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그냥 혼자놀기였다. 인스타그램(인스타)보다는 트위터에 먼저 흥미가 생겼고, 거기에도 사진은 올라왔다. 주위에서 환상적인 먹스타그램 세계를 이야기해도 심드렁했다. 웹에서는 사진을 업로드 할 수 없다는 점에 정이 가지 않았다. 스마트폰 구입 한참 뒤에야 인스타그램에 가입했고, 그나마도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올려서 가끔 열어보는 사진첩으로 이용했다. 이제 슬슬 써볼까 싶었을 때는, 오랜 휴면상태로 인해 아이디를 아예 까먹었다. 아이디를 찾기 위해 연상되는 모든 단어조합을 입력했다. 혹시 인스타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을까 봐 말하자면, 그렇게 하면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인스타 유저에게 계정확인 이메일이 전송된다. 나는 적어도 6명의 유저에게 이메일을 보낸 끝에 아이디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고난 끝에 본격! 인스타그램 생활이 시작됐다.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그랬듯, 혼자 SNS를 하자던 결심은 무너졌다. 나는 어느 순간 노래제목이나 가수, 동물, 음식 등으로 해시태그를 걸고 있었다. 트렌디하지 않은 스스로를 반성하려는 것이었는지,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손을 거친 사진에 하트를 날리는 게 신기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종종 사진보다 더 긴 해시태그가 달리는 행렬을 비웃던 내가 그렇게 돼버렸다. 본문(?)에 아예 해시태그를 혼용해 타임라인의 경제성을 살리는 시도도 이어졌다. (ex. 오늘 #오므라이스 먹었다. #합정 진짜 맛집이 너무 많음) 트위터로 친다면 '달걀 계정'에 해당될 내가 이상한 사자성어를 걸어놓고는 전 세계에서 첫 번째로 이 해시태그를 사용했다는 이상한 자부심에 휩싸이기도 했다.




트위터(twitter)에서 계정을 개설하면 자동으로 설정되는 첫 프로필 사진. 알 계정, 계란 계정, 달걀 계정 등으로 불린다. 

최근에는 계정을 한꺼번에 신설해 광고나 악플에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는 중. ⓒ 기자의 트위터



해시태그 감옥에서 살아남기


그런 내가 아무리 해도 태그로 걸 수 없는 단어들이 있었는데, #셀카, #얼스타그램, #소통 등이었다. 외모 위축감(?)과 함께, 저 해시태그 릴레이에 참여해야만 성공한 인스타 사용자가 될 것 같아 왠지 심란했다. 슬랩스틱부터 비꼬는 유머까지 총망라한 바인(Vine)은 6초 동안 신나게 웃으면 된다. 작가나 정치인, 교수들이 하는 말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트위터 역시 입맛에 맞게 편집해 읽을 수 있다. 두 SNS 모두 웃음코드와 공감대를 얻을 문장이 주축이 된다. 줄글보다 더 선명하고 강렬한 사진은 완전히 딴 세상의 모습을 마주하는 충격을 준다. 나와 다른 얼굴, 사는 방, 먹는 음식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끝없는 해시태그들은 더 많은 좋아요와 팔로워를 얻기 위한 그물 같았다.




ⓒ ADR-studio



해시태그 탐구를 위해 낯선 사람들의 ‘#셀피’를 몇 분이나 스크롤했다. 새로고침 할수록 피드는 아름다워졌다. '#셀카' 와 '#소통'은 세트로 붙어 다녔다. 이 소통의 정체는 무엇일까? 미국에서 ‘즉석만남게임’으로 유명해진 BADOO같은 어플처럼(상대방의 사진에 예, 아니오, 아마도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사람들은 이미 얼굴로 소통한다. 전문 소셜데이팅 어플처럼 ‘인터넷친구’에 가까운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지만, 쉽게 상대방의 외모와 셀카기술을 칭찬할 수 있다. 셀카에 대한 반응이 좋아요 뿐만 아니라 ‘맞팔요청’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communication’이나 ‘communicate’로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사람들의 얼굴이나 전신사진보다는 짧은 글 위주의 'quotation'이 눈에 띈다. 물론 ‘follow for follow’ 운동을 하는 사람은 한국이 아닌 전 세계에 있고, 유명한 인스타 스타의 계정에도 사진마다 팔로우 백 요청이 줄을 잇는다. 자기 사진과 사람들 간의 소통을 연관 짓는 현상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but first, let me take a #SELFIE"


SNS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의 그 ‘힙스터’ 분위기는 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인스타는 그들의 출처처럼 비친다. 업그레이드 되는 필터는 마법 같고, 작은 정사각형의 집합도 스마트폰을 조금 멀찍이 보면 의미 있어 보인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유령 같은 힙스터들은 그 안을 놀이터처럼 뛰논다.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적어도 이제 막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장소에 가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주류 문화를 무시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찍어서 올린다. 그래서 사진이 ‘엄청 많은’ 인스타그램은 힙스터의 소굴처럼 묘사된다.



미국의 DJ 듀오 The chainsmokers의 곡 #SELFIE. 인스타그램을 실감나게(?) 재현했다. 

셀카를 찍는 모습과 함께 내용도 의미도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지난해 최고로 히트한 곡 중 하나. ⓒ Youtube



인스타그램의 주축을 이룬 피사체가 음식과 얼굴 두 가지라도, 셀카는 여전히 ‘힙스터스럽다’는 지적을 받기엔 좀 억울한 위치에 있다. 이제는 유명해진 사실이지만, 최초로 카메라가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셀카를 찍었다. 일회용 카메라와 피쳐폰에 내장된 카메라, 예쁜 카페와 블로그 붐을 이끈 DSLR의 유행 사이를 셀카는 모두 통과했다. 옥스퍼드 사전에 선정된 것 이외에는 셀카는 오히려 식상한 무엇이다. 셀카에 입혀진 새로운 패션 코드나 소품, 표정이 훨씬 새롭다. 거기에 사람들이 말하는 힙스터 정신의 핵심이 숨어있기도 하다.


혼자 보는 사진첩 용도로 시작한 내 인스타그램은, 실은 아직도 사진첩이다. 내 계정의 좋아요 개수는 아직 두 자릿수에 진입하지 못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만 찍고 싶었고, 좀 더 예쁜 골목을 걷고 싶었다. 인스타에 올릴만한 예쁜 사진을 건지기 위해 앨범을 쭉 훑었다. 진정한 인증욕구의 상승이었다. 이젠 지나가는 사람이 들고 있는 컵 피자나 와플, 츄러스 등의 간식을 “잠깐!”하고 찍어 올려도 상관없을 것 같다. 어쨌든 내가 고른 필터를 입히면 그만이다. 지금도 초단위가 모자라도록 쏟아지는 피드를 보면, 이 많은 사진이 다 필름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인스타그램 유명세엔 별 도움이 안 될 상상에 빠진다. 레벨업을 위해 얼마나 더 많이 해시태그를 걸어야 할까? 언젠간 나도 뻔뻔하게 셀피 해시태그를 달고, ‘좋아요’ 알림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