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주의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차가운 바람이 불던 2월 7일 오후 5시.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오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맥도날드 신촌점이다. 노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서 있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의아했던 것이다. 30명 남짓의 경찰들이 매장 앞에 일렬로 서있는 거리를 지나가던 아이는 “무섭다”며 엄마에게 안겼다.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무슨 일이냐”며 서로에게 물었다. “연예인 오는 건가? 물어봐”라는 소리가 들리자, 이 모든 상황을 카메라로 찍고 있던 한 촬영 기자가 대답했다. “알바노조가 맥도날드 점거 시위하러 오고 있어요.”


오후 5시 30분이 넘어설 무렵, 알바노조가 서강대학교에서 행진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경찰들의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로부터 20분이 흐른 뒤, 알바노조 소속 조합원 80여 명이 맥도날드 신촌점 앞에 도착했다. “우리가 여기로 온 이유는 더이상 힘없는 알바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더이상 참지 않겠다고 말하기 위해서다”는 외침이 신촌 삼거리에 퍼졌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 점거하려는 조합원들과 가까이서 촬영하려는 기자들, 그것을 막아서는 경찰들까지 맥도날드의 좁은 입구에서 약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맥도날드 신촌점 좌측 출입구에서 매장에 진입하려는 알바노조 조합원과 그것을 막으려는 경찰


경찰에 막혀 매장에 진입하지 못하자 조합원들은 맥도날드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부당 해고와 ‘꺾기(알바 시간을 강제로 줄여 임금을 줄이려는 편법)’라는 불법 관행을 하는 매장은 가만히 두고, 당신들이 지켜줘야 하는 힘없는 알바를 왜 막느냐”고 항의했다. 조합원들이 환호로 동의했다. 매장 안에서 손님인 척 앉아있던 조합원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그들은 ‘알바도 노동자다’라는 문구가 적힌 막대 피켓을 들고, ‘알바 갑질을 멈춰라’, ‘알바도 사람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맥도날드 알바 갑질 절대금지’이 적힌 스티커를 매장 유리벽에 붙이기도 했다. 매장 안과 밖의 목소리는 하나였다.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급을 인상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맥도날드는 알바 갑질 대표기업? 도대체 무슨 일이?


알바노조는 맥도날드 신촌점 점거에 이어 연세대점까지 행진을 하며 규탄대회를 이어갔다. 그들의 행진에는 조합원 수와 비슷해 보이는 경찰들도 뒤따랐다. 이번 시위를 벌이게 된 자세한 내막은 두 번째 집회 장소인 맥도날드 연세대점에서 조합원들의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이가현 조합원이 1년 동안 일하던 맥도날드에서 부당 해고당한 사건이 촉발제였다. 그녀는 “집회에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하시는 조합원분들이 많은데 본사에서 사진을 찍어갔을까 걱정이 된다”라고 입을 뗀 후, 해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맥도날드 연세대점 앞에서 자신이 겪은 부당 해고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이가현씨


이가현 씨는 동료들이 자신의 노조활동을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말과 함께 해고당했다. 하지만 그녀가 노조 활동을 하는지 모르는 동료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일을 그만두게 된 걸 아는 동료도 없자, 왜 잘렸는지 납득이 안 돼 점장에게 연락을 했다. 잘리고 이틀 뒤였다. 하지만 점장과 매니저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매장을 찾아가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일하던 매장에서 대화에 나서지 않자 그녀와 알바노조는 본사에 메일과 공문을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일방적인 무시에 어쩔 수 없이 본사에 직접 찾아갔다. 담당직원을 불러 올테니 잠시 기다리라던 맥도날드는 경찰을 불렀다. 나가라는 경찰에 항의하는 알바노조를 지켜보던 한 본사 직원이 말했다. ‘그러니까 알바나 하지.’


결국 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넣었고, 지난 2월 5일 맥도날드와 처음 대화를 나누었다. 맥도날드가 처음 만나 꺼낸 말은 알바노조가 흑백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8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증언과 ‘꺾기’를 경험했다는 1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증언을 두고, 한 개인의 거짓된 주장이라 일축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노동위원회 심문 과정에서 매니저와 점장은 사실을 왜곡했다.


“저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좁은 매니저실 문을 잠가놓고 반말로 사직서를 내밀며 ‘이거 써야 너 나간다’라고 했던 점장님은 제가 먼저 사직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학업 스케줄을 보장해주겠다고 7,8월 방학 때는 주 1-2회 일을 하자던 스케줄 매니저는 제가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일을 안 한 불성실한 근로자였다고 합니다. 제가 불성실해서 잘랐다고 말한 점장님은 일 잘한다고 저를 ‘이달의 크루(매장 직원)’로 뽑았습니다.”


