나, 시나리오가 수정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설마 했던 일은 역시나 일어났다. MBC가 “퀴어 사극이 아닌 미스터리 수사물로 방향을 대폭 선회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초점을 수사물로 내세운 형영당 일기는 대상을 수상한지 8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시청자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드라마는 살인사건으로 포문을 열었다. 종사관인 철주가 기방에서 독살된 채 발견된 젊은 남자의 시신을 수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철주는 죽은 남자가 이복동생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형영당(꽃향기를 맡는 곳)에서 발견된 일기장을 바탕으로 진실을 추적한다. 일기장에는 남자가 이복동생과 나눴던 이야기들과 애틋한 감정이 담겨있다.


철주가 범인을 쫓는 미스테리에 집중되어 상대적으로 두 남남주인공의 감정은 덜 충실하게 전달된다. 또한 마지막에 형이 독주를 마시며 “은애했다”며 고백하기 전까지, 둘의 미묘한 시선을 우애의 특별한 감정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며, “사랑을 잃은 삶은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대사로 압축할 수 있다. 많은 시청자들은 형의 애달픈 마음을 담고 있는 대사에 감동받았으며, 독주를 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왜 이 장르는 ‘러브스토리’가 아닌 ‘미스테리 수사물’로 받아들여져야 할까.

 

MBC 사옥 앞에서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형영당 일기 제작 중단 촉구 기자회견 ⓒ노컷뉴스

 

동성애는 인간이 느끼는 ‘사랑’의 상대가 같은 성을 가진 것 뿐이다.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겨나는 감정을 두고 사람들은 논쟁을 벌인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나아가 동성애를 다뤘다는 것만으로 작품 전체가 비난을 받는 상황도 이해되지 않는다. 동성애가 나온다고 하기만 하면 방송 전부터 발목이 붙잡히는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작품 자체로 평가받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동성애’라는 소재에만 이목이 집중된다. 또한 동성애에 대한 반발여론은 제작진의 창작의지를 위축시키고 제약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창작자의 자유를 제한한다. 창작의 자유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는 기본권으로, 원칙적으로 어떠한 제재도 할 수 없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렇다면 동성애가 그 원칙에 적용되는가. 동성애에 대한 찬반입장과 관계없이, 그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이 땅에서 동성애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