노동위원회는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고 통보 당시 언급되었던 유일한 이유인 노조활동은 빠진 채 원래부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는 말만 반복되었다. 그녀는 중앙 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맥도날드의 근무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말을 마쳤다. 이어서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조합원들은 △비인격적 대우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관행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최저임금 △라이더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배달제도 △매출에 따라 근무가 변동되는 ‘레이버 컨트롤(매장별로 매출 대비 인건비 비율을 정해놓는 것으로, 이 때문에 매출이 낮으면 인건비도 낮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등에 대해 비판했다. 맥도날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발언이 끝난 후 그들은 함께 구호를 외쳤다.


”알바도! 노동자다! 부당해고 철회하라! 알바도! 노동자다! 불법꺾기 중단하라!
알바도! 노당자다! 최저임금 만원으로! 알바도! 노동자다! 갑질을 중단하라!" 


마지막 집회장소에서 이어지는 조합원들의 발언


알바노조는 장소를 옮겨 유플렉스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진행했다. 맥도날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조합원과 각 지역의 지부 분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담담하게 말을 하는 이도, 울먹이며 발언을 이어가던 이도, 살짝 격앙되어 목소리를 높이던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그들이 겪은 설움을 내뱉을 기회가 마련된 것에 대한 반가움, 가만히 있지 않고 각자의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힘을 갖는 것에 대한 기대, 힘을 가지면 알바 노동자를 착취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희망을 품는데 더 많은 알바노동자가 동참하길 바랐다. 집회에서 많이 들렸던 말은 ‘함께’와 ‘우리’였다. 맥도날드에서 라이더로 일하고 있다는 한 조합원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다. 말하지 않으면 낮은 시급에 한번, 높은 노동 강도에 두 번 죽을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알바노조와 함께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촌점 매장에 미리 들어가 있던 김다예 성공회대 분회 지부장도 “안에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며 “손님들은 유인물을 달라고 하시고, 같이 구호를 외쳐주시고, 우리를 응원했다. 인상깊었던 것은 일하시는 분들이 다 표정없이 계셨는데, 눈을 마주친 한 분이 정말 빠르게 입모양으로 ‘멋있다’고 해주셨다. 아직 목소리를 내지 않는 그분들이 우리에게 의지하고 함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맥도날드 전면전 선언, 알바노조 “우리도 쭉 가자”


알바노조의 매장 점거 시위에 대해 맥도날드의 입장은 강경했다. 신촌점, 연세대점 점거 시위를 영업방해 등의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6일 맥도날드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맥도날드가 '크루'의 노조 활동을 이유로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는 알바노조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해당 크루의 퇴사 전 3개월 동안의 평균 근무일은 주 1회도 되지 않았고 잦은 스케줄 변경과 지각, 결근 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매장 운영에 기여할 수 있는 크루가 아니라고 판단, 계약 갱신 필요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입장이다.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집회가 끝나갈 무렵 맥도날드의 입장을 전했다. “맥도날드가 우리와 전면전을 치르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우리도 쭉 가겠다”라고 외쳤다. 이혜영 사무국장도 “오늘 정말 잠깐 우리의 목소리를 알렸지만, 앞으로 계속 무시한다면 더 많은 매장과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오랜 시간 매장을 점거하겠다”고 경고했다. 


알바노조의 집회가 끝난 후에도 신촌점 앞을 계속 지키고 있는 경찰들


오후 7시 30분. 앞으로의 각오를 다짐하며 세 번째 장소에서 마지막 집회도 끝이 났다. 그들이 시위 장소에서 떠나지 않아 경찰들도 자리를 지켰다. 조합원들은 서로를 향해 힘찬 박수를 치고, 기념촬영을 한 후 흩어졌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그들이 점거했던 맥도날드 매장 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손님들의 목소리와 노동자들의 분주한 몸짓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알바노조가 남긴 이야기의 흔적은 아직 떼지 못한 유리 벽면의 스티커와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 등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보다 이윤 창출을 중요시하는 것에 대한 지탄이었으며, 더 이상 사람보다 이윤이 먼저인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말아달라는 호소였다. 결국 그들이 바랐던 것은 알바 노동자에 대한, 그보다 앞서 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었다.



맥도날드는 스스로를 햄버거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햄버거를 먹는 사람을 위한 기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알바 노동자에게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불법 꺾기와 부당해고를 그만두고, 더 나은 근로조건을 보장해주는 것이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하는 길이다. 맥도날드가 한국에 들어온 지 27년을 맞이하는 2015년. 알바노조는 2월 7일 점거 시위를 통해 그 길의 시작점